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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자의 조각보 Jan 11. 2023

시린 발과 크리스마스 선물





이 이야기는 나의 대부분 글이 그렇듯이 50년 전쯤 크리스마스 때의 기억이다.


셋방이지만 우리 집은 기차역 근처에서 가까웠고 역을 중심으로 식당, 서점, 옷가게, 빵집, 영화관, 다방, 은행, 안경원, 양복점옆에 구두가게까지 다 몰려 있었다. 이 번화한 거리는 역 광장 앞쪽에서 시작되어 고속버스 터미널과 기업은행 쪽으로 해서 한일극장과 장로교회를 지나 중앙시장이 있는 곳까지 이어졌다.


우리 집에서 작은 오르막 골목을 지나면 옛날 군청이 있던 자리가 있어 우리가 '군청거리'라 부르는 번화가가 나왔다. 군청은 변두리 어디쯤으로 건물을 새로 지어 이전을 했지만 오래된 은행나무, 아카시아 나무와 일본식 건물처럼 보이는 커다란 군청건물이 그대로 비어있을 때였다. 그 옆에는 '장로교회'가 하나 있었다. 오래된 교회 낡은 교회옆에 커다랗고 멋진 새 교회를 지었다. 짓기 전 낡은 교회도 그 자리에 그대로 두었다. 교회와 군청자리는 서로 바로 옆이었고 그곳의 늙고 커다란 나무들이 이어진 듯 떨어진 듯 교회와 군청의 경계가 되어주고 있었다. 교회는 역과 중앙시장으로 이어지는 번화가의 중간쯤이었다.





교회 건너편 거리에는 새점 치는 아저씨도 있었다. 좁은 나무칸에 운수를 적은 작은 종이를 끼워 넣고 새가 물어내는 종이를 펼쳐서 운수를 점쳐주는 것이다. 초록빛의 새는 날아가지 않고 작은 새장 안에 있거나 아저씨의 손가락 위에서만 포로롱 거리며 놀았다.


새점 치는 아저씨 옆에는 물을 담은 넓은 양철 함지박에 살아있는 물방개를 숟가락으로 떠 넣고 물방개가 헤엄쳐 들어가는 칸에 올려진 상품을 주는 물방개게임도 있었다. 상품은 주로 담배나 술이었고, 그것의 주인아주머니는 국방색으로 만든 지퍼가 달린 커다란 전대를 허리에 차고 있었다. 나는 까맣게 빛나는 등껍질을 가진 물방개가 상품이 올려진 칸막이 안으로 빨리 안 들어가고 가운데만 빙빙 돌면 공연히 애가 탔다.  


호기심에 구경을 하고 있으면 '니들 놀이 아니니 애들은 가라!'며 쫓겨나기 일쑤였다. 도장과 명함을 만들어 준다는 작은 간판이 걸린 옹색한 가건물도 한 채 있었다. 그곳은 하루종일 해가 드는 양지바른 곳이어서 무료한 어르신들이 옹기종기 모여 장기나 바둑을 두기도 했다.






어느 해 크리스마스였다. 우리 삼 남매가 모두 국민학생이었다. 오빠가 6학년, 내가 4학년, 동생 경미가 1학년이었다. 크리스마스 날이면 우리는 모두 그 장로교회에 갔다. 크리스마스에는 그곳에 오는 모든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었다. 우리는 벌써 두 해나 선물을 받은 적이 있다. 작은 종이봉투에 사탕과 과자, 그리고 빵을 넣은 것이었다. 군것질거리가 흔치 않기도 했지만 선물 받는 재미있었다.


그 해 크리스마스는 유독 추웠다. 우리 삼 남매는 집에서 모자에 장갑까지 중무장을 하고 교회에 갔다. 일찍 도착한 탓인지 추위 탓인지 아이들이 몇 명 없었다. 새로 지은 교회에는 어른들이 들어갔고 우리는 새로 짓기 전의 낡은 교회에 있어야 했다. 바닥은 마루였고 차가웠다. 겨울바람에 덜컹거리는 창문이 학교 교실처럼 양쪽으로 나란히 있었다. 한 데나 다름없었다. 교회 구석에 쌓여있던 방석을 가져다 놓고 올라가 있었지만 발은 서서히 얼어오고 있었다. 코에서는 맑은 콧물이 떨어졌다. 나는 발 시림을 견딜 수가 없었다. 양말은 자투리 실을 가지고 엄마가 대바늘로 떠준 알록달록한 색깔의 뜨개양말이었다. 투박하긴 했지만 따스하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아이들은 점점 많아졌고 선물 받을 시간이 가까워 온다는 것을 알았지만 내 발 감각은 없어져 가고 있었다. 마치 발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나 집에 갈래! 발 시려서 안 되겠어~"


선물보다도 발 시린 것을 참기 어려웠다. 나는 신발을 찾아 신고 부리나케 집으로 왔다. 발에 감각이 없어 발을 디딜 때마다 땅바닥에 닿는 느낌이 없을 정도였다.




"왜 너만 온다니?"


엄마가 물었다. 나는 발이 시려 먼저 왔다고 말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뒤이어 엄마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어린 경미두 참구 기다리는디 그까짓 걸 못 참구 혼자 왔단 말이여?"


내 언 발이 다 녹기도 전에 오빠와 동생이 개선장군처럼 대문을 밀치며 들어왔다. 손에는 교회에서 나누어준 작은 종이봉투 선물이 들려있었다.


"내가 공연히 미워하는 게 아니라니께? 참을성이라구는 눈꼽만치두 없어가지구는.. 경자는 하나두 주지 말구 느덜끼리 먹어라! 발 좀 시리다구 고새를 못 참구 온 것은 먹을 자격두 읍다"


나는 숨어서 울었다. 그까짓 과자를 나누어 먹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얼마나 발이 시렸을까를 이해받지 못한 것이 서러워서였다. 그다음 해부터 우리는 크리스마스가 되어도 교회에 가지 않았다. 오빠가 중학생이 된 까닭이었을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때처럼, 문득 발이 시려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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