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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자의 서랍 Dec 14. 2022

누군가 나 때문에 설렌 적 있었을까?



이제 겨울이다. 엊그제 주말에 늦잠이 들었다가 블라인드를 내리지 않은 창밖으로 눈이 오는 것을  보았다. 눈 때문에 멀지 않은 아파트가 흐릿하게 보였다. 첫눈이었다. 쉰여섯 살에 입학한 대학 4학년 때의 일이 생각났다.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듯 그렇게 다 비슷해 보이던 아이들과 공부를 하면서 처음에 비하면 제법 여유 있는 학교생활을 해 나갈 때였다.


4학년이 되고 첫 학기였다. '문예창작 실습'이라는 3학점짜리 수업의 첫 시간이었다. 강의실에 빈자리가 거의 없도록 수강생이 많았다. 내 옆자리는 항상 맨 마지막에 채워졌다.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수업이 시작할 무렵 들어온 누군가가 비어있는 자리를 찾아 내 옆으로 왔다. 처음 보는 남학생이었다.


몇 번의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시간에 딱 맞추어 들어오는 녀석은 단골처럼 그때까지 남아있던 내 옆자리에 자연스럽게 앉게 되었다.


"너 처음 본다. 몇 학년이야?"


녀석은 군대를 다녀온 4학년 공대생이라고 했다. 군대를 다녀오고 복학을 했으니 나이는 스물대여섯쯤 되었으리라.  복수전공을 하면서 맞물리는 수업 때문에 공대 수업이 끝나자마자 제법 멀리 있는 '인문관' 3층까지 뛰어오는 것이었다. 3학년 때도 나와 같은 수업을 들은 적  있다면서 녀석은 나를 알고 있었다. 알고 나면 보인다고 그 뒤로는 수업 때가 아니어도 카페나 기숙사 근처에서 가끔 친구들과 있는 녀석이 내 눈에 보였다.


봄이 무르익은 학교에는 활짝 핀 매화꽃이 지천이었다.





수업은 '자기 발견을 위한 글쓰기'로 진행되었고, 첫 발표과제는 '유언장 작성하기'였다. 자신의 유언장을 미리 작성한 다음 한 사람씩 나와서 읽는 것이다. 가상의 유언장이었지만 분위기는 가볍지 않았다. 나는 그 수업을 망해버렸다. 정말 애써 감정을 빼고 형식적으로 작성한 유언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앞에 나가서 그것을 읽다가 그만 눈물을 보인 것이다. 몇몇 여학생들의 목소리가 떨리긴 했어도 나처럼 눈물을 보인 사람은 었다. 눈물 때문에 흐려진 눈에 '힘내세요! 잘하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듯한 녀석의 어른스러운 눈과 마주쳤다. 나는 부끄러웠다.


또 한 번은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서 글로 써보고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와서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도 녀석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엄지를 들어 보이며 '잘하고 있어요~!'라는 무언의 응원을 보냈다.


우리는 서너 번 학교 근처에서 함께 밥을 먹었다. 다른 과 학생이라는 것이 우리 과 아이들보다 덜 부담스러웠다. 어떤 때는 녀석이 오기 전 누군가 내 옆자리에 앉아버리면 공연히 실망스러웠다. 그렇게 가까워진 녀석에게 영상 편집하는 것과  내가 할 줄 아는 기본적인 ppt를 좀 더 다양하게 꾸미는 것까지 조언을 받았다. 든든했다. 예의 바르고 싹싹한 것이 멀리 떨어져 살면서 전화도 자주 안 하는 아들들보다 열 배는 나았다.






나는 그 수업을 기다렸다. 그러면서 수업이 끝나고 녀석과 밥을 먹는 시간이 즐거웠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함께 점심을 먹을까 싶어  녀석이 먼저 나가는 것을 보고 바로 뒤따라 나갔는데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벌써 계단을 내려갔나 싶어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순간, 강의실 앞 화장실에서  나온 녀석이 기다리던 친구와 함께 나와는 반대쪽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 정체를 모르는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나는 이때 왜 몸을 숨기고 싶도록 부끄러웠는지 모르겠다. 혼자 계단을 걸어 내려오면서 온갖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했다.


"아이들에게 너무 잘해주지 마! 요즘 애들은 나이 먹은 아줌마의 친절을 불편해 할 수도 있으니까~"


입학할 때 작은아들이 몇 번이나 당부하던 말이 그때 생각났다. 나만 혼자 신났었구나! 이 나이가 되도록 상대의 입장 헤아리지 않고 내 생각만 했구나! 녀석은 나를 귀찮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예의상 냉정하게 거절하지 못하고 끌려 다닌 것일 수 있다. 그날도 내게 직접 말하기 곤란하니까 친구를 불러냈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아~ 바보 멍청이 같으니라고!






살면서 많은 후회를 하게 된다. 아마도 누구나 그럴 것이다. 후회는 항상 이미 벌어진 일이므로 다시는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어떤 후회는 가슴에 남아 씨가 되고 상처가 되어 오래가기도 한다. 나는 그날 저녁 녀석과의 일방적으로 즐거웠던 시간을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며 후회하 반성다. 수업은 조금 남아있었지만 전처럼 즐겁게 기다려지지 않았다. 녀석과 마주치면 갑자기 어색하고 편했다.


내가 먼저 물어보고 저장한 녀석의 전화번호를 지웠다. 어느 때, 이상한 변명이나 합리화를 하면서 녀석에게 전화할 것 같은 나 자신을 믿지 못해서였다. 그렇게 녀석과 나의 관계는 일방적으로 끝이 났다. 기말고사가 시작될 무렵, 한 번 인문관 로비에서 친구와 함께 있는 녀석을 보았다. 녀석을 먼저 본 나는 못 본 척 얼른 고개를 돌렸다. 가슴이 아팠다.


잘 대해주던 어른이 어느 날 차가워진 것을 느낀 녀석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생각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녀석에게 진지하게 '생각해보니까 너무 내 생각만 한 것 같아서'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러면 녀석은 '괜찮아요~'라고 대답했을 것이고 나는 그걸 그만 믿어버렸겠지.


이미 혼자 결론을 내버린 나는 녀석과의 마무리를 어른스럽게 하지 못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서툰 나는 갑자기 '일찍 철든' 내면의 아이가 나타나면 더 이상 '어른'스럽지 못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는 과정을 경험하지 못하고 무엇이든 글로 배워 아는 까닭이다.






나는 그 뒤로 깊은 후회를 하면서 감정에 무던해지려고 노력했다. 나잇값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강박처럼 새겼다. 하지만 그것도 참 어렵다. 나는 그때 녀석에게 어떻게 했어야 어른스럽게 마무리를 잘한 것인지 지금도 알지 못한다. 지금도 그때와 똑같이 비겁하게 회피하는 것을 선택했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어설픈 어른으로  머물고 있으니까. 


이제 부끄러움을 참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때 나는 녀석에게 레었던 게 분명하다.





눈 내리는 늦은 이 아침에  누군가 나 때문에 렌 적 있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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