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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늘 Dec 21. 2023

하기 싫은 일, 해야만 하는 일


 집안일 중에 요리는 폼나는 일이다. 보통의 재료를 가지고 근사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일. 맛과 멋을 창조하는 일.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노동이다. 내가 구독하는 요리 유투버가 몇 있는데 그들이 매일 선보이는 요리는 어쩜 그렇게 기발한지 모르겠다. 두부 하나를 가지고도 수십 가지 요리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만들어내는 아이디어가 신기하고 놀랍다. 하루 종일 요리연구를 하는 것 같다. 난 영상을 보며

“어쩜, 저렇게 만들 생각을 했지? 어쩜 저 단순한 재료를 가지고 저렇게 화려하게 만들 수가 있지?

정말 천재야.”

혼자 중얼거린다. 그들이 제안하는 레시피를 보며 요리하는 즐거움은 요즘 내 일상의 즐거움 중의 하나다.

     

반면 식사 후 식탁을 치우는 일, 쓰레기로 버려질 남은 음식물을 처리하는 일, 음식 냄새와 자국으로 얼룩진 식기를 씻는 일, 그건 설거지다. 난 그 설거지가 무척 하기 싫다.

요리처럼 생산적인 일도 아니고 별다른 창의성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잔반 처리, 기름때 처리, 프라이팬 처리, 초벌 세척, 헹굼, 건조, 정리 등등 뭔가 뒤치다꺼리를 하는 일. 냄새나는 것을 만지고 씻어내는 일. 어질러지고 무질서한 것을 정리하는 일. 설거지 로봇이 상용화된다면 고민하지 않고 구입하여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하기도 한다. 물론 그런 로봇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식기세척기가 이미 우리 생활에 존재하지만 우리 집엔 여전히 식기세척기 없다.  

   

TV를 틀기만 하면 나오는 전자제품 광고

옛날에는 정말 TV와 냉장고가 다였다. 그 이후 에어컨, 김치냉장고, 식기세척기, 세탁기, 건조기, 스타일러, 공기청정기, 청소기, 각종 주방 조리 기구... 또 뭐가 있더라? 정말 수도 없이 많다.

‘OO 오브제 컬렉션’이라고 한다. 제품을 하나씩 더할수록 집안 인테리어가 완성된다는.. 전자제품도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집안에서 그 지위가 엄청나게 격상되었다. ‘오브제 컬렉션’이라는 카피를 만들어내다니 정말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고 움직이는 카피라이터의 언어는 역시 남다르다.

생활의 편리함, 단순 노동이라는 집안일로부터의 해방, 여성의 자유와 행복감을 획기적으로 증폭시켜 준 문명의 이기인 전자제품은 그야말로 가정 내 필수품 중의 필수품이 되었다. 그래서 요즘엔 전자제품도 어느 것 하나 없으면 큰일 날 것처럼 집마다 다 갖추고 산다.   

  

어쨌든 설거지를 무척 싫어하는 나이지만 여전히 식기세척기는 사지 않는다.

허리와 다리에 무리를 주며 한참을 선 채로 두 팔과 손을 움직여야 하는 설거지를 고집하고 있는 나.

이유는 뭐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다. 요리는 창의적이고 설거지는 단순 노동이라고 폄훼할 수도 있지만 설거지에는 의외의 기쁨이 있음을, 나는 나의 설거지 역사를 통하여 충분히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늘 ‘하기 싫다’ 하는 생각과 함께 시작하는 설거지긴 하지만 설거지를 다 끝낼 즈음 묘한 즐거움, 쾌감 같은 것이 슬며시 올라오는 느낌이 있다. 난 그게 좋다.

일단 싱크대에 가득 쌓여있는 음식물 자국이 흥건히 남아있는 그릇들을 보며 나는 재빨리 어떻게 하면 빠르게 그리고 깨끗하게 할 수 있는지를 쌓인 그릇더미를 눈으로 스캔하며 머리로 재빠르게 생각한다. 기름때를 먼저 휴지로 처리하고 유리컵 종류를 먼저 씻고 큰 접시부터 씻는다. 최대한 세제를 적게 쓰고 온수 비용이 좀 들기는 하겠지만 뜨거운 물로 여러 번 꼼꼼히 헹구고...

그릇의 물기를 빼고 마른행주로 싱크대 위의 물기까지 완전히 닦아내고 마지막으로 행주를 세제로 빨아 널면 나의 설거지는 끝난다. 뜨거운 물속에서 팔과 손을 계속 움직이느라 적잖이 더운 기운도 올라온다.

