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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일러권 Feb 07. 2022

리사이클링 이야기 - 칫솔 편

치아를 깨끗하게, 하지만 칫솔 포장지는 깨끗하지 못했다

리사이클링 업계에서 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재활용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특별한 공부를 한다기보다 소비 행위를 하며 제품들의 포장 상태나 어떻게 표기되었는지를 더 신경 써서 보는 수준이다. 정부 기관에서 분명 기준을 정해 주었고 기업들은 성실히 그 규칙을 따를 것으로 예상되지만 실제로 마주했던 제품들은 제각각의 다양성을 자랑하고 있었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칫솔이었다. 치아가 약한 편이라 칫솔에 민감한 편인데 그동안 칫솔 구매 시 칫솔 모의 품질 (부드러운지, 시원한지 등) 정도 신경 써서 구매하는 편이었다. 간혹 집에 손님들이 올 경우를 대비하 양 많고 가성비 좋은 대량형 칫솔을 구비해 두기도 한다.

다섯 개를 사면 다섯 개를 더 주는 국민 혜자 칫솔

대부분 마트에서 구매하는 칫솔이다. 5개를 사면 5개를 더 준다고 한다. 혜자템임이 틀림없고 일회용 칫솔과 비슷한 수준의 가격, 그리고 월등히 뛰어난 품질로 여러 번 사용이 가능하다.


칫솔의 제품 정보

칫솔의 제품 정보도 친절하게 설명되어있다. 먼저 칫솔은 재활용이 안되는데 그 이유는 칫솔 재질을 보면 알 수 있다. 바로 칫솔이 재질들의 혼합으로 이뤄진 구조이기 때문이다. 크기가 노트북만 하다면 분리하여 재활용이 가능하겠지만 연필 한 자루 정도의 사이즈라 일일이 선별하는 것도 번거롭고 인기 있는 재질이 아니라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

칫솔 포장용기 재질 표시 (투명한 부분에 별도로 '페트'라고 표시해 두었다)
칫솔은 그렇다 치자, 그럼 포장용기라도 재활용 잘해야겠네?

그럼 종이를 제외한 포장용기 재질은 어떨까? 이 제품의 경우 뒷면에 별도로 표시된 부분은 없고 전면의 플라스틱 커버에 '페트'라고 써놓아져 있었다. 그런데 이게 잘 보이시는가? 대충 감으로 페트라는 것은 알 수 있겠지만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만 이것이 페트 재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 잉크로 잘 보이게 색칠하거나 표시하면 되는 거 아니냐라고 할 수 있는데, 그건 안된다. 재활용 과정에서 고순도 (주로 투명한 페트들) 플라스틱만 따로 모아 잘게 부스는데 그 과정에서 순도를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커버와 종이를 분리할 때 제대로 분리되지 않음

또 다른 문제는 플라스틱 커버를 분리할 때 발생한다. 이는 모든 칫솔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접착제 혹은 높은 열을 가열하여 종이와 플라스틱을 붙이는 과정에서 종이가 플라스틱에 엉켜버린 것이다. 이는 앞서 말한 잉크를 쓰면 안 되는 케이스처럼 플라스틱 순도에 악영향을 준다. 그런데 국내, 해외 가릴 것 없이 대부분의 칫솔들이 아직까지 이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 그 이유는, 포장 공정의 편리함 때문이다. 이는 아래에서 추가 설명하겠다.

다른 칫솔의 경우, 종이와 PET 재질을 잘 표현해 주었다. 그런데 블리스터가 머지?

이건 다른 칫솔이다. 영국 황실에서 사용한다는 칫솔로 가격이 조금 있는 편이지만 칫솔 모가 매우 부드러워 필자가 사용하고 있는 칫솔이다. 이 칫솔의 경우는 종이와 PET로 재질을 분리해 주었다. 

 그런데 블리스터가 머지?

필자도 잘 모르는 부분이라 PET 재질의 투명한 플라스틱을 블리스터라고 부르는 줄 알았다. 업계 사람들이야 현장 용어에 익숙하니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써놓은 단어가 아닐까라고 합리적인 추측도 해보았지만 조금 검색해보니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블리스터(Blister)란 물집, 기포란 의미를 포함하기도 하지만, 고온에서 플라스틱을 빠르게 성형하여 제품을 포장하는 공정을 뜻하기도 한다. 나만 그런 것인 줄 알고 와이프에게 물어봤다. 만화책 이름 아니냐고 하길래 (그건 '블리치'고) 다시 노트북으로 돌아왔다.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 바라볼 때 절대 알 수 없는 단어이다. 그런데 생활필수품의 첫 번째 아이템이라 할 수 있는 칫솔에는 이렇게 대놓고 적혀 있다는 사실이 조금 놀라웠다.

애경 칫솔, 닥터세닥 칫솔도 마찬가지로 칫솔 포장용기를 블리스터:페트로 표기 하였다

혹시 몰라 다른 칫솔들도 찾아보았다. 애경 칫솔과 닥터세닥 칫솔이 있길래 살펴보았더니 마찬가지로 블리스터:페트로 표기되어 있었다. 더욱 놀랐던 사실은 우리 집에 이렇게 많은 종류의 칫솔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5살인 딸을 포함해 세 식구인데 무슨 칫솔이 이렇게 많이 필요한 것인가?! 와이프의 소비형태가 매우 의심스러웠지만 가정생활을 적는 브런치가 아니라 일단 넘어가겠다.


외산 칫솔의 경우는, 아예 포장 용기 재질에 대한 언급이 없었고 포장을 뜯는 방법은 동일 하였다

마지막으로 우리 딸이 쓰는 외산 칫솔을 살펴보았다. 여긴 아예 플라스틱 포장지에 대한 언급은 없고 단순히 칫솔 재질에 대한 표기만 있을 뿐이다. 그래도 국내 기업들이 기준은 잘 지키고 있는 것이다. 포장을 뜯는 방법에서는 We're the world! 동일하게 종이 자국을 남겼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이 정도면 많은 종류의 칫솔을 분석해본 것 같다. 개인적으로 블리스터라는 용어에 대한 집착은 하고 싶지 않다. 다만 칫솔 제조업체에 두 가지를 요청하고 싶다.


첫 번째, 포장용기 부분의 '페트' 부분을 잘 알아볼 수 있게 크기를 키워 달라

글씨를 더 두껍게 해도 좋겠지만 가시적으로 더 잘 알아볼 수 있도록 개선이 필요할 것 같다. 물론 뒷면 종이에 페트라고 작게 적어두는 것도 좋다


두 번째, 종이를 남기는 공법 개선을 부탁드린다

편리함과 대량 포장을 위해서 블리스터 공법이 필수적이겠지만 이런 부분을 먼저 개선하고 마케팅 포인트로 잘 삼는다면, 판매 개선에 도움을 주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ESG 부분을 잘 강조하면 되는 것이다.


이 부분을 기업에서 도와주고, 나머지는 우리 소비자들이 분리수거에 조금 더 관심을 갖는다면 지금까지 버려지고 있었던, 혹은 재활용 공정의 난이도를 높이고 있었던 골칫거리 칫솔 포장용기를 조금 더 의미있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글은 마친다. 와이프에게 칫솔 더 이상 사지 말라고 말하로 가야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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