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많은 순간 마음을 비껴간다. 말은 입 밖을 떠나지만, 상대에게 닿지 못한 채 허공을 맴돈다.
몇 번의 사과를 했고, 몇 번의 사과를 받았다.
어떤 순간 마음에 닿지 않는가를 생각했다. 말이 스스로를 향할 때였다. 진심에 변명은 필요 없었다. 많은 변명은 상대를 위한 것이기보다 나를 위한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진심의 색을 흐리게 한다. 미안하다는 진심, 그거면 되었다.
'씬짜오'는 베트남어 인사다. 心照. 중국어로는 마음으로 이해하다는 말이다. 우리는 그들을 마음으로 이해하고 있을까. 그리고 편안하게 안녕이란 인사를 건넬 수 있을까.
최은영 작가의 소설 '씬짜오'는 진심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조각난 사실에 대한 이야기다. 독일에서 마주한 베트남 친구 '투이'네 가족과 '나'의 가족. 그리고 독일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조각난 사실들은 누군가의 마음을 상처 낸다.
투이에게 닿은 진심은 오직 하나였다. "아무것도 몰랐던 거, 미안해" 그것은 내가 당신에게 말하고 싶은 진심이기도 했다. 내가 언제든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 폭력은 어디에나 존재하며, 그래서 우리는 그 예민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 그 진심에 어떤 변명도 필요 없었다.
지난 7일, 어떤 사과가 처음 당신의 마음에 닿았다. 55년 만에야 닿은 말이었다. 서울중앙지법은 대한민국이 응우예티탄에게 '사과'하라고 판결했다. 한국군이 베트남 민간인을 학살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었다. 사과의 금액은 3000만 100원이었다.
그녀가 원한 것은 오직 진심이었다. 국가배상소송 최소 신청 금액은 3000만 원이었다. 그녀는 거기에 딱 100원을 더했다. 무엇도 변명하지 않고, 인정하는 것.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 8살의 나이에 5명의 가족을 잃고, 잔인한 학살을 마주한 데 대한 진심의 사과.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한 군인은 지난해 그녀에게 "당신 말이 모두 진실"이라고 했다. 길원옥 할머니와 김복동 할머니는 그녀를 안으며 말했다. "전쟁의 고통을 공감한다"
소설 '씬짜오'에선 많은 조각들이 피해자들의 마음을 상처 나게 한다. "베트남은 전쟁으로 미국을 이긴 유일한 나라예요" "너의 말이 모두 맞다"는 선생님의 말. "그저 전쟁일뿐이었다"는 말들. 그 말들은 우리가 언제든 나빠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조각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든 나빠질 수 있다는 기억들을 마주한다. 광주에서, 제주에서, 일본에서, 베트남에서. 그리고 바다에서, 골목에서. 그리고 이 시간에도 어떤 말은 상대에게 닿지 못하고, 당신의 마음을 더 다치게만 한다.
다시, 두 가슴이 잘린 채 숨이 붙은 여자를 생각한다. 그 기억에 미안하다는 진심, 그것 외에 필요한 것은 없었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는 많은 것을 모른다.
"아무것도 몰랐던 거, 미안해"
心照. 마음으로 이해하는 진심.
그것만이 당신에게 닿을 수 있었다.
(참조 - 쇼코의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