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
인간세상을 원만히 살아가기 위해서는 탁월한 균형감각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어떤 분야에서든 어느 한 쪽에도 치우침 없는 중용의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균형의 대상이 과연 세상에 존재하는지가 문제된다. 어떤 양극단의 대상이 있어야 대극간의 균형이라는 관념이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대극이 없다면 균형도 없는 것이다.
사실은 이렇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세상을 인식한다. 언어는 이원화된 대립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언어를 통해 세상을 인식하는 인간은 이원화된 구조로 세상을 바라본다. 이원화된 관념이 형성되는 순간 대극이 형성되고, 그 대극 간 균형이라는 관념도 형성되는 것이다.
인간이 사실상 언어를 사용하지 않은 채 살아갈 수 없다는 점을 전제했을 때 비록 무의미할지언정 이원론적 인식 간의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다만 균형의 대상인 대극이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과 자기가 가상의 대극을 형성한 후 양단간의 균형을 맞추려는 부질없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경계 없는 영토에 경계선을 설정한 후 자기 스스로 만들어낸 것에 불과한 가상의 경계선을 끊임없이 조절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어리석은 인간의 실재적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