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500만 원이 돌아오는 길

소액사건과 지급명령 제도

by 장유미 변호사

알려지지 않았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드러나지 않았다고

위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 박노해,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중에서






사람을 구하는 일

그분은 혼자 시작한 사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사무실, 혼자 감당하는 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성실하게 쌓아온 시간은 어느 순간 사업의 영역을 조금씩 넓혀 놓았고, 혼자의 손으로는 더 이상 다 담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함께할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분이 원한 것은 단순한 일손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바라보는 방향, 내가 만들어가고자 하는 사업의 결을 함께 이해하고, 오래 함께 걸어줄 사람.


주위에서는 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결혼이든 사업이든, 사람이 잘 들어오는 것이 제일이라고. 그분도 그 말의 무게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직원 한 명을 채용하는 일이었지만, 오랜 시간을 들여 면접을 보고 또 보았습니다.


그렇게 들어온 직원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외근이 잦은 업무를 맡았고,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일을 찾아 했습니다. 관리부터 보고까지, 별다른 규율 없이도 일은 잘 돌아갔습니다. 그분은 흡족했습니다.


외근이 잦으니 자연스레 차량이 필요했습니다. 사회초년생이었던 젊은 직원이라 아직 자차가 없었기에 차량을 렌트한다고 하였습니다. 렌트 보증금 500만 원은 직원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었습니다. 그분은 흔쾌히 빌려주기로 했습니다. 퇴사할 때 차량을 반납하면 렌트 회사에서 보증금을 돌려줄 테니, 그때 주면 된다고 했습니다. 돈이 묶이는 건 사장님도 마찬가지였지만, 함께해 준 고마운 사람에게 그 정도는 감내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헤어짐은 언제나 갑작스럽게

좋은 시간에도 끝은 옵니다.


함께한 지 4년이 되던 해, 직원이 이직을 알려왔습니다. 본인의 커리어를 위한 결정이었고, 그분은 섭섭한 마음을 안으로 눌러두고 그 선택을 지지해 주었습니다. 직원도 마지막까지 감사하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좋게 마무리하는 일만 남겨두었습니다.


퇴사 정리를 하며 차량 보증금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차량을 반납하는 즉시 렌트 회사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으면, 곧바로 사장님께 이체하기로 했습니다. 렌트 회사가 돌려주는 돈이니, 문제가 생길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직원으로부터 이상한 연락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휴일이 껴 있어 반납이 늦어진다고 했습니다. 다음엔, 렌트 회사에 일이 몰려 보증금 환급이 지연된다고 했습니다. 그다음엔, 렌트 회사와 연락이 잘 안 된다고 했습니다. 변명은 매번 조금씩 달라졌고, 그럴듯한 이유들이 줄줄이 이어졌습니다.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말들이었습니다.


소액이어서 더 억울한 사건

소가(소송으로 청구하는 금액) 500만 원.


이 금액을 돌려받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고, 수임료를 내고,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다는 건 생계가 있는 사람에게 결코 간단한 선택이 아닙니다. 그래서 소액 사건에서 정당한 권리를 가진 많은 분들이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합니다. 스스로 어떻게든 해결해 보거나, 아니면 이른바 '똥 밟은 셈 치자'며 포기하거나.


포기하는 분들을 탓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권리가 있어도 그 권리를 찾는 데 드는 비용이 권리의 가치보다 커질 수 있다는 것, 그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 현실은 때로 너무나 불공평합니다.


저는 그분에게 소송을 권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지급명령'이라는 제도를 안내했습니다. 금전 지급을 청구하는 사건에서, 일반 소송을 거치지 않고도 법원을 통해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는 간이한 절차입니다. 인지대는 일반 소송의 10분의 1 수준이고, 별도의 심문 기일 없이 서면으로 처리됩니다. 사실관계가 명확하고 증거가 충분한 사건이라면,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도 직접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은 딱 그런 경우였습니다. 사실관계는 명확하고, 상대방도 이를 다투지 않으며, 증거는 충분했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지급명령을 직접 신청해 보시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드리며, 그렇게 상담을 마쳤습니다.


다시 저에게 오셨습니다

그 후 우연히 길에서 한 번 그분을 마주쳤고, 일이 잘 진행되고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몇 주 후 연락이 왔습니다.

지급명령을 직접 신청했는데 각하결정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일을 병행하며 챙기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이었습니다. 더 이상 지체하고 싶지 않다며, 이제는 저에게 맡기겠다고 하셨습니다. 목소리에서 답답함이 묻어났습니다.


저는 절차를 안내하고, 바로 착수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장님이 저에게 일을 맡기신 건 월요일 오후였습니다. 지급명령 신청서가 법원에 접수된 건 화요일 오전이었습니다.


변호사의 마음에서

소액 사건은 법으로 해결되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습니다. 그렇지만, 금액이 적다는 이유로 억울함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상황, 저는 그게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급명령 제도는 그런 분들을 위해 존재합니다. 낮은 문턱, 간단한 절차. 스스로 도전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제도입니다. 다만, 서류의 흠결 하나, 요건의 착오 하나가 각하로 이어질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저는 사장님이 얼마나 많이 참으셨을까를 생각했습니다. 직원을 구할 때의 신중함, 보증금을 내어줄 때의 따뜻함, 이직을 응원할 때의 넓은 마음. 그 모든 것들이 돌아오지 않는 연락 앞에서 조금씩 무너졌을 시간들.


이제는 더 지체되지 않게, 빠르고 정확하게 마땅히 받으셔야 할 권리를 찾아드리는 것. 그것이 이 사건에서 지금의 제 역할입니다.


유노이아 법률사무소, 장유미 변호사입니다.



법과 삶, 그리고 문학이 만나는 자리.

한 편의 시와 한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유노이아의 법률 에세이는 계속됩니다


이전 26화25. 모든 책임을 혼자 짊어질 이유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