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걸어보기
여행 중 딱히 가야 할 곳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해야 할 일이 없을 때는 무료함을 느낀다.
호텔 방에서 잠이 완전히 깨고 나서도 늦게 까지 누워있기도 한다.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까지 침대에서 몸을 뒤척거리다가 배고픔이 간절해질 때쯤 물을 마시기 위해 몸을 움직이기도 한다. 방에 있으면서 딱히 무엇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터넷으로 여기저기 들여다보고, 책도 뒤적거려 보고,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은 지인들에게 연락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아무것도 할 것이 없으면 잠을 더 자는 것을 택할 때도 있다.
비자를 받고 비행기까지 타고 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에서만 시간을 보내고 있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그 드넓은 인도에 갈 곳이 얼마나 많은데 방에만 있느냐고 말이다.
무료함이 느껴지는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는 괜찮다.
나는 언제가부터 이 무료함이라는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무료함: 흥미 있는 일이 없어 심심하고 지루하다. (네이버 사전)
심심하고 지루한 감정도 그대로 느껴본다. 재미없는 여행도 있다. 매번 드라마틱하고, 극적이며, 재미있는 시간들로만 여행이 채워지지는 않는다.
나에게 주어진 이 무료한 시간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괜찮다. 딱히 할 것이 없으면 침대에 더 누워있을지를 고민하다가 방에 더 머물기도 하고, 몸을 움직이기 위해 호텔 방을 나가기도 한다.
추려한 모습으로 밖으로 나오기는 싫어서 간소하게나마 차려입고 호텔 방문을 열고 나온다. 딱히 할 것은 없다. 하루의 첫 끼니를 가까운 곳에서 챙겨 먹고 나서 배가 부르니 무작정 걸어보기로 한다.
무작정 걷는다고 해서 시간과 장소를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인도를 여행하는 원칙은 늘 안전한 곳을 안전한 시간에 간다는 것이다. 해가 떠 있는 시간에 여행자들이 많이 가는 곳을 특정 목적지를 정해놓지 않고 그냥 무작정 걷는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걷다 보면 나를 사로잡는 것이 한두개씩은 생긴다. 신기한 물건을 파는 가게들, 물건을 하나라도 더 팔아보려는 현지 상인들의 고민이 담긴 표정과 행동들, 바가지요금을 피해보려는 여행자들의 표정들과 말투들, 길거리의 개들과 원숭이들, 유유히 길을 걸어가는 소들, 새롭게 다가오는 가게들, 길거리의 간판들 등등, 그러다 길거리의 이쁜 랑골리도 만난다.
걷다가 목이 마르면 가게에 가서 물을 사서 마시고 길거리의 코코넛을 사서 마신다. 걷다가 배가 고프면 길거리음식을 사서 먹고,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간단하게 인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목적지가 없기 때문에 사실 길을 잃을 위험도 없다. 해가 떠 있는 시간 안에 목적지 없이 걷다 이쯤이면 되겠다 싶을 때 숙소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다. 무작정 걸음으로써 몸을 움직이고 땀을 좀 내고 나면 몸에 활기가 생긴다. 무작정 여기저기를 걸어보는 것이 무료함을 해결하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여행의 일부이다.
지인 중에 한명이 어떻게 여행 중에 무료함이 생기는지 묻는다. 여행 중에도 무료함이 생길 수도 있다. 여행도 삶의 일부이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