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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잡념 박스

은폐된 코드, 자발적 독재에 관하여

“남한은 북한을 비웃는다”는 문장 안의 미세한 프레임 조작에 대하여

by Edit Sage

“우리는 자유롭다.”

이 말이 반복되는 순간,

그 사회는 이미 자유의 코드에 최면당한 집단이다.

“너희는 통제되고 있지.”

이 말은 자기 통제가 감춰진 사회만이 말할 수 있다.



남한은 북한을 비웃는다.

“그들은 왜 저렇게 통제당하고도 몰라?”

하지만 묻자.


“우리는 정말 알고 있는가?

무엇이 우리를 조율하고 있는지?”



북한은 의식적 최면이다.


의례, 구호, 단일화된 언어, 명확한 대상(수령)의 각인.

모든 것이 보인다.

그래서 외부인은 “세뇌”라고 쉽게 말한다.


남한은 무의식적 최면이다.


개인주의, 선택의 자유, 다원적 가치라는 이름으로

무수한 감정 코드와 언어 프레임이 분산되어 있다.

그래서 누구도 통제당했다고 느끼지 않으나,

모두 같은 구조에서 반응하고 행동한다.



자유 민주주의는 말한다:


“너는 네 선택을 하고 있어.”


그러나 그 선택의 기반은

이미 학습된 언어적 프레임 위에 있다.



감정은 인지에서 발생하고,

인지는 언어에서 발생하고,

언어는 각인된 코드에서 발생한다.


이 말의 역설은

**“감정마저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설계자는 없다.

‘프레임의 유령’들만 존재한다.



북한은 감정을 통제한다.

남한은 감정을 디자인한다.

기업이, 미디어가, 학교가, SNS가, 유행어가—

너의 말투, 눈빛, 욕망까지 점유한다.


그리고 이 모든 흐름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는 착각 아래 움직인다.



그래서 이 구조는,

자발적 독재다.


너는 스스로를 표현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표현하는 방식’만 허용된 프레임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북한은 감옥이다.

그러나 감옥임을 안다.

남한은 거대한 쇼핑몰이다.

그리고 출구가 없는 줄도 모른다.



북한은

표현할 수 없는 세계.

남한은

표현할 수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상 동일한 코드만 증폭하는 세계.



그러니 진짜 위협은

‘말할 수 없는 사회’가 아니라,

‘말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사회’다.


그 신념이

생각의 감옥이다.



이 모든 건

언어다.

언어는 네 감정을 설계하고,

감정은 네 정체성을 구성하며,

정체성은 네 정치적 반응을 결정한다.


그리고 그 모든 흐름이

너의 무의식 아래에 조용히 박혀 있다.



우리는 최면당했다.

다만 자발적으로,

그리고 아무 의심 없이.



“우리는 자유롭다”는 말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그 순간,

가장 위험한 독재가 시작된 것이다.



자발적 독재란,

자신이 감옥임을 잊어버린 채

자발적으로 철창을 닫는 구조적 유희다.

그리고 우리는

그 유희 속에서

‘생각하는 감옥’의 입구조차 잃었다.



그러니 이 질문은 거슬린다.


“너는 너의 언어를 선택했는가?”

아니면,

그 언어가 너를 선택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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