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비혼?
경험으로부터 얻은 인간관계 교훈이 있다면 다른 사람을 내가 바꿀 수 없다는 거다. 나는 오직 나 자신만 바꿀 수 있다.
대부분 비슷하겠지만 20대 초반의 나는 인간관계에서 특히나 미숙했고 실수가 많았다. 스스로에 대해 잘 모르면서 남에게 많은 걸 바라다 보니 내면의 결핍도 컸고 어느 정도의 자기혐오도 있었다. 다행히 멍청하지는 않아서 시행착오를 겪을수록 나 자신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고 현명하게 관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나를 위한 선택을 하는 방법을 배워갔다. 그렇게 기대도 실망도 남이 아닌 나 자신에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실천할 줄 알게 되면서 인간관계가 많이 편해졌다. 지금 나는 완벽과는 거리가 멀더라도 꽤 단단하고 안정적인 사람이다.
그러한 점에서 결혼은 지독한 불행의 시작이 아닐까. 내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타인과 법적, 경제적으로 서로를 옭아매고 평생을 함께하다니. 게다가 배우자 1명에 멈추지 않고 자식에 그 배우자의 가족까지 합하면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타인의 수가 지나치게 많아진다.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사람들이 나의 인생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나는 기대와 실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그 행복을 좇아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린다. 그로 인해 따라오는 필연적인 고난과 역경을 견디지 못해 인연을 끊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보다도 큰 기쁨으로 모든 것을 상쇄시키고 즐겁게 잘 사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가운데 어딘가쯤에서 적당히 타협한 채로 살아가는 것 같다.
한때 결혼제도를 열렬히 비판하며 지독하게 비혼을 외쳤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나를 비혼주의자라고 소개하긴 어렵고 결혼주의자가 아닌 정도로 정의할 수 있겠다. 이제는 결혼도 비혼도 나에게 모두 선택 가능한 옵션이다. 그렇게 된 계기는 간단히 정리하면 '이 사람이라면 결혼할 수 있겠다', '얘랑 같이 살고 싶다'라는 사람을 만나는 경험을 했기 때문인데, 그로 인해 결혼하는 사람을 은연중에 깔보고 무시했던 나의 지난날을 반성하게 되었으며, 나도 결국은 엄청난 급진주의자는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와 나는 각자가 스스로를 위한 선택을 하는 바람에 누구도 희생하지 않은 채로 소위 아름다운 이별을 맞이했고 지금 생각해도 그게 모두를 위한 최선의 결정이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결혼과 비혼이 동등한 선택지는 아니다. 나는 혼자로도 완벽하고 혼자여서 행복하다. 그런 삶을 뒤로하고 새 출발을 하는 결혼이야말로 더 많은 희생과 인내를 감수해야 하는 더 큰 결정이자 도박이다. 그래서 나는 평생 혼자 사는 삶을 전제로 미래를 준비하며 살고 있다. 언제든 괜찮은 짝을 만나면 결혼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만 내 성격상 아무래도 비혼으로 평생 살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결혼은 남자한테나 좋은 거니까 절대로 안 한다고 일단 우겼던 과거랑 비교하면 꽤나 현실적이 되었다. 어쩌면 지금이 더 비혼주의에 가까운 걸지도? 어쨌든 사람 생각이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니 나이를 좀 더 먹으면 갑자기 결혼이 미친 듯이 하고 싶어 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