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일!
법의 본질은 언어라는 상징체계를 이용한 인간 정신의 통제이다. 법이 엄격하게 이원화된 구조로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는 것은 이항대립으로 성립하는 언어의 구조와 정확히 일치한다(엄밀히 말하면 법을 비롯한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은 언어의 상징체계 내에 구속되어 있으며, 언어 밖의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법을 통해 치밀하게 설계된 상징체계의 감옥에 갇힌다. 법은 인간에게 상징폭력을 가함으로써 인간의 병리적 현상을 통제하고자 한다. 따라서 법의 기본적 입장은 정확히 인간 불신에서 비롯된다. 법은 인간에 대한 불신을 기반으로 인간관계에서 최소한의 조건적 신용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능한다. 그러나 폭력은 근원적으로 병리현상을 치유할 수 없으며, 더 나아가 법의 근본 체계인 언어라는 상징체계는 인간에게 병리현상을 일으키는 분리감 또는 고립감을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이렇게 볼 때 법의 목적은 인간의 병리적 현상에 대한 치유가 아니라 통제 또는 격리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인간의 병리적 현상의 근본 원인은 인간의 언어 사용으로 인한 모순에 있다. 즉 인간의 병리현상은 인간이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언어의 이항대립적 모순 구조에 의해 발생하는 분리감 또는 고립감으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정확히 언어의 이항대립적 모순 구조를 바탕으로 하는 법이 언어의 이항대립적 모순 구조에 의해 병들어 있는 인간의 정신에 대처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병리적 현상을 치유하기 위한 근본 대책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으로부터 병리적 현상을 일으키는지에 대한 근본 원인을 파악하면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 인간이 근본적으로 병리적 현상을 일으키는 이유는 언어의 사용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병리현상에 대한 근본 대책은 언어가 끊어진 완전한 침묵 상태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인간의 병리 현상은 정치적•사회적•문화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오로지 개인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은 언어 사용에 의해 분리되어 있는 자기의 의식을 집중적 명상행위 또는 존재적 삶의 태도를 통해 다시금 하나로 합일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인간의 언어 사용에 의한 분리감 또는 고립감이 모든 병리 현상의 근본 원인이기 때문에 그렇다). 더 나아가 인간은 궁극적으로 인간관계를 설계함에 있어 법이 지향하는 조건적 신용관계(자본주의 경제 제도로부터 비롯된 대중적•집단적 사고방식)를 넘어서,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인 무조건적 신뢰관계(철학 관념론의 존재적 유아론, 의식의 심연에서 바라본 ‘나’와 ‘비아’의 동일성)를 회복하고자 노력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