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워케이션의 모습과 미래
<워케이션 가이드북>을 발행한 지 2년이 되어 간다. 그때는 워케이션을 할 수 있는 곳이 손에 꼽았다. 그저 숙소 안에 테이블만 있어도 감사할 정도였으니. 하지만 2년이 흐른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전국에 워케이션 목적지가 넘쳐난다. 심지어 워케이션을 떠날 때 지원금까지 나온다. 대체 2년 사이 워케이션 시장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워케이션의 도입기에는 재택근무가 있었다. 팬데믹 때 수많은 사람들이 이례적으로 재택근무를 경험하게 되었다. 이들이 사무실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면서 공간적 자유가 일시적으로 생겼다. 그러면서 한 곳에 매여있지 않고 일하는 디지털노마드의 문화가 짧은 여행의 형태로 스며들었다. 여기에 '워케이션'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한국관광공사의 연구에 따르면 워케이션 시장의 도입기에는 개인주도형으로 발전한다. 한국에서도 새로운 변화를 빠르게 적용한 여행지의 숙소, 디지털노마드 개인 및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워케이션 프로그램이 나오기 시작했다.
개인적인 경험과도 잘 들어맞는다. 2021년부터 워케이션 문화를 도입한 숙소들을 취재하며 <워케이션 가이드북>을 만들었다. 그리고 팀원들과 노마드 커뮤니티 노마드랑을 꾸리며, 다양한 지역에서 워케이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했다. 더웨이브컴퍼니의 한옥 숙소에서 진행한 <2박 3일 한옥 워케이션>, 통영 로컬스티치에서 운영한 <아워 워케이션>, 남해 팜프라촌에서 보름을 보낸 <OFF THE CITY 워케이션>, 강화도 펜션에서 <노마드 워커의 별장>이 있다. 이 모든 프로그램은 노마드 워커를 대상으로 참여비를 받고 운영했다.
다음 수순이라면 기업주도형으로 발전해야 한다. 하지만, 기업 대신 정부 지원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역 소멸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이에 대한 대책으로 워케이션이 급부상했다. 전국의 지자체에게 지역 소멸은 그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이기에 이들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숙박 업소와 카페, 여행지를 엮어 저마다의 워케이션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다.
전국에서 정부 지원금을 받은 (거의 무료에 가까운) 워케이션 상품이 쏟아져 나왔다. 20~40만 원이었던 노마드랑의 워케이션 프로그램은 가격 경쟁력을 순식간에 잃어버렸다. 프로그램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지만, 무료 프로그램을 이길 재간은 없었다. 2023년 8월, 강화도 워케이션을 마지막으로 B2C로 판매하던 워케이션은 접었다.
이후에는 워케이션 프로그램의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가 되었다. 노마드 워커 커뮤니티를 운영하면서 전국의 워케이션 프로그램을 알리기도 했고, 지원금을 활용해 워케이션을 함께 다녔다. 워케이션을 즐길 수 있는 노마드 워커로서는 좋은 일이다. 하지만 '워케이션 시장'을 생각해 볼 때는, 공급이 수요를 지나치게 넘어가버렸다는 아쉬움이 크다.
현시점에서 워케이션을 향유할 수 있는 집단은 한국인 디지털노마드(프리랜서, 사업가, 크리에이터 등), 외국인 디지털노마드, 회사 소속 직장인이다. 하지만, 이들 세 집단의 상황도 여의치 않다.
우선 국내 디지털노마드는 그 수가 많지 않다. 노마드 워커 커뮤니티를 2년 가까이 운영하고 있어 몸소 느낀다. 또한 이들은 워케이션을 떠날 때 '공간'이 아닌 ‘커뮤니티’를 기대한다. 하지만 지금은 공급이 넘치는 상황이기에 워케이션 프로그램을 가도 아무도 없는 경우가 대다수다. 아무리 좋은 공간이라도 혼자라면? 갈 이유가 없다. 1인으로 일하는 노마드 워커는 이미 혼자 있는 시간이 넘치게 충분하다.
두 번째는 외국인 디지털노마드. 이들은 장기간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일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지녔다. 장기간 여행을 하려면 2박 3일 해외여행 가듯이 돈을 펑펑 쓸 수 없다. 그래서 목적지를 고를 때 중요한 조건은 '저렴한 물가'이다. 한 번, 치앙마이와 발리에 워케이션을 다녀와보면 바로 깨닫는다. 물가가 너무 저렴하다. 게다가 이색적인 문화, 도처에 널린 자연, 자유로움까지 갖추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디지털노마드에게 그다지 매력적인 조건은 아니다. 한국인 마저 두려워하는 여행지 물가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간다. (그나마 서울은 노마드리스트 13위에 머물러있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덕이겠다.)
세 번째는 직장인이다. 이들은 워케이션 시장에서 가장 희망을 가졌던 대상이다. 규모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장인들은 회사가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줄 때 워케이션을 떠날 수 있다. 워케이션의 도입기에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팀 단위 워케이션을 떠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었다. 재택근무의 비중이 높은 편이었기에 팀워크를 돈독하게 다지기 위해 떠났던 것이다. 하지만 백투오피스(Back to Office) 기조가 확산되면서 워케이션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었다. 게다가 경제 상황도 여의치 않자 마음 편히 직원들을 워케이션 보내줄 상황이 아니게 되었다.
최근 울산 워케이션 센터에서 열린 포럼에 다녀왔다. 담당자가 다가와 워케이션 센터에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할지 물었다. 노마드 워커이자 노마드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의 관점으로 답을 찾아보았다. 많지 않은 수라도 노마드 워커의 방문을 이끌어내고 싶다면 이벤트가 계속 일어나는 공간이어야 한다.
워케이션을 다녀온 노마드 워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워케이션을 떠났는데 아무런 이벤트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위에서 말했듯이 1인 노마드 워커는 워케이션을 떠났을 때 '커뮤니티'를 기대한다. 다른 노마드와의 만남뿐만 아니라 공간 운영자와의 만남, 지역 주민과의 만남도 포함이다. 누군가와 마주침이 일어나야 한다.
많은 워케이션 프로그램이 '산과 바다가 보이는 풍경'을 자랑한다. 수많은 워케이션 공간이 생긴 지금 시점에서, 산과 바다가 보이는 워케이션 공간은 더 이상 차별화를 가지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이고 산도 많다.) 멋진 공간만 만들어놓고 기다린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이벤트를 계속해서 만들어야 한다. 포럼, 커뮤니티 초대, 소모임 운영, 네트워킹 행사 등 다양한 모임을 지속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커뮤니티 모임의 특성상 어느 날에는 1명이 올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운영자가 힘을 잃지 않고 지속해 나갈 때, 비로소 이벤트가 일어나는 워케이션 공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