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구 안에서 여러 차례 이사하며 15년 여를 살았다.
부모님의 사정과 집안 재테크의 변동에 따라 몇 군데 동을 바꿔가며 살았고 초중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하는 내내 송파구를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어찌 보면 나의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 같은 곳이다.
우리 가족이 잠실역 바로 옆 아파트에서 몇 년 산 적이 있는데 당시 아버지께서 온 가족 캐나다 이민을 준비하시면서 살던 다른 집을 정리하는 과정에 잠시 머물려다가 이민이 무산되면서 눌러앉게 된 곳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같은 반 친구와 단짝이 되었고 만화 그리기 취향과 유머 코드 등이 척척 잘 맞아 즐겁게 지냈다, 서로의 아파트가 이웃한 동이었기 때문에 시험 기간에 친구의 아이디어로 우리끼리 이벤트를 하기도 했다. 밤에 시험공부하다가 정해진 시간이 되면 방의 불을 끄고 손전등으로 창문 밖을 향해 신호를 보내는 이벤트였는데 조그만 일에도 웃음 터지는 사춘기 중학생이었던 우리가 한밤중 약속한 시각에 우리끼리 약속한 불빛 신호를 확인할 때면 얼마나 짜릿했던지.
내가 사는 동안 잠실역에 역사적인 랜드마크가 탄생했는데 바로 롯데 백화점과 롯데월드 어드벤처였다. 잠실역 주변에는 아파트가 워낙 많았고 지하상가 의류 판매장의 상품들이 저렴해서 젊은이들이 부담 없이 옷을 사러 모여드는 번화한 장소였다. 롯데 백화점과 롯데월드 어드벤처가 생겼으므로 집 근처에서 아이스링크와 수영장, 놀이공원까지 이용할 수 있는 파격적인 혜택을 주말이나 방학 때 친구들과 즐겁게 누릴 수 있었다.
결혼하고 경기도에서 직장을 잡고 살면서 송파구에서의 삶은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갔다.
그 옛날 롯데 백화점 옆에는 123층의 기가 질리도록 키 큰 롯데 월드 타워가 들어서 기존의 백화점과 어드벤처가 상대적으로 앙증맞아 보이게 되었다. 한 번은 하늘을 향해 서 있는 갈치 같기도 한 미끈한 롯데 월드 타워의 전망대에 운 좋게 무료로 가볼 기회를 얻었더랬다. 유리로 된 바닥을 걸어가며 아래를 내려다볼 때의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의 아찔함을 느낀게 가장 인상깊었고 가로로 널찍하게 펼쳐진 한강의 시원한 경치를 보며 올라오길 잘했다 싶었다. 워낙 높은 전망대에서 바라보니 예전에 살던 동네 잠실역 근처의 친근한 아파트들(주공 5단지, 장미 아파트, 송파동, 방이동의 여러 아파트 등)이 레고블록보다 작은 미미한 크기로 눈에 들어오는 게 낯설었다.
밤이 되면 잠실역과 그 옆 석촌호수 일대는 백화점, 어드벤처, 롯데 월드 타워와 석촌호수의 야간 조명까지 합쳐 화려함이 절정을 이뤄 밤이 없는 도시, 불야성(不夜城)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곳이 된다.
아버지의 롯데 월드 타워 야경 그림을 보면서 나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떠난 뒤 그다지 방문할 기회가 없는 동네가 된 잠실역에 다시 관심을 가져 보았다. 최근 몇 년 동안 가본 기억은 롯데 월드 타워에 있는 롯데 뮤지엄과 근처 소피텔 내 뮤지엄209 갤러리, 석촌호수 옆 이든 갤러리를 방문할 때 등 주로 전시회를 가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내가 머물던 시절보다 화려해지고 번화해져 예전에 살던 때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스치곤 했다.
나의 그림에는 자동차와 사람들로 늘 북적거리는 교통의 요지이면서 활기 넘치는 잠실역 일대의 분위기를 표현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재작년 가을 사진작가이면서 영상 제작자인 경완(KY FILM 대표)이라는 학생과 사진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 롯데 월드 타워를 찍은 그 아이의 사진을 보게 되었고 번화하고 도회적인 분위기를 잘 포착한 사진이 멋있어서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더니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이 그림을 그릴 때 훌륭한 풍경 사진을 참고하도록 도움 준 경완이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림 가장자리에 작은 글씨로 표시했고 전시하면 그 아이를 꼭 초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 인생의 짧지 않은 시절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갈 때마다 낯설어지는 화려한 롯데 월드 타워와 잠실역 사거리의 모습을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듯 푸른 빛으로 그렸고 차와 건물의 조명들이 어스름 속에 분홍색 별들이 반짝이는 것처럼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