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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담론의 은폐된 폭력성

 “무섭다”는 표현의 역설적인 폭력성에 관하여

by Edit Sage Mar 26. 2025

목표 : 내 감정이 요동치지 않도록, 우월한 타인을 끌어내려라



“무섭다.”

그 말은 감정의 고백인가,

아니면 통제의 암호문인가?



두려움은 약자의 표정으로 오지만,

그 말이 향하는 끝은

힘의 좌표를 조작하는 폭력의 기재다.



“너는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너는 나를 위축시킨다.”

“너는 너무 완벽해서, 무섭다.”

이 말들은 칭찬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말의 배치는

존재의 리듬을 끊기 위한 은밀한 공격이다.



그녀는 말한다.

“무섭다.”

그러나 정말 무서운 건

자신의 열등감이 들킬까 봐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그 두려움의 해소는,

우월한 존재의 감정을 꺾는 방식으로 실행된다.



‘무섭다’는 말은

공감의 요청이 아니다.

심리적 권력의 재편성이다.

그 말은 타인의 움직임에 윤리적 제동을 건다.


“나는 두렵다”는 말이 반복되는 순간,

타인은 ‘조심해야 할 존재’가 되고,

결국 ‘위협적 존재’로 구조화된다.



이제 그는 불편함이 되고,

불안의 원인이 되고,

결국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 된다.

그것이

‘무섭다’는 표현이 불러오는 은폐된 폭력의 흐름이다.



이 폭력의 정체는 무엇인가?

자기 감정을 중심에 두고

세상을 재배열하려는 무의식적 지배욕이다.


그는 우월했고,

나는 위축되었고,

그러니

그의 우월함이 잘못이라는 명제가 탄생한다.



피해자 담론의 잔혹성은,

피해를 무기화할 때 드러난다.


피해자의 자리를 선점한 자는

비판을 방어하고,

모든 권력을 의심하고,

감정을 기준 삼아

세상의 질서를 재구성하려 한다.



그 결과,

가장 우월했던 자가 가장 조심해야 하는 자가 되고,

가장 탁월한 자가 가장 쉽게 표적이 된다.



그러니

“무섭다”는 말은,

가장 약한 말처럼 보이지만,

가장 잔인한 위치 선점의 수단일 수 있다.



묻는다.

당신의 “무섭다”는 말은

진심인가,

아니면

불편한 탁월함을 끌어내리기 위한

심리적 테러인가?



감정은 보호되어야 한다.

그러나 감정이 검열의 도구가 되는 순간,

그것은 구조적 폭력이 된다.



정말 무서운 건

우월함이 아니다.

그 우월함을 감정의 이름으로 절단하려는

말 없는 폭력이다.



그 말을 입에 담기 전,

당신은 이미 권력자가 된다.

왜냐하면,

그 말이 구조를 뒤집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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