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산행으로 우리는 오대산을 제일 먼저 선택한다. 오대산과 설악산은 그 위치와 시기도 거의 동시에 단풍이 시작되는 듯 하다. 물론 산 정상이야 설악산이 먼저다.
우리 능력에 맞게 단풍 산행으로 선택할 수 있는 산행 코스로 오대산 선재길이나 설악산 흘림골을 꼽게 된다. 그런 다음 차츰 아래로 내려가며 단풍 산길을 훑는다. 속리산, 내장산, 멀리 두륜산까지 다녀오고 나면 그제야 우리집 앞이 얼마나 예쁘게 물들었는지 깨닫고 실없이 웃어버리곤 했다. 서울이 밀집된 인구때문인지, 숲보다 건물이 많아서 그런지 기온이 살짝 높은 편이다. 그래서 거의 남도 두륜산 단풍과 비슷한 시기에 아파트 화단의 단풍이 절정에 이르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이사 온 양평도 아직은 빨갛게 물든 단풍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양평의 상징이랄 수 있는 은행나무가 노란 빛깔로 물드는 중이다. 오전에 읍내 중심가에 나갔다가 황금사철처럼 노랗게 물든 키작은 가로수를 보았다. 그런데 자세히 봤더니 1m 정도 되는 은행나무를 사철나무처럼 모아서 심어놓았다. 기발한 아이디어에 한번 웃고, 노랗게 물들어가는 예쁜 모습에 또 한번 웃었다.
오대산은 상원사 주차장 - 적멸보궁 - 비로봉으로 오른 다음 상왕봉을 지나 북대사 방향으로 하산하여 임도를 따라 상원사 주차장까지 코스로 여러 번 산행을 했는데, 시기가 늦어서 비로봉 코스에는 이미 때가 지났다는 판단에 선재길을 택해서 트레킹 수준으로 걷기로 했다.
선재길은 주로 상원사 주차장에서 시작하여 월정사 입구까지 걷게 되는데, 왕복은 어려워서 주로 버스를 타고 들어가서 걸어나오거나, 걸어 올라가서 버스를 타고 나온다. 사람 많은 것이 복잡해서 일찍 다니다 보니까 버스를 타고 들어갈 수 가 없어서 먼저 걸어가서 버스를 타고 나오기로 하였다.
아침 8시 도착, 좋은 자리에 주차하고, 사람이 적으니까 월정사도 둘러보기로 했다.
물에 비친 반영이 아름답다. 반영은 아무에게나 보여주지 않는, 바람이 없는 시간과 물의 합작품이다.
진한 빨강이 아니더라도, 울긋불긋 여러 가지 색으로 든 단풍이 참 아름답다. 피크에 잘 온 것 같다. 월정사로 향하는 길에 유독 빨간 단풍나무가 우선 인사를 건넨다.
선재길 들머리로 향한다. 깨달음과 치유의 천년 옛길이란다. 아름다움은 선이며 모두를 착하게 만든다는 깨달음? 아름다운 선재길을 걷고 난 성취감과 그로인해 내가 얻게되는 힐링의 기쁨으로 나를 치유하는 일? 이 길을 걷는 동안 내게 주어질 선물을 잘 챙겨야겠다.
단풍을 보러왔다. 단풍이 기다렸다는 듯이 반갑게 맞아준다. 고맙고 반갑다.
아름다움을 보는 자체 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그 속을 걸으면 힐링의 농도가 더 진해진다. 아름다운 단풍길이다.
연두는 붉은 단풍으로 변해가는 과정이다.
피크 때의 모습을 만났다. 녹색, 연두로부터 주황, 빨강까지 사이의 여러 단계로 색이 정말 다양하게 펼쳐진다. 수종에 따라 다르고, 여건에 따라 다른 색깔이 나온다. 어떻게 이런 조합이 나오는지 신기할 정도다.
하늘이 유난히 맑다. 그냥 파랑색이다. 구름 한 점 없는이런 하늘을 만나기 쉽지 않아 더 고맙다.
단풍 색을 결정하는 여건 중에 계곡은 중요한 요인이다. 햇빛을 더 받고 덜 받고의 차이도 있는 것 같다.
단풍은 땅에 떨어져서도 예쁜 그림을 그린다.
단풍길을 걷는 나의 마음은 착해졌을까? 세상의 모든 일에 너그러워지고 근심 걱정을 안하는 걸 보니 그런 것 같다.
섶다리는 강의 깊이가 낮아서 나룻배를 띄울 수 없는 곳에 임시로 만든 다리다. 가을 걷이가 끝나는 가을(10~11월)에 만들었다가 여름이 되어 홍수가 나면 떠내려가서 '이별다리'라고도 한다.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섶다리를 재연해 놓아 방문객들을 즐겁게 하는 장소로 만들었다.
다리 주변에 유난히 단풍 색이 예쁜 경우를 많이 보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같은 계곡인데도 다리 주변에 단풍이 든 나무들이 더 많다. 섶다리 주변에도 역시 멋진 단풍이 많이 있었다.
작년에 여러 곳을 다니면서 조릿대 꽃이 핀 것을 많이 보았다. 7년마다 핀다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4~5년이라는 설도 있고, 6~20년이란 설도 있으니 확실치가 않다. 단,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면 조릿대가 죽는다고 하는데, 그것은 사실인가 보다. 열매가 잘 발아되어서 다시 자라게 되었으면 좋겠다. 번식력이 강해서 다른 식물들이 자라지 못하게 만든다고 싫어했는데, 줄기, 잎, 뿌리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약효가 뛰어나다고 하니 다시 생각해 주어야겠다. 잎은 물론 꽃으로 차를 만들어 마시기도 한다.
상원사 입구까지 왔다. 총 9.5km를 걸었다.
상원사 버스 출발 시각이 정해져 있어서 그 때를 놓치게 되면 1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한 20분 간은 시간에 맞추기 위해 부지런히 걸어서 사진을 찍지 못했다. 다행히 제 시간에 버스를 타고 월정사 주차장까지 왔다. 그새 구름이 하늘에 멋진 그림을 그렸다.
오대산 선재길을 걸을 때는 도시락을 싸지 않는다. 오대산 산채 음식을 먹기 위해서다. 처음에는 산채정식을 먹었는데, 요즘은 산채돌솥비빔밥을 먹는다. 비빔밥에도 나물반찬이 제공되어서 충분히 나물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늘 단골로 가던 음식점에는 단체 손님 예약이 되어 있어서 아쉽게 발길을 돌렸지만, 대타로 들어간 집에서도 맛있게 먹었다.
일찍 출발해서 붐비지 않는 시간에 잘 다녔고, 버스 시간도 잘 맞추어 어려움이 없었고, 맛있는 산채비빔밥도 먹고. 무엇보다 맑고 깨끗한 하늘, 예쁘게 물든 단풍길을 발도 아프지 않고 잘 다녀와서 매우 만족스러운 트레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