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
우리가 다양한 경험을 행동으로 실천해봐야 하는 이유는 지적 탐구만으로는 우리의 감수성을 발달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골방에 갇혀서 책만 읽는 지식인은 얼마나 따분한가. 우리 삶의 본질은 추상화가 아닌 구체화이다. 이것이 바로 추상적인 언어 유희로는 구체적인 삶의 체험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우리는 다양한 경험을 구체적으로 체험해보아야 한다. 구체적 체험을 통해 우리의 감수성을 자극해서 깨어나게 해야 한다. 인간은 일정 연령이 지나면 끊임없이 추상의 세계로 잠들어 버리는 특성이 있기에.
구체적인 문화적 체험을 통해 얻은 체험적 영감을 바탕으로 우리는 그것의 본질에 닿을 수 있도록 그것의 표지를 해부하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표면을 해부해보지 않고서는 그 안에 들어 있는 심연을 알 수 없으며, 자칫 빙산의 일각만을 보고 그것을 빙산의 전체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변사자를 검시해보지 않고서는 그 사인을 알 수 없는 법이 아니겠는가. 우리의 문화적 체험은 철학이라는 메스를 통해 해부되어 심해에 다다른다. 문화적 체험을 통해 넓힌 길은 철학적 수렴을 통해 깊이감을 더하게 된다.
그러나 본질에 깊숙이 침잠한 인간은 심해의 숨막힐 듯한 압력에 질식할 듯한 느낌을 받는다. 계속해서 수렴만 하는 인간의 정신은 극도로 압축되어 쪼그라들게 된다. 예술은 극도로 압축된 점에 대한 빅뱅의 화학 작용을 일으킨다. 인간의 본질적 고독을 느낀 인간은 그것의 예술적 승화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예술적 발산은 철학적 수렴의 해방구가 되는 것이다. 인간은 이로써 예술가가 될 수 있다. 문화적 영감, 철학적 수렴, 예술적 발산의 선순환 고리가 끊임없이 작동하는 인간만이 창조적인 인생을 설계해 나갈 수 있다. 세 가지 요소 중 하나라도 결여된다면 인간의 정신은 끊임없이 분열되어 공황을 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