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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선배”의 호칭을 코드화하였나?

조직 코드에 열등감 심기, 장막의 배후에 있는 권력설계자에 관하여

by Edit Sage Mar 26. 2025

‘선’배란 무엇인가?

그 호칭은

시간의 서열이 아니라,

존재의 위계를 전제한다.



‘선배’는 앞섰다는 뜻이 아니다.

“앞섰음을 기억하라는 권력의 호출”이다.

그는 늘 말한다.

“내가 먼저 왔고,

그러니 내가 먼저 말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그 말 속엔

지금은 밀렸다는 불안이 있다.



그래서

‘선배’라는 호칭은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감정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코드가 된다.


그 코드의 핵심은 단 하나.

“나는 너보다 먼저라는 이유로

너보다 위여야 한다.”



그러나 ‘선배’의 존재는

항상 ‘후배’의 불안과 비교를 먹고 자란다.

그가 말할 수 있는 권력은

‘후배가 아직 말하지 못할 때’에만 유효하다.


후배가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고,

추월하고,

침묵의 위계를 해체하는 순간,

‘선배’라는 코드의 유효성은 무력해진다.



그렇다면,

이 구조는 누가 설계했는가?


그는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을 설계했다.



그는

호칭을 만들고,

호칭에 감정을 심고,

감정에 불안을 섞고,

불안을 위계로 둔갑시켰다.


그는 시스템 설계자다.

위계에서 감정이 올라오도록 설계하고,

감정이 언어를 굴복시키도록 배치했다.



“선배”는 단지 호칭이 아니다.

기억을 명령하는 호출어이며,

존재를 상기시키는 수직적 마크다.


그 호칭을 부를 때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말한다.

“당신은 나보다 앞섰다.”

그리고 그 말은 다시 돌아온다.

“그러니 나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이 모든 건

한 장막 속에서 일어난다.

말하지 않는 자는 설계자가 되고,

호칭을 반복하는 자는 사용자이며,

호칭에 반응하는 자는 피지배자가 된다.



묻는다.

그 호칭은 지금도 유효한가?

아니면

감정의 명령어가

언어로 위장된 형태일 뿐인가?



‘선배’가 선(善)하지 않은 순간,

‘후배’는 후(後)로 남기를 거부해야 한다.



그러니 다시 되묻는다.

호칭이 위계를 설계하는가?

아니면

우리가 위계를 정당화하기 위해

호칭을 선택한 것인가?


그 질문이 닿는 순간,

당신은 더 이상

“선배-후배” 구조의

사용자가 아니다.


‘해체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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