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시철, 지인의 딸이 교대 진학을 희망하자 부모가 기를 쓰고 말린다. 올해 나라를 들썩이게 했던 서이초 교사 이야기를 떠올려보라며 아이를 설득한다.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이젠 떠나왔지만 오랜 시간 동안 나에게 온갖 희로애락을 선사해 주었던 나의 일터를 떠올려본다.
대부분의 교사가 그렇듯 나 역시 매 학년 시작되는 3월 첫날 첫 시간 아이들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많이 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전쟁터에서 첫 기싸움 같은 것이라고 하면 너무 속보일는지?
아이들은 의외로 솔직하게 말한다. 첫날 첫 시간에 앞으로 일 년 동안 만나게 될 교사가 어떤 사람인지를 거의 파악한다고. 아니 심지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첫 몇 초 사이에 대충 파악한다고도 한다.
자신이 일 년 동안 같이해야 할 이 시간이 지겨울지, 행복할지, 그저 그럴지까지 예측한다고 한다. 아이들은 대단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의 직관은 대부분 맞아떨어질 때가 많다.
첫 시간 교사의 한마디 한마디는 그래서 무척 중요하다.
첫 시간은 대부분의 경우 서로 소개하는 시간이다. 교사랑 학생들 각자 시간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가볍게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 나는 이 일에 비교적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첫 시간엔 교사인 나부터 소개했다. 아이들이 똑같은 형식의 자기소개를 지루해할까 봐 그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칠판에 우선 나에 대한 정보, 즉 학생들이 물으면 나올 수 있는 나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정답 형태의 단어나 숫자들을 먼저 기록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였다.
1(하나), 2(둘) 초밥, 붕어빵, 김밥, 탁구, 책, 공유, 김필, 이문세(아이들이 모를 수도 있지만 그냥 썼다), 정직, 행복…
아이들이 어떤 질문을 하면
“그래, 1이야, 하나야.
"맞아, 붕어빵이야" 하고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형식이다. 의외로 아이들이 집중을 하는 것 같아서 자주 사용하곤 했다.
초밥, 붕어빵 등과 관련해서는 아이들이 어렵지 않게 적절한 질문을 찾아냈다.
"샘이 좋아하는 음식은 뭐예요?"
" 샘이 좋아하는 연예인은요?
"샘의 취미는요?"
여기까지는 쉬웠다. 난이도가 ‘하’다. 난이도 ‘중’인 질문이 숫자 1(하나)과 2(둘)인데, 장난처럼
샘의 입의 개수?
눈의 개수?
생명의 수?
소유한 아파트의 개수? 등 저들도 말하면서
‘아닐 거야’ 하는 눈빛으로 툭툭 던졌다.
몇 번 실패한 이후에 의외로 한두 명이 드디어 내가 기대한 질문을 했다.
"선생님 자녀의 수는 몇인가요?" 하고 말이다.
"정답이야. 2, 둘이 맞아."
아이들은 적절한 질문을 한 것에 대한 기쁨도 잠시,
나 정도의 나이에 자녀가 둘 정도인 것이 뭐 대단한 정보는 아니라는 생각을 표정에 담고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러면 역시 치밀하게 의도한 대로, 사고도 많이 치고 사춘기도 심하게 겪으며 다이내믹한 청소년 시절을 보내고 성장한 내 두 아이의 학업과 진로, 성장의 여정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내 아이들의 이야기임을 떠나서 저들과 비슷한 또래 실제 청소년의 이야기는 역시 그들에게 훅하고 다가갈 것임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너무 길어서 다음 시간부터 조금씩 풀어내기로 약속하고 넘어갔다. 다음 시간에 대한 아이들의 기대를 과외로 건지는 셈이었다.
1(하나)에 대한 적절한 질문을 계속 못 찾다가 또 엉뚱해 보이는 한 녀석이 그냥 해본다는 느낌으로 소리쳤다. 선생님, 남편의 수? 남편이 몇 명인가요? 하고 말이다. 아이들이 막 웃기도 하고 야유를 보냈다.
“ 야. 인마, 당연히 남편이 한 명이지. 샘에게 실례가 되는 말을 하면 안 되지.”
라고 한 녀석이 진지하게 큰소리로 말했다. 나는 소리 없이 웃었다. 그 진지함이 신기하고 귀여웠다.
요즘 아이들을, 10대를 무섭다고, 싸기지 없다고 한 마디로 규정짓는 건 정말 부당하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정말 예쁘다. 의리가 있고 매너가 있다. 순수함 그 자체다. 정말 하얀 도화지에 그리는 물감 빛 그대로 온전히 빛난다.
이런 순간이 있어서 교사는 견딘다고 나는 장담할 수 있다. 이건 어쩌면 중독에 가깝다. 아이들이 내뱉는 순도 100 퍼센트의 마음 냄새들을 맡으며 교사는 정말 행복해한다..
그 순간 나는 정색하고는
“ 응. 그래, 맞아. 샘 남편의 수는 1, 하나, 한 명이야.”라고 했다
“ 헐.” 아이들의 반응이었다.
“ 음.. 남편이 둘이 아니고 한 명이지."
