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앞에 선 단독자
책이 있는 곳이라는 정의에 충실하면 책방이지만 여타의 책방과는 다르다. 언제 방문해도 운영자를 만날 수 없는 ‘무인’이고, 동시 방문자가 3인으로 제한된 ‘예약제’이며, 책을 판매하지 않는 ‘서재’이다. 책방에서의 독서모임을 추진하다가 알게 되어 ‘가고 싶은 책방’ 목록에 올렸다가 드디어 방문해 볼 기회가 생겼다. 몸이 아파서 대외활동을 중단하는 시기, 사람을 만나는 건 힘들었지만 책을 마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명칭에서 드러나듯이 후암동에 소재한다. 고층의 대규모 건물들이 즐비하는 서울의 한복판에서 시선을 약간 돌렸을 뿐인데, 친근함이 느껴지는 낮은 건물들 사잇길로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눈앞에 펼쳐진다. 내게 순간 이동의 능력이 생긴 걸까 의심될 만큼, 갑자기 몇 백 킬로미터 떨어진 한적한 시골길을 걸어가는 기분이다. 주위의 분위기에 맞추어 발걸음도 여유로워진다. 이럴 때면 나는 변온동물이 확실하다는 확신 앞에 서게 된다. 그렇기에 내가 지향하는 환경 속에 나를 두고 싶다. 가장 좋아하는 산책길은 역시나 책들 사이를 거니는 것이고.
들어가는 순간 평온함과 편안함이 몰려온다. 널찍한 책상은 여유로움을 선사하고, 창문을 향한 의자는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다. 좌식을 원한다면 그림책방에 들어가면 된다. 준비된 커피나 차를 곁들이는 것도 가능하다. 여기에 책이 더해지니 행복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공간 건축에 관련된 책들이 꽤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을 운영하는 주체가 도시공감협동조합건축사사무소였다. 나의 관심분야인 서점 운영 및 동네 책방 관련된 책들도 여러 개 있었다. 어느새 내 손에는 <당신에게 말을 건다>가 들려 있었다. 속초 동아서점 3대째 운영자인 김영건 씨의 에세이다. 이곳을 방문하기 일주일 전 우연히 동아서점을 알게 되어서 이 책이 더 눈에 띄었던 거 같다. 훑어볼 마음으로 첫 장을 넘겼는데 어느 순간 빠져들었고 결국 마지막 장까지 보고 말았다. 새벽 2시까지인 운영시간이 감사했다.
정신없이 바쁜 일상 속에서 후암서재라는 쉼표를 찾았다. 평화로움의 진수를 맛보았고, 고요함 속에서 내면의 나와 마주할 수 있었다. 이렇게 감사의 날들이 쌓여가는 것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