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중용-무상-직관의 무한 순환고리

합일!

by Edit Sage

우리는 모두 세상에서 자유롭게 모험을 하는 여행자들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살아간다. 모험에서 얻은 경험은 추후 언어화되어 우리의 정신에 교훈으로 남게 된다. 그러나 구체적인 경험이 추상적인 언어적 관념으로 전환되는 순간 우리의 정신세계는 딱딱해지고 굳어진다. 언어적인 세계관 속에서 매뉴얼대로 행동하는 사람은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뻣뻣한, 마치 로보트와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현실의 조건과 상황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데 그에 맞춰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고정된 매뉴얼대로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적인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을 때 삶의 구체적인 경험과 배치되는 듯한 묘한 감각은 우리에게 균형감각의 필요성을 깨닫게 해준다.

중용이란 언어의 이항대립적 모순 구조에서 대극 중 하나만을 극단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적으로 펼쳐진 양극단의 세계관 사이의 균형점을 찾으려는 시도이다. 개방성과 폐쇄성 사이, 겸손함과 자부심 사이, 포용력과 절제력 사이, 이타심과 이기심 사이, 친절함과 엄격함 사이, 둔감력과 민감력 사이, 기획력과 실천력 사이, 관조와 행동 사이, 유연함과 강인함 사이, 부드러움과 까칠함 사이, 감성과 이성 사이, 냉정과 열정 사이, 언어와 직관 사이, 순응과 탈주 사이 그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무형의 균형점을 찾아 그에 맞게 살고자 하는 태도를 중용적 태도라고 부른다. 사실 언어적인 양극단의 프레임은 있는 그대로의 구체적인 현실이 아닌 추상적인 가상의 관념일 뿐이다. 이것을 더 확장시켜 생각해본다면 양극단의 프레임 중 하나를 택하는 것 역시 허상이며, 그에 따른 갈등 역시 그릇된 착각에 불과할 뿐이다. 이런 이유로 중용적 자세가 일상의 곳곳에 자연스럽게 배어 있는 사람은 무의미한 에너지 소모 없이 인생을 평탄하게 살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은 셈이다.

중용의 미를 갖춘 사람이 중용적인 자세를 더욱 엄격하게 견지하다 보면 결국 무상(無相)을 깨닫게 된다. 대극의 한쪽면을 선택했기에 반대쪽면이 생성되는 것이기에. 처음부터 상(像)은 존재하지 않았던, 허상(虛像)이었던 것이며, 애당초 극(極)은 존재하지 않았던, 무극(無極)이었던 것이다. 처음 모험을 떠났을 당시 체험했던 구체적인 경험이 언어화되어 양극단의 관념으로 형성되는 순간 가상의 극이 형성되고, 구체적인 경험, 즉 무극은 언어적인 관념, 곧 양극으로 갈라지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가상으로 설계된 양극의 균형점을 찾고자 하는 중용적 자세 역시 허상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언어적 세계관의 무상(無相)을 깨닫게 된 자는 더는 특정 세계관 또는 가치관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그것이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게 된 자는 이 때부터 언어를 걷어낸 직관적인 느낌 그 자체에 주목하게 된다. 직관적인 느낌의 생생함을 느끼기 위해 이 자는 다시 모험을 떠난다. 모험에서 얻게 된 느낌은 다시금 언어화되어 의식에 떠오른다. 또 다시 순환고리가 반복된다. 모험에서 중용으로, 중용에서 무상으로, 무상에서 직관으로, 직관에서 다시 모험으로. 1순환, 2순환, 3순환, … 순환이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이 자는 더욱 원숙하고 오묘한,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인간상으로 변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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