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나 이거 사 왔어.”
무언가 가득 든 커다란 비닐봉지를 양손에 들고 현관을 들어서는 남편. 목소리가 아이처럼 들떠 있다.
“그게 뭐예요?”
“응, 내가 먹고 싶은 걸 다 샀지.”
일주일에 한 번 열리는 아파트 시장, 주로 야채를 판다. 은퇴한 이후 시간이 여유로워진 남편은 가끔 외출하면 이것저것 사 들고 들어오곤 한다. 오늘은 야채다. 그것도 한 보따리다. 봉지를 열어 펼쳐 보이며 신이 났다.
냉이와 풋마늘, 쪽파다.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야. 냉잇국도 끓여 먹고 풋마늘 장아찌, 쪽파김치 이런 거 해 먹자. 어렸을 때 엄마가 해주면 내가 제일 잘 먹었던 것들이야”
또 그놈의 소싯적 엄마의 손맛 어쩌고, 하면서 추억의 음식을 소환하는 남자들의 언어.
요즘 기계로 썬 칼국수가 대부분인데 꼭 엄마의 손맛을 고집하며 손칼국수 집을 찾아 순례하는 남편이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당장 눈앞에 있는 냉이와 풋마늘 쪽파라는 식재료다. 양도 얼마나 많은지 세 가지 야채 더미를 식탁에 펼쳐놓으니 6인용 식탁이 가득 찼다. 무려 쪽파는 커다란 묶음 두 단이었다.
땅속에서 갓 빠져나온 듯 싱싱한 흙이 마치 떡고물처럼 단단하고도 진득하게 묻어있는 파뿌리!
나는 이유 없는 적개심 같은 거를 느끼며 파뿌리를 노려봤다.
“ 아니 무슨 쪽파를 이렇게나 많이 샀어요?”
“ 음. 김치를 담그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아저씨가 말하길래.”
사실 냉이와 쪽파라는 단어가 남편 입에서 나오는 순간 나는 속으로
“우와 저걸 언제 다 다듬고 씻지? 하고 솔직히 가벼운 짜증이 올라왔다.
냉이, 살림을 하면서 나 역시 어릴 적 엄마가 해준 냉잇국 생각이 날 때면 몇 번 시도하곤 했다.
사실 먹는 사람 입장에서야 입맛 돋우는 맛난 봄나물이지만 요리를 해야 하는 나는 봄철에 시장과 마트에 널린 봄나물을 바라볼 때면 뭔가 해야 할 숙제를 앞에 둔 아이처럼 불편한 부담감을 떠올린다.
저걸로 식구들에게 봄맛을 선사하고 싶은 마음과 저걸 요리하려면 다듬고 데치고 양념하고 등등, 그 과정에 대한 부담감이 동등한 무게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런 말 하면 요리가 즐겁거나 어렵지 않은 사람들은 웃기는 이야기라고, 뭐 그거 대충 다듬고 데치고 참기름, 마늘, 깨소금 등 넣고 무치기만 하면 되는 데 무슨 고민이냐고 타박할지 모른다.
사실 난 요리가 어렵다. 좋아하지 않는다는 게 맞다. 요리도 엄연히 적성이고 재능인 한 영역이지 않은가. 가족이 있고 식구들에게 음식을 만들어줘야 하는 주부라는 자리가 나의 흥미나 재능과는 무관하게, 매일 요리를 해야 하는 지난한 일을 안겨주었고 그 일을 어찌어찌 하고 있을 뿐이다.
배달 음식과 반조리 즉석식품이 대세인 시대다. 그러나 그 대세가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하루 세끼 평생 밥을 먹는다는 것과 그 밥을 지어야 한다는 사실은 타협없는 삶의 조건요 규칙이기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맛난 음식을 해주는 것은 기쁨이요 즐거움이요, 보람이다..라고 너무 쉽게 말하지 마시라. 어떤 이들에게 그건 그냥 힘든 노동이고 수고일 수 있다.
