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회사로 이직한 친구가 바쁘게 일하면서도 즐거워 보였다. 기뻤다. 친구의 새 일터는 이전 회사와 달리 의사소통도 자유로웠고, 조직문화는 수평적이고 건강해 보였다. 다행이었다. 그곳의 동료들은 친구의 능력을 높이 사면서, 친구를 연봉과 평가로 아낌없이 인정해주는 것 같았다. 내가 다 뿌듯했다.
그리고 부러움이 빠르게 따라붙었다. "친구는 원래 다니던 회사에서도 시키는 일만 하지 않고 자기 자리를 스스로 만들었던 애니까 당연해." 열등감도 비집어 나왔다. "나에겐 없는 집요함과 끈기 있는 애니까, 저렇게 이직하고 인정받으며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거야." 열등감에 잡아 먹혀 억울해지기 전, 잠깐 숨을 멈추고 생각한다. 부럽고 멋져 보이는 그 삶을 내가 살아보자고.
나는 동경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따라 한다. 비슷하게나마 손발을 뻗어보는 것이다. 대학에 들어와 보니, 연극하는 사람이 멋져 보였다. 연극부에 들어갔다. 패키지여행이 아닌, 가이드를 따라다니는 여행이 아닌, 혼자 씩씩하게 여행 다니는 사람을 동경했다. 프랑스로 교환학생을 간 6개월 간 혼자 티켓을 끊고 유럽의 저가 호스텔을 누볐다. 동경을 현실로 들이면, 방향을 잃은 부러움과 억울함이 "나도 해봐서 알겠다"로 바뀐다.
혼자 여행 다니던 교환학생 시절 @포르투
동경하는 삶 따라잡기는 내 취향과 욕구를 발굴할 수 있는 가장 쉽고 명확한 방법이다. 사람들이 다 비슷하게 동경할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지는 동경의 형태와 갈래는 천차만별이다. 닿을 수 없어 보이는 셀럽의 화려한 삶을 동경하는 사람이 있고, 적막한 삶에도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 동경은 내가 추구하는 삶의 지향점을 추하더라도 날 것 그대로 반사하는 거울이다.
막연히 동경했던 것이 내가 진정 원했던 것이 아니라 타인과 미디어의 욕망이었구나, 깨닫게 되기도 한다. 이달 초 챌린저스 앱에서 '7시 기상하기' 미션에 도전했다. 요즘 유행이라는 미라클 모닝 후기를 자꾸 찾아보다가, '직접 해보자' 결심한 것이다. 결론은, 8일 중 2일만 인증을 했고, 10000원을 걸고 한 미션에 실패했다. 사실 나는 해도 뜨기 전 깜깜한 새벽에 일어나, 찬 공기를 헤치며 굳은 몸을 움직이는 '미라클 모닝'을 싫어한다.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이며 자아를 찾는 사람들은 멋졌지만, 내 욕망은 아니었던 것이다. 직접 해보면 실루엣뿐이던 욕망은 제대로 된 실체를 보여준다.
25퍼센트만 성공한 7시 기상 미션
물론, 직접 행동하는 것보다 마음이 가는 방법은 따로 있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지. 저렇게 미라클 모닝 해도 근무시간에 졸릴 거야 분명." 하며 냉소하는 것이다. 반짝이는 모습이 부러운 만큼, 그 어두운 뒷면을 추측하고 상상하며 자위하는 것이다.
"Anyone can be cynical. Dare to be an optimist." 책 <개인주의자 선언>에서 본 문장처럼 나는 냉소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내가 동경하는 사람은, 멋진 사람을 보면 그를 따라 해 보고 함께 하며 함께 멋진 사람이 되는 사람이다. 열등감에 사로잡혀 반짝거리는 사람들의 흠을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는 사람이 아니라. 허둥대는 길 위에서 나만의 욕망을 찾고, 나만의 멋을 찾게 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