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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새 Nov 05. 2024

명성산 억새산행

억새와 단풍 가을 산행


 2024년 11월 1일.

 차가 고장 난 것이 간단한 게 아니라 고치는 데도 여러 군데고 부속도 쉽게 구하기 힘든 것이라 고속도로를 운행하기가 조심스러워서, 그동안 산행을 하지 못했다.

아예 읍내 마트 말고는 일박하러 온 딸 식구들과 점심 외식도 따라나서지 못했다. 꽃밭에서 집안에서 얼마든지 일이 널려있는 나는 심심하지 않은 데,  남편은 지루해서 어쩔 줄 모른다.

 드디어 차를 고치자마자 산행에 나섰다. 행선지는 명성산. 20여 일 만의 산행이다.

 명성산은 산정호수 옆에 있는 산이다. 산정호수는 유명한 관광지라 산행을 취미로 하기 전에도 아이 어렸을 때 와본 적이 있는 곳이다. 산정호수 상동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상가 지역을 지나 등룡폭포 쪽으로 가는 등산로로 올라갔다.

 명성산 등산 코스는 3가지가 안내되어 있었는데, 자인사 들머리인 3코스는 통행이 제한되어 있었다. 우리는 1코스로 올라가 책바위 쪽 2코스로 내려왔다. (산정호수 상동주차장 - 등룡폭포 - 억새군락지 - 팔각정 - 책바위 - 상동주차장)

 2016년에 또같은 코스로 산행한 적이 있으니 그때보다 8살을 더 먹었다. 그 당시에는 블로그를 하기 전이라 인물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전날 피로가 덜 풀렸는지 출발 표정이 꽤 심드렁했다. 억새 군락지도 민둥산만큼은 관리가 덜된 듯하여 그리 감탄스런 표정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책바위 쪽 등산로가 좀 험한 편인데, 내려갈수록 표정이 밝아지더니 드디어는 가장 기분 좋을 때 하는 제스처가 보였다. 손을 번쩍 들고 환한 미소를 띤 8년 전 젊은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그때는 체력도 있었지만 어려운 코스를 즐기는 편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어려운 코스를 하나하나 접는 중이다.

 억새 축제는 이미 끝났으나 평일인데도 방문객이 많았다.

 아, 억새를 보러 왔는데, 단풍이 절정이다. 예전에 왔을 때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단풍을 즐길 수가 있었다. 이번 가을 첫 단풍이다.

 인스타그램을 시작하고 난 후부터는 나도 휴대폰으로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하산 후에 차 안에서 혹은 귀가하자마자 인스타그램에 내가 찍은 사진으로 게시글을 올린다. 내가 찍은 휴대폰 사진과 남편이 카메라로 찍은 사진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같은 곳에서 찍었는데도 시각의 차이? 스케일의 차이를 보며 또 다른 재미를 느끼게 된다.

 전에는 남편이 사진을 찍을 때까지 기다리는 일이 많았는데, 각자 자기 사진을 찍기에 바쁘다. 둘 다 찍다 보니 산행 시간이 조금 더 걸리기도 한다.

 단풍은 확실히 자연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폭포 위 등산로에서 아래로 데크를 바라보니 아름답고 아늑하고 평화롭다. 모두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는 우리도 이미 많이 행복하다.

 명성산 부근에 포사격장이 있다. 이날 포사격 훈련과 헬기 사격 훈련이 있는 날이어서 등산로를 올라가는 동안 그 소리를 계속 들어야 했다. 양평에도 포사격장이 있지만 이 정도로 가깝지 않기 때문에 신경 쓸 정도가 아니었는데, 바로 머리 위로 헬기가 지나가고 요란한 헬기 소리, 기관포사격 소리와 포성이 지축을 울리는 듯한 큰 소리라 처음에는 깜짝 놀라기도 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등산을 할 때는 조금 걱정이 될 듯할 정도의 소리다. 6.25 전쟁 당시에 이 소리를 들었다면 얼마나 무서웠을까. 우리를 지켜주는 소리라는 생각이 드니 게다가 민간인에게 피해를 입게 할 리가 없다는 믿음이 있으니 그리 나쁘지 않았다. 남편은 세 발의 연속된 포 소리 후에 메아리가 들리는 것까지 계산해 가며 신이 나는 것 같았다. 따다다다 사격을 하고 지나가는 헬기 사진도 열심히 찍었다.

 오른쪽 사격장 울타리 옆에 초소가 보였다. 안전상의 이유로 민간인 접근을 막기 위해  안내판과 초병도 배치되어 있었다.

