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아버지의 수채화 작품을 다시 그리는 작업을 할 때 어떤 소재를 그려야 할지 오래 고민했던 작품이 춘천의 호수 위 자전거 도로를 달리는 자전거와 사람들이 나오는 그림이었다. 처음에는 춘천과 관련된 나의 추억을 그림의 소재로 삼아야 하나 생각도 해 봤지만 춘천이라는 풍경보다는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더 부각되는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자전거를 그리면 되지 않나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나는 자전거와 인연이 없는지라 관심도 없어서 그림 소재로 삼기 어려웠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우리 집에 어린이용 세 발 자전거가 들어왔다. 드디어 오빠와 나에게 자전거를 타는 시대가 열렸던 것인데 오빠는 금세 타는 법을 익혀서 신나게 타고 다녔고 겁이 많은 나는 한참 뒤에 그 자전거를 타려고 시도했다. 어리고 판단이 미숙해서였겠지만 나는 첫 자전거 운행을 내리막길에서 하는 무모한 시도를 했고 넘어져서 여기저기 살갗이 까여 피가 나는 결과를 얻은 뒤 세발자전거에 얼씬도 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따지고 보면 장소를 잘못 택한 내 잘못이었는데 자전거 탓을 하고 돌아선 것은 아마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내가 자전거를 타지 않기 위한 핑곗거리를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대학 졸업하고 여의도 공원과 경주의 어느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의 도움으로 두 발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려는 시도를 해 봤지만 혼자 한 바퀴 도는 정도를 터득하고는 도루묵이 되어 버렸다.
나의 운동 인생에 자전거는 그 기억들이 다였고 걷기와 같이 특별한 배움이 필요 없는 운동이 나와 잘 맞는다고 생각해 오다가 8년 전쯤 필라테스라는 운동에 입문하게 되었다.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몇몇 선생님들과 마음이 맞아 막 대중화되기 시작하던 필라테스의 그룹 강좌를 시작했다. 나는 이전에 요가를 몇 년 해 보았고 유연성이 그리 나쁘지 않은 편이라 요가와 유사한 점이 많은 필라테스에 금세 적응을 했고 퇴근 후 선생님들과 함께 하는 유익한 취미를 하나 갖게 되었다.
처음 선생님들과 필라테스를 했을 때 느낀 가장 큰 이점은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운동을 하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이완되고 그 과정에서 골치 아팠던 학교의 문제들, 버릇없는 학생들로 인해 받았던 상처들을 잊고 마음이 저절로 회복되는 일이었다. 사실 나는 교사로 일하기에 최적화된 성격과는 완전 반대로 마음이 여린 유리 멘탈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교단에 서기 시작한 뒤 몇 년간 지지리 고생을 한 사람이다. 학생들에게 큰 소리를 내지 못했고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현장에서 갈팡질팡하며 혼란스러워하는 길 잃은 초보 교사였다. 서른 살 넘어 늦게 시작한 교사 생활인데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아 계속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필라테스를 시작하던 시기는 교사가 된 지 몇 년이 지난 시점으로 좀 더 적응한 상태였지만 학교 일이란 것이 몸이 힘든 것보다 마음이 더 힘들다는 생각을 늘 하며 다니고 있었다.
그러한 나에게 마음의 평정을 찾게 해주는 필라테스의 심호흡 훈련과 강사님의 지시를 집중해서 듣다 보면 잡념을 잊을 수 있는 환경 등은 운동 이상의 것이었다. 운동 신경이 좋은 편이 아니어서 즐기는 운동이 있지 않았던 나는 다른 학교로 전근 갔을 때 직접 선생님들을 모아 그룹을 만들 만큼 열정을 보였다.
요즘은 생존을 위한 건강 유지와 함께 어릴 때부터 앞으로 굽어 있는 어깨와 등을 반듯하게 펴도록 자세를 바로잡는 일을 목적으로 필라테스를 하고 있다. 이번 달은 전시회 준비를 하면서 미완성 작품들이 많아 벼락치기를 하고 있는 관계로 잠시 쉬고 있지만 평정심을 갖게 도와주는 필라테스를 내 인생 운동으로 생각하고 남은 생애에도 부지런히 하려고 한다.
자전거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운동 관련된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먹고 필라테스에 관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 내가 다니는 필라테스 센터의 내부를 촬영하고 그것을 배경으로 하여 여러 사람이 필라테스하는 장면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리는 도중 처음 머릿속에 그렸던 것과 실제로 그리고 있는 작품 간의 간극이 커서 어떻게 진행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몇 번을 수정하다 점점 미궁으로 빠지는 느낌이 들어 전시 오픈 일주일 전에 다른 색으로 완전히 덮어 버렸다. 노란색 바탕 위에 운동으로 인한 기운, 에너지를 상징하는 붓터치들을 넣고 다른 요소들 없이 필라테스 동작을 하는 사람 한 명만 그리기로 구상한 뒤 밑 칠한 바탕 위에 단숨에 이미지를 그려 넣었다. 풍경을 그려야겠다는 고정관념을 없애고 필라테스를 할 때의 느낌 위주로 표현하기로 하니 오히려 편안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 풍경에서 얻은 상상을 소재로 하여 많은 고민과 붓질이 들어간 그림들이 대다수인 이번 전시 작품들 중 드로잉적인 붓질로 간결하게 그린 이 인물화는 색다른 인상을 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