뭐지? 하는 표정의 아이들을 보며 나는
덧붙인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언제나 변하는 거고 사랑하는 마음도 여러 가지 색깔일 수 있는데 결혼이란 제도가 지금 우리에게 오직 한 사람과 평생 함께 하기를 강력하게 권장하고 있는 게 어떨 때는 좀 답답하기도 하고 그래. 뭐, 샘은 생각만 그렇고 여전히 일부일처제의 제도와 관습 속에서 무리 없이 잘살고 있지. 하하.”
라며 나는 다소 아이들에게 위험해 보이는 발언까지 할 때도 있었다. 하고 나면 살짝 후회가 되기도 했지만 아이들과의 강력한 레포 형성을 위해서는 다소 부담스럽지만 나를 솔직하게 보여 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그 후회를 얼렁뚱땅 뭉개 버리곤 했다.
다음으로는 가장 중요한 내 이름을 소개하는 일을 해야 하는데, 이것은 예상과 너무 다르게 아이들이 대부분 답을 못 찾아냈다.
내 이름은 강순이다. 사실 나는 내 이름에 대해 불만이 너무 많다. 일단 촌스럽다. 세련되지 못한 이름, 옛날부터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에 그냥 너무도 만만하게 등장하는 이름이지 않은가? 순이야, 철수야, 바둑아, 이리 와. 나하고 놀자. 오래전 내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에 등장했던 만만한 동네 여자아이 이름이라는 생각. 할아버지께서 내가 태어나자 이름을 지으셨는데 그냥 순탄하게 살라고 순이라고 지으셨다는 말을 아버지로부터 들은 이후로는 이런 생각은 더 짙어졌다. 한자로 ‘이’ 자는 심지어 아무런 뜻도 없는 그냥 어조사 ‘이’라고 했다. 해도 너무했지 않은가? 혜선, 아리, 현지, 현서, 나영, 수지 등 주변에 얼마나 세련되고 멋진 이름들이 많은데 하면서 예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살짝 원망하곤 했었다. 어쨌든 나는 순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한평생 살고 있다.
이름 세 글자를 그냥 밝히지 않고 강순( )이라고 썼다. 앞 두 글자를 쓰고 나머지 한 글자를 맞혀보라고 주문하는 것이다. 나는 금방 ‘이’라는 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이외로 끝까지 ‘이’를 맞히는 아이들은 없었다. 아이들이 내놓는 나머지 이름 한 글자는 자, 애, 미, 영, 희, 덕, 수, 신, 돌, 대...이었다.
하나씩 빈칸에 넣을 때마다 아이들은 엄청 웃어댔다. 나도 사실 웃겼다. 무슨 글자를 가져다 놓아도 세련된 느낌 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순자, 순애, 순덕.. 촌스럽기 그지없었다. 특히, 순대, 순돌하고 발음할 때는 아이들이 책상을 치며 웃어댔다.
그런데 결국 모두가 답이 아니라는 내 말에 아이들의 호기심과 궁금증은 최고조에 이르는 듯했다. 아무도 못 맞히자 내가 정답인 나머지 한 글자를 공개했다.
강 순 이.. 아! 아이들의 입에서 옅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리곤 각자가 ‘강순이’ 하고 발음해 보는 것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도 있었다. 무슨 의미일까? 그런데 분명 아까 다른 이름자로 완성했을 때와는 다른 뭔가 미묘한 분위기가 교실에 흘렀다. 나는 이어서 내 이름에 대한 오랜 나의 콤플렉스를 솔직히 털어놓았다. 내 이름이 만만해 보이고 촌스러워서 싫다고.
그러자 앞줄에 앉은 한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말을 하였다.
“ 아닌데요, 샘. 강순이.. 샘 이름 뭐랄까, 꽤 정감이 가는데요. 촌스럽지 않아요.”
우와! 이게 무슨 말인가? 내 이름이 촌스럽지 않고 정감이 간다고?
" 음, 정감이 간다고.. " 나는 '정감'이란 말을 혼자서 되뇌어보았다.
“ 얘들아, 정말 그런 느낌이 드니? ”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예”하고 답을 했다.
중학교 1학년, 너무도 작은 아이가 오랫동안 가져온
내 콤플렉스를 한 방에 날려버리다니?
한 참 세상을 산 나이의 내가 열서너 살 아이의
한 마디에 그렇게 기쁠 수도 있었다니,
지금도 그때의 느낌을 나는 고스란히 기억한다.
“ 아, 정말이구나. 너희들 덕분에 샘이 이름을 이제 자랑스럽게 쓰며 살아야겠다.”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나는 응답했다.
나머지 '정직'과 '행복'이라는 단어에 대한 설명을 간단히 했다.
“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야. 무엇보다 자신에게 정직하기가 쉽지 않은데 먼저 자신에게 정직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야. 그리고 올 한 해 나는 너희들과 함께 행복해지고 싶어. 너희도 나와 함께하는 이 시간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나의 올해 소망이야.”
라며 첫 시간 수업을 맺었다.
무엇보다 내가 다음 시간 수업이 기다려졌다. 저 예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내가 몸담았던 곳을 행복하게 회상하다가 이내 답답해진다. 교사에게 학교는 전쟁터가 아니라 행복해질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할 텐데, 그래야 저렇게 예쁜 아이들도 행복해질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으로.
올여름 뉴스 창을 도배했던 학교와 교사, 아이들, 부모들의 이야기를 생각한다.
가르치는 일이 좋아서 교사가 되려는 누군가의 마음이 닫히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