어쨌든 좋아하는 냉잇국을 먹고 싶다는 생각으로 남편은 냉이를 한가득 사 와서 내 앞에 안겨 주었지만
사실 봄이 되어서도 나는 냉이를 자주 사지 않는다. 이유는 하나다. 냉이 다듬는 일이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냉이는 땅에 박혀있는 하나의 뿌리 위로 바로 줄기이자 잎인 가닥들이 뻗어 나 있다. 뿌리에 곧바로 연결된 줄기에 붙어있는 잎들은 초록빛이 기본이지만 약간 누런 빛, 자색 빛을 띠는 것도 섞여 있어서 버려야 할 상한 잎을 구별하고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야무지게 생긴 뿌리는 가끔 주름도 단단하게 져 있어서 묻어있는 흙을 씻거나 더러워 보이는 껍질을 칼로 다듬어줘야 해서 여간 까탈스럽지가 않다.
풋마늘은 또 어떤가? 뿌리에 범벅인 흙더미와 겹겹이 붙어있는 긴 잎들 사이사이 숨어있는 흙과 먼지를 일일이 씻어내야 하고 쪽파 역시 매운 냄새를 참아가며 한 줄기 한줄기 손질해야 한다. 그렇게 손질한 나물은 날 것일 땐 한 무더기여도 삶으면 허무하게도 한 줌이 된다.
그럼에도 봄나물의 대명사인 냉이, 풋마늘이 가져다주는 화사한 행복감과 신선함이 워낙 큼을 알고 있는지라 아이처럼 즐겁게 웃음 짓는 남편 앞에서 내 솔직한 속마음을 내보일 수는 없었다.
나는 그날 마침 늦은 저녁 약속이 있어서 나가려던 참이었다. 갔다 와서 밤늦게 저 냉이를 손질할 생각을 하니 갑자기 시험을 앞둔 중학생처럼 부담감이 올라왔다.
“음, 당신 심심하기도 할 터이니 이거 좀 다듬어놔요. 요기 요렇게 뿌리에 흙을 다듬고 썩거나 비실비실하게 생긴 이파리 같은 것들 다 제거하면 돼요”
식탁에 신문지를 깔고 냉이 더미를 올려놓은 뒤 나는 남편에게 냉이 한 뿌리를 들고 손질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는 외출했다.
일을 마치고 내가 귀가한 시각은 거의 밤 10시 즈음.
거실에 들어선 순간 나는 정말 놀랐다. 아직껏 식탁에 앉아 목을 길게 늘어뜨리고 냉이를 다듬고 있는 남편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버려지는 냉이 더미는 한가득, 쓸모 있는 냉이로 분류되어 생존한 냉이 더미는 버려지는 냉이의 반도 안 되는 고작 두어 줌이었다.
“아니, 당신 아직도 하고 있어?”
“아, 뭐가 이렇게 어려워. 싱싱하지 않은 이파리도 너무 많은 것 같고 하나하나 골라가며 다듬으려니 오래 걸리네, 아이고 어깨야.”
워낙 깔끔한 성정에다 처음 해보는 일이니 요령도 없이 냉이 잎 하나하나 훑어가며 손질하는 그 난이도가 오죽했을까? 그다음 남편에게서 나온 말이 예상 밖이었다.
“이렇게 힘든 건 줄 몰랐네. 내 다시는 냉잇국 먹자고 안 할게.”
“하하하”
나는 간 만에 실컷 웃었다. 야릇한 통쾌감(?)이 저녁 이후의 피로감을 가볍게 날려주었다.
“그래, 직접 자기가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거야. 당신 봐봐. 이거로 끝난 게 아니야. 이거 다시 물로 여러 번 씻은 후 물 끓여서 데치고 건져내고 헹구고 양념하고 그래야 겨우 한 접시가 식탁에 오르는 거라고.
뭐 그렇다고 이거 한 접시만 가지고 한 끼 식탁이 차려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매일 하루 두 끼 세끼의 식탁을 준비하는 건 위대한 일이라고...”
나는 기회다 싶었는지 평소 우리의 일상인 먹는 일, 그곳에서 탐스러운 열매처럼 식탁에 놓인 음식은 주인공처럼 빛나지만 그 음식이 탄생하기까