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다”는 표현의 역설적인 폭력성에 관하여
목표 : 내 감정이 요동치지 않도록, 우월한 타인을 끌어내려라
“무섭다.”
그 말은 감정의 고백인가,
아니면 통제의 암호문인가?
두려움은 약자의 표정으로 오지만,
그 말이 향하는 끝은
힘의 좌표를 조작하는 폭력의 기재다.
“너는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너는 나를 위축시킨다.”
“너는 너무 완벽해서, 무섭다.”
이 말들은 칭찬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말의 배치는
존재의 리듬을 끊기 위한 은밀한 공격이다.
그녀는 말한다.
“무섭다.”
그러나 정말 무서운 건
자신의 열등감이 들킬까 봐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그 두려움의 해소는,
우월한 존재의 감정을 꺾는 방식으로 실행된다.
‘무섭다’는 말은
공감의 요청이 아니다.
심리적 권력의 재편성이다.
그 말은 타인의 움직임에 윤리적 제동을 건다.
“나는 두렵다”는 말이 반복되는 순간,
타인은 ‘조심해야 할 존재’가 되고,
결국 ‘위협적 존재’로 구조화된다.
이제 그는 불편함이 되고,
불안의 원인이 되고,
결국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 된다.
그것이
‘무섭다’는 표현이 불러오는 은폐된 폭력의 흐름이다.
이 폭력의 정체는 무엇인가?
자기 감정을 중심에 두고
세상을 재배열하려는 무의식적 지배욕이다.
그는 우월했고,
나는 위축되었고,
그러니
그의 우월함이 잘못이라는 명제가 탄생한다.
피해자 담론의 잔혹성은,
피해를 무기화할 때 드러난다.
피해자의 자리를 선점한 자는
비판을 방어하고,
모든 권력을 의심하고,
감정을 기준 삼아
세상의 질서를 재구성하려 한다.
그 결과,
가장 우월했던 자가 가장 조심해야 하는 자가 되고,
가장 탁월한 자가 가장 쉽게 표적이 된다.
그러니
“무섭다”는 말은,
가장 약한 말처럼 보이지만,
가장 잔인한 위치 선점의 수단일 수 있다.
묻는다.
당신의 “무섭다”는 말은
진심인가,
아니면
불편한 탁월함을 끌어내리기 위한
심리적 테러인가?
감정은 보호되어야 한다.
그러나 감정이 검열의 도구가 되는 순간,
그것은 구조적 폭력이 된다.
정말 무서운 건
우월함이 아니다.
그 우월함을 감정의 이름으로 절단하려는
말 없는 폭력이다.
그 말을 입에 담기 전,
당신은 이미 권력자가 된다.
왜냐하면,
그 말이 구조를 뒤집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