 곧 훈련이 끝나고 평상시의 산행 분위기로 돌아갔다. 울타리 주변에 보이는 단풍나무가 붉게 물들었다. 억새 산행이 아니라 단풍 산행이라고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단풍이 절정이었다.

 사격장 울타리 옆을 지나는 등산로가 끝나면 드디어 억새 군락지, 즉 명성산 억새바람길을 만나게 된다.

 사실 억새축제도 지나서 억새가 끝물일 텐데 싶어서 별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2016년에 만났던 명성산 억새밭의 모습이 아니었다. 입구의 억새바람길 통과 문도 멋있게 만들어두었고, 억새의 훼손을 막기 위해 그 넓은 군락지를 모두 데크를 설치하여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선사하였다. 억새밭만 예쁜 게 아니라 사실 나무 데크와 계단, 울타리로 멋진 조형물이 된다. 아무런 인공을 가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산과 숲을 좋아하지만 울타리가 있는 풍경도 꽤 좋아하는 편이라, 이런 데크가 설치되어 있는 곳을 만나면 기분이 참 좋아진다.

 포천시에서 참 좋은 일을 해주어서 감사하다. 관광객들이 더 많이 찾는 명성산과 산정호수가 되리라 생각한다.  

 분명 다 피어버린 억새인데, 때가 지난 것이 맞는데, 하얗게 풀어헤친 머리들을 한곳으로 모아 띠를 만들어 부드럽고 섬세한 분위기를 연출해낸다. 다 피어 씨앗마저 떨어진 앙상한 억새가 대부분이겠거니 생각하고 별로 기대도 안 했는데, 정말 장관이다.

 노년도 저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지 않을까. 잘 관리만 하면 통통 튀는 젊은 시절이나, 당당하여 저절로 빛나는 존재였던 장년 시절처럼은 아니지만 노년 시절도 저 억새밭만큼이나 부드럽고 여유 있고 평화로운,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렇게 살도록 노력해야겠다.


 데크도 충분히 아름답다.

 억새들이 바람과 함께 만들어 낸 한 폭의 그림. 억새는 바람을 느끼며 지금! 춤을 추고 있다. 자유로우면서도 아름다운 리듬을 그리는 몸놀림이 느껴지는가.

 평전은 언제나 탁 트이는 시원함이 있다. 그 평전에 이번에는 억새가 가득이다.

 자세히 보니 큰 나무가 있는 쉼터 쪽으로 산세가 쏠려있다. 마치 민둥산의 돌리네 같은 느낌이다. 작은 돌리네일까? 혹시 가운데 있는 나무 가까이에 옛적에는 연못이 있지 않았을까. 안쪽으로 쏠려서 바깥은 높고 안쪽은 낮은 분지의 모습이 역력하다.

 전망대 및 쉼터. 그곳에서 쉬지 않을 수 있을까. 과연 올라가 보니 전망대의 분위기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도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서 준비해 간 과일을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오늘 우리의 트레킹은 팔각정까지다. 명성산 정상까지 2.8km를 더 산행하는 팀들도 많겠지만, 우리는 여기까지 오른 후 하산하기로 했다.

 섭섭한 마음을 뒤로하고, 아니 충분히 보고 즐겼으니까 행복한 기억을 가득 가지고 하산길인 책바위 코스를 찾아 걸음을 옮긴다.

 명성산 등산로 세 코스 중에서 자인사코스인 3코스는 통행 제한이다. 등산로 훼손이 심한 모양이다.

 험하다. 이런 디딤 발판이 꽤 많이 있는 곳이다. 경사도 장난이 아니다.

 꽤 긴 내리막 계단 때문에 무릎이 살짝 걱정된다. 하지만 경사가 급한 험한 등산로보다는 발바닥에 가해지는 부담이 적다.

 산에서 자주 만나는 예쁜 노란색 단풍의 주인공은 생강나무다.

 아래로 산정호수가 보인다.

 이런 길은 뒤로 돌아서 밧줄을 잡고 내려오는 것이 편하다.

 경사진 바위 위의 소나무야, 오래오래 살아라. 큰 바위는 네가 버티고 설 곳은 내어주리라 믿는다.

 잣나무 숲을 지나면 날머리에 가까워진다.

 펜션 앞에 멋지게 물든 단풍나무들.

 줄맨드라미를 멋지게 키워놓은 집도 있었다.

 이 동네 상가 주민들은 정말 식물 가꾸기에 진심인 것 같다.

 다시 또 가고 싶고 갈 수 있는 산이다. 책바위로 내려가기가 버거우면 1코스로 되내려오면 된다. 내년에 또 가을바람이 불면 억새의 춤을 만나러 명성산을 찾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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