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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 의 Nov 13. 2024

엄마!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거야!

너에게 건넨 말은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01.

화담숲에 다녀왔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가을날이었다. 바빴던 평일들을 뒤로하고 아이들과 찐하게 보내는 하루였다. 그리고 정말... 두고두고 잊지 못할, 수민이와 함께 특별한 경험을 한 하루가 되었다.



화담숲은 정말 아름답지만.. 키즈 프렌들리 하지는 않다. 특히 유아차가 필요한 아가들에게.. 우리 아이들은 5살, 3살. 수민이는 괜찮을 수도 있는데 원규가 아직은 때때로 유아차가 필요하다. 아이들 짐을 걸어둘 수 있는 용으로도 필요하고. 작년에는 아이들이 더 어렸으니.. 유아차를 끌고 다니느라 고생을 좀 했었다. 모노레일 티켓을 못 구한 건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1구간에 있는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꽤나 한참을 잘 놀길래... 그냥 여기서 놀다가 해지면 갈까...? 싶었다. 티켓값 생각하면 살짝 아쉬웠는데, 또 힘들게 유아차 끌고 애 둘 데리고 올라갈 자신이 없어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같이 놀던 5살 친구를 통해 수민이가 '도장 찍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게 아니라 화담숲 지도를 펼치면 각 구간마다 도장을 찍을 수 있게 되어있었다. 5개 도장을 모두 다 찍으면 '선물'을 준다는 얘기에... 수민이는 도장을 찍으러 가겠다고, 선물을 받고 싶다고..!!! 보채기 시작했다. 그때가 4시 반이었다. 곧 해가 질 시간.. 한 바퀴를 다 돌려면 최소 90분이 걸리는데, 다섯 살 수민이와 가능할까...??? 난감했다. 그런데 아이에게 '우리 못해, 너무 늦었어, 할 수 없어'라는 말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수민아, 우리 이렇게 한 바퀴 다 돌려면 꽤 오래 걸어야 하는데. 수민이 걸을 수 있겠어? 수민이가 걷다가 다리가 아파도 엄마는 안아줄 수 없어. 수민이가 끝까지 걸어야 해. 할 수 있어?"


그랬더니 우리 수민이, 할 수 있다고 끄덕였다.



"그래! 그럼 우리 가보자. 최선을 다해보자!
우리 수민이 다리는 튼튼하니까 할 수 있을 거야!"


우린 남은 1시간 반 안에, 도장 5개를 다 찍고 매표소에 6시까지 도착을 해야만.. '선물'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남편과 원규는 두고, 나랑 수민이만.. 출발했다. 화담숲 한 바퀴를 돌러.





02.

수민이의 고사리 손을 맞잡고.. 단둘이 산을 오르고 내렸던 시간.. 함께 시시콜콜한 이야기 나누고, 아름다운 단풍과 하늘을 눈에 함께 담고, 지저귀는 새소리와 시원한 계곡 소리를 듣고.. 나한테 너무나도 필요한 시간이었다. 가을 단풍보다 값지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이는 언제 이렇게 컸는지.. 정말 씩씩하게 걸었다. 물론 중간중간에 계속 "어흐.." 하며 힘든 티도 내고, "언제 도착해?" 자주 묻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이에게 긍정의 말을 쏟아부었다. 절호의 기회라 생각했다. 긍정적인 성취의 경험!!! 을 함께 하고 싶었다.  



"우리 수민이 진짜 튼튼하다! 대단한데?"

"어쩜 이렇게 씩씩해?"

"우리 수민이가 힘들 텐데 이렇게 노력하고 힘내는 모습이 정말 멋져!"

"수민인 진짜 할 수 있어! 엄만 수민이 믿어"

"수민아, 엄마 수민이랑 이렇게 손잡고 걸으니까 정말 행복하다..
가자고 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지도를 중간중간 보며 계속 알려주었다. 우리가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마치 보물지도를 든 탐험대 마냥, 정말 힘차고 신나게!



수민이도 걱정이 됐는지, "엄마 이렇게 갔는데 문 닫아서 선물 못 받으면 어떡해?", 안내 방송이 나올 때마다 "엄마 이제 문 닫는대?" 계속 확인했다. 내 마음도... 사실 그랬다 ㅋㅋㅋㅋ 하지만,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거야. 우리 끝까지 최선을 다해보자!"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혹시나 최선을 다한 아이가 너무 실망할까 봐.. "만약에 혹-시라도 수민이가 최선을 다했는데도 아쉽게 선물이 없으면 엄마가 수민이 선물 줄게!" 하고 안심시켜 주었다.



