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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우물 Mar 06. 2024

유머45 성(性)에 관한 담론

드디어 유머와 조크의 마지막 능선인 ‘성(性)’이란 고개에 다다랐다.

이는 인간의 가장 강력한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것이라 이야기 감으로는 이보다 더 호기심을 유발할 만한 소재도 없다. 그런데도 “이 고개를 넘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며 몇 날 며칠을 망설였던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 민족은 조선왕조 오백 년을 지나오면서 유교의 본고장인 중국보다 훨씬 엄격한 유교 사상과 그 문화에 젖어온 터라 우리 세대만 하더라도 공개 석상에서 성에 관한 이야기를 농담 삼아 꺼내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던 분위기 속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자연스런 인간의 본능을 억지로 억누르다 보면 엉뚱한 곳으로 불거지거나 음지로 숨어 들어가 건전치 못한 방향으로 발달하기 마련이라 결과적으로 우리네 성 관련 우스갯소리란 것들이 외설스럽다 못해 음담패설 수준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그러니 이런 걸 섣불리 잘못 건드렸다간 지금껏 고품격 유머를 지향해 온 이글의 말미에 와서 다 된 밥에 코 빠뜨릴 위험성이 너무 커 망설여질 수밖에.     


그러나 이제 시대가 시대니만큼 이런 유의 이야기도 한 차원 끌어올려 음습한 미소 대신 ‘풒’ 하며 터져 나오는 밝고 가벼운 웃음의 소재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싶어 위험한 이 고갯길을 넘기로 했다. 

 



역시 이 고갯길은 험난했다. 이렇게 어렵사리 발을 들여놓았는데 첫걸음부터 난관에 부딪힌다. “이 카테고리의 이름을 뭐라 하지?”     

이때 제일 먼저 떠오른 말은 ‘Y이란 익숙한 단어였다.


일본인들은 예로부터 이런 유의 이야기를  '술좌석에서 함부로 떠드는 성에 관한 음란한 이야기’란  뜻으로   '함부로 猥(외)‘ 자에 '말씀 談(담)' 자를 붙여 와이당/와이단(わいだん猥談)이라 불렀는데, 일제 강점기 이후 한국에서 사용될 때는 ‘와이’라는 발음이 영어 'Y'로 오인되어 'Y'이란 정체불명의 오묘한 용어로 변신하였다.     


연유야 어찌 됐든 이 Y담이란 용어는 1990년대까지 널리 사용되어 1950년대 초반 출생인 나 같은 세대에게는 40여 년 동안이나 귀에 익은 단어라 친근감이 들 수밖에. 게다가 듣기에도 점잖고, 뭔가 있어 보이고.  하지만 일본말에서 유래한 철 지난 용어를 그대로 끌어다 쓸 순 없는 법이라 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적당한  우리말  용어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뒤져봤더니 기도 안 찬다.       

   

음담(淫談): 음탕한 이야기 

외설(猥褻): 외람할 猥에 더러울  褻을  써  추잡하고  음란한  이야기란 뜻 

육담(肉談): 음탕하고 품격이 낮은 말이나  이야기.

야담(冶談): 풀무 冶에 말씀 談을 써서 뜨끈한 성적 본능에 풀무질해 대는 이야기란 의미.


 이 말은 곧 우리 선조들은 이런 이야기를 아주 쓰레기 취급하여 제대로 된 이름조차 붙여주지 않았단 말이  아닌가.  

하여, 이왕 유머와 조크라는 영어 단어로 시작하였으니, 마지막도 영어로 장식하자 싶어 ‘성적 농담’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를 조사한 결과 이 또한 답이 안되기는 마찬가지였다.    

 

Smutty jokes:(음란 조크); 성적인 주제를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음란 조크

Racy jokes:(암시적 조크): 성적인 주제를 은근하게 암시하거나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조크.

Double entendre jokes(더블미닝 조크): 같은 말이 두 가지 의미를 지녀 표면적인 의미는 성과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맥락에 따라 성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조크.

Sex satire(성 풍자): 성적인 내용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거나 경고하는 조크

Blue comedy(블루 코미디): 성, 종교, 정치 등 사회에서 금기시되는 주제를 다루는 유머로서 성적인 내용을 포함할 수 있으며 듣는 사람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그런 장르의 조크.     


그렇다고 해서 요즈음 젊은 세대가 쓰는 색드립(빛 色 자와 ad-lip을 합쳐 만들어진 혼종어)이라 하기도 그렇고. 그렇다면 아예 이  참에  용어를  하나  만들어?


몇  가지  단어를  떠올려 보았다.      

밤일 이야기란 뜻으로 야담(夜談)

야한 이야기란 뜻으로 야화(冶話)

성적인 농담이란 뜻으로 성농(性弄)?       


 역시 마음에 안 든다.      

그러다 고심 끝에 멋진 말이 하나 떠올랐다.

성에 대한 담론이란 뜻으로 성담(性談).    

전혀 외설스럽게 들리지 않으면서 광범위한 소재를 아우를 수 있는 용어. 

이야말로 이 카테고리의 용어로 안성맞춤인 단어인 것 같아 앞으로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



*표제 그림:

신윤복의 풍속도  '단오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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