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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 still Oct 02. 2022

요가 경전에서 보는 요가를 하는 사람의 자격

빠딴잘리요가수트라(요가경) 1장 1절

다시 요가 경전, 빠딴잘리요가수트라 책을 펼쳐보고 있는 중이다.


일전에 보았던 책을 다시 펴면 전에 보지 못한 부분이 눈에 띄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 빠딴잘리요가수트라를 보면서도 내가 이런 것을 공부했었던 적이 있었나라는 생각을 계속해서 하게 된다. 예전에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점점  다른 의미로 보인다.  


맨 처음 빠딴잘리요가수트라를 공부할 때는 인도 요가학교에서 수업의 일부로 즉, 시험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으로 요가 경전을 공부를 했었고, 두 번째로 방콕에서 미얀마 비자를 받기 위해 기다리던 중 덥고 습한 날씨로 인해 반강제적으로 실내에서 머물게 되면서 우연찮게 빠딴잘리요가수트라가 내 눈에 들어와서 책을 한 번 읽었던 적이 있다. 그리고 이번이 3번 째이다. 이번에는 나름대로  스스로 노트를 만들어가면서 산스크리트어 단어 하나하나에 의미를 되새기며 읽어보고 있다.


빠딴잘리요가수트라(Patanjali Yoga Sutra, 요가경)는 4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첫 장은 Samadhi Pada로 요가란 무엇이고 다양한 명상의 단계와 명상으로 도달하게 되는 초월 의식에 대해 다루고 있다.


빠딴잘리요가수트라 1장 1절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지금부터 요가의 가르침이 시작된다."


अथ Atha는 지금부터, योग Yoga 요가,  अनुशासन Anusasana은 가르치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Atha라는 산스크리트어가 참 흥미로운 단어이다.  아따는 지금부터, 그리고 나서, 여기서부터 시작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나 대체적으로 행운을 가져다주는 길조의 시작을 알릴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 인도 신화 이야기 중에는 이 Atha라는 것을 읊조리는 것 자체가 길조를 의미하며, 아따는 브라마 신의 목에서 나오는 소리 Aum(옴)을 뜻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Atha라는 단어만으로도 이미 복 되고 길한 일이 시작된다고 간주된다.


Vedanta와 Jnana Yoga에서는  अथ Atha가 Sadhana Chatushtaya를 (수행자가 깨달음의 길에 반드시 수행되어야 하는 4가지 덕목) 의미한다고 풀이하였다.

Sadhana Chatushataya는 4가지로 Viveka (Discrimination, 식별력), Vairagya (Non-attachment, 무집착), Shatsampat (마음의 평안을 가져오는 6가지 태도)와 Mumukshutva(Longing for Enligntenment, 깨달음에 대한 열망)을 나타낸다. Shatsampat은 Tranquility(평정의 상태), Training of the sense (감각의 훈련), Withdrawal(감각의 회수), Forbearance(참을성), Faith(신념) and Focus(집중)을 나타낸다.




이 Atha라는 단어를 마주하면서 맨 먼저 드는 생각은 요가를 하는(공부하는) 사람의 자격이었다. 이런 글이 쓰일 당시의 상황을 상상해보면 우리나라 서당과 같은 모습으로 제자들은 스승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스승의 가르침을 갈망하며 앉아 있을 것이다. 스승 앞에 최대한 정갈한 모습으로 앉아있으면서 위와 같은 마음가짐들로 요가의 가르침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내가 상상하기에는 그 학생들은 요가를 공부하고자 하는 이유가 명확하였을 것이고, 요가를 공부할 수 있는 자격 조건들도 미리 갖추어진 수행자였을 것이다.  


Brahma Sutra 1장 1절에는 अथातो ब्रह्मजिज्ञासा (athāto brahma jijñāsā)이라는 구절이 있다.

지금이 절대 진실인 브라마에 대해 공부할 때이다. (now is the time to inquire about the absolute truth)이며 여기에서의 "Atha"는 물질 세상의 허망함을 이미 겪고 난 후에 무엇이 진정한 진실인지를 알고자 하는 것이라고 해석된다.  

 


 

2015년 Australia National University(호주국립대학교)에서 "나르시시즘과 소셜미디어가 요가 산업을 망친다"는 주제로 글을 작성하였었다. 이 당시의 글을 보면 이런 글이 있다. https://www.anu.edu.au/news/all-news/narcissism-and-social-media-damage-yoga-industry


Contorting your body into a pretzel on Instagram doesn't mean you are doing yoga, that's just your body type. 인스타그램에 프리첼처럼 몸을 비트는 사진을 올리는 것은 요가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신체 조건일 뿐이다.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요가를 운동의 일부로만 받아들이고 있기에 이런 의미는 생소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요가에 대한 연구결과를 보면 누가 요가를 만들었는지, 언제 요가가 시작되었는지, 얼마나 오랜 기간 요가가 전해져 내려왔는지, 어떤 계보를 타고 요가가 현세에 전해져 왔는지 등등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저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수많은 시간 동안 굽이굽이 거쳐 내려왔고, 현재까지 전해졌고, 감사하게도 작금을 살아가는 우리는 고대의 지혜가 가득한 요가를 각자의 자리에서 각각의 방법으로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에서 요가를 좋아하고 요가를 하는 사람들도 다 들 그들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요가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개개인의 의향은 존중하고자 한다. 다만 이 글을 통해 요가라는 것이 비단 운동의 일부 만이 아니며 고대에서 요가를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런 자격들을 갖추기를 권장하였다는 것을 되새겨보았으면 좋겠다.


참고 문헌

https://www.wisdomlib.org/definition/atha

https://www.yogapedia.com/definition/10768/sadhana-chatushtaya

https://www.anu.edu.au/news/all-news/narcissism-and-social-media-damage-yoga-industry

https://vaniquotes.org/wiki/Atha_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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