어느덧 해가 지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노을을 바라보며, 어두워진 길을 조명 따라 함께 걸으며, 우리는 신나게 내리막길을 함께 뛰고 또 걸었다. 함께 낄낄대고 웃으며.. 아이는 초반에 힘들어했던 것보다.. 더 신나게 즐기고 있었다. "엄마 우리 뛸까? 뛰자!" 그리고 정말 멋지게 뛰었다 수민인..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아이는 훌쩍 커 있었다.



그렇게 내려와 1구간에서 남편과 원규를 만난 게 5시 50분... 진짜 뛰어야 했다. 매표소까지!! 손을 잡고 함께 뛰었다. 그리고 매표소에 도착한 건 5시 58분!!! 매표소에 블라인드가 내려와 있고 어두워서 직원분이 없나??? 했는데 다행히 한 분이 계셨다. 헉헉대며 "저희 도장 다 찍어왔어요..!!!!!" 말하고 지도를 건넸다. 확인하시더니 선물을 고르란다. 선물은 수민이 손바닥만 한 화담숲 마그넷. 봄, 여름, 가을, 겨울 4가지 디자인 중에 수민이는 봄을 골라 받았다. 그렇게 선물을 주고 나서 그 직원분은 바로 퇴근하셨다. 와...... 정말 마지막이었어. 나는 아주 힘껏 수민이를 축하해 주었다. 쌍따봉을 날리고 하이파이브를 하며.


우리가 해냈어 수민아!!!!!!!!!!!

우리가 정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했어!!!!!



생각보다 선물이 아주 작아서 ㅋㅋㅋㅋ 수민이가 다소 당황한 것 같았지만 ㅋㅋㅋㅋㅋㅋㅋ



03.

나조차도, 좀 놀랐다. 이게 진짜 됐네??? 진짜 우리 했네?? 이 시간,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진짜 해낸 경험이 너무나도 값졌다. 왜냐면.. 나도 의심했었으니까. 티는 안 냈지만, 습관적으로... '우리 안될 것 같아. 이미 너무 늦었어.'라는 말이 나올 뻔했으니까.


수민이에게 해준 긍정의 말들은.. 사실 나에게 더 필요한 말이었다. 맞다.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끝까지 해보라고. 포기하지 말고.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거라고... 아이에게 주고 싶었던 경험은.. 그 누구보다 나한테 필요했다.


요즘 내 머릿속에 떠다니며 나를 기죽이는 말들이었다. 안될 것 같아. 나 정말 모르겠어... 이거 맞아..?? 아닌 것 같은데..


너무 어렵고 막막하고 답답해서 펑펑 울었던 며칠 전..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이런 게 아니었던 거다.

"사업이 힘들지 뭐.."

"다 그렇게 힘들게 살아.."

"다 지나간다..? 에휴..."

그래서.. 괜히 전화했다 생각했었다.



이런 나를 알면.. 수민이는 뭐라 할까. 내가 수민이에게 말한 것처럼, 우리 수민이도.. 엄마!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지. 할 수 있어! 끝까지 해보자! 엄만 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겠지..? 화담숲을 걸으며 수민이에게 건넨 말들은.. 누구보다 내가 제일 듣고 싶었던 말이었나 보다.... 응원의 말.






04.

이렇게 글을 쓰며 눈물이 계속 나는 걸 보니... 내 영혼이 아주 많이 속상했었구나. 나 자신조차 나를 응원해 주지 못해서.



어쩌면.. 그 응원의 말을 듣고 싶어서.. 계속 헤맸던 건지도 모르겠다.

넌 할 수 있다고, 넌 튼튼하니까 끝까지 해보라고, 널 믿는다고.


그 말을 들을 곳이 없어서.

나조차도 나에게 말해주지 못해서.

이렇게 아이를 보며.. 깨닫는다.




지의야, 너 할 수 있어. 넌 또 찾을 거야. 널 믿어.

누구보다도 내가 널 매일 응원할게...! 내가 자꾸자꾸 말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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