그리고 난 후 나는 내가 처리한 엄청난 일을 휘 하고 둘러본다. 반짝이는 그릇, 냄비들, 말끔히 정리된 싱크대가 역시 나를 바라본다. 오르막 둘레길을 걷다가 시원한 바람을 만난 듯한 상쾌함이 순간 밀려온다. 살짝 목도 마른 듯하여 깨끗이 씻어 엎어놓은 유리잔에 시원한 물 한잔을 따라 마신다. 이 순간이 나는 좋다. 개운하다. 더러운 모든 것, 무질서한 모든 것을 제압한 나임을 확인한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또 있다. 화장실 청소다. 하기 싫어서 계속 미루기를 며칠째, 화장실의 이곳저곳에 눈길을 주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맘먹고 청소를 시작한다.  마스크와 장갑을 끼고 완전 무장을 한 채 나는 전쟁터로 나가는 장수처럼 화장실을 향해 다가간다. 시작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분명히 균이 우글대고 있을 변기, 물기 흥건한 세면대, 거울의 물 자국, 바닥의 머리카락.. 우와, 정말 하기 싫은 일이다. 그래도 이왕 시작한 거, 세제를 뿌리고 박박 솔질하며 열심히 한다. 마지막으로 깨끗한 물로 헹군 후 세면대랑 변기 거울 등의 물기까지 말끔히 제거하면 끝난다. 휴, 구부렸던 허리와 다리를 편다. 그리고 바라본 전면 거울. 와! 깨끗하다. 이 정도면 음악을 틀어놓고 여기서 커피를 마셔도 될 것 같다. 좀 전의 구리구리한 화장실은 이제 반짝이는, 향기 나는 공간으로 탄생했다. 구부렸던 다리와 허리의 통증은 온데간데없다. 기분이 좋아진다.

거실 대청소를 하고 난 후 느긋하게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며 책을 읽는 주말 오전의 나른한 행복감도 비슷하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지인과 뭔가 오해가 생겼는지 서로 불편한 사이가 한동안 지속되었다.

며칠을 고민했다. 그냥 다시 안 보면 되지 않나? 아냐, 알고 지낸 지가 얼만데. 그런데 정말 다시 만나서 오해를 푸느니 마느니 하며 말을 붙이는 일을 먼저 시작하고 싶지 않다. 귀찮다. 하기 싫다. 인간관계도 왜 이렇게 피곤한 건지.. 하는 생각이 내내 들었다. 그래도 내 마음이 불편하여 내가 먼저 전화를 걸었고 결국엔 오해가 풀리고 관계가 회복되었다. 그날 난 내가 좀 마음에 들었다.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해 본 사람은 알 거다. 얼마나 가기 싫은지. 하기 싫은지.

그러나 일단 그 선을 넘으면 행복하지 않은가. 마지못해 센터로 들어갔는데 막상 운동하고 샤워 후 느끼는 상쾌함과 뿌듯함, 그런 것들이 있음을 안다.     

공부가 재능이고 적성이고 흥미인 사람 극소수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공부를 하기 싫어한다.

하기 싫은 공부를 끝끝내 해내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외부에서 주어지기도 하지만 자기 안에서 스스로에게 주는 보상도 꿀맛이다.

무엇보다 하기 싫은 일을 해냈을 때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게으름을, 용기 없음을, 한계를 박살 냈다는, 넘어섰다는 뿌듯함으로 행복하다.

    

살다 보면 하기 싫은 일이 정말 많다.

공부도, 운동도, 청소도, 관계 맺음도, 직장생활도, 난이도 극강의 육아는 또 어떤가?

사실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은 겨우 한두 가지뿐이고 하기 싫은 일이 아홉 가지 열 가지인 게 우리의 일상인 듯하다.

하기 싫은 일의 대부분은 어쩌면 우리가 원하지 않지만 해야만 하는 일일 가능성이 더 크다. 하기 싫은 일, 해야만 하는 일, 그 일을 그냥 묵묵히 하는 것. 꾸준히 하는 것. 그러다 보면 뭔가 건져 올리는 게 있지 않을까?      

대부분 성공했다는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하고 싶은 일 30%, 하기 싫은 일 70%의 삶이었다고 고백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손흥민도 어찌 매일 축구가 하고 싶기만 했을까? 매일 하기 싫어도 그 축구 연습을 했을 것이다. 농구 스타 서장훈은 고백한다. 농구가 너무너무 하기 싫었다고. 김연아는 뭐 그리 매일 스케이팅이 하고 싶었을까?  

    

우리의 삶에 가득한 하기 싫은 일들, 우리를 노려보며 꼭 해야만 한다고 윽박지르는 일들.

그냥 그런 것들이 오히려 아주 많은 게 우리의 인생이구나 하고 생각하고 시작하면 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니? 하고 싶은 일을 해라’라는 말이 아이들을, 우리를 조급하게 만든다. 하고 싶은 일을 찾기도 전에 하기 싫은 일, 해야만 하는 일의 더미가 우리 앞에 가득하다.      

순서를 바꾸어서 해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하고 싶은 일은 그냥 찾아지지 않는다.

어쩌면 하기 싫은 일을 꾸준히 하다 보면 알게 되는 순간이 있을 수 있다. 하기 싫은 일, 해야 하는 일을 묵묵히 하다 보면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슬쩍 미소 지으며 떠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하기 싫다고 하는 아들에게 가끔 설거지를 시켜본다. 하기 싫은 설거지를 하고 난 후 그도 나처럼 의외의 기쁨 같은 거를 맛보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주방이 깨끗해진 것을 보면서도 조금은 기쁠 것이고 뭔가 집안일을 도왔다는 뿌듯함도 덤으로 가져갈 수 있지 않을까?

하기 싫은 일, 해야만 할 일들로 가득한 나날이지만 이왕 할 일이면 즐겁게 하고 싶다.

일이 계속 힘들면 이어폰을 꽂자. 좋아하는 음악이라도 들으며 하다 보면 일이, 우리의 일상이 조금은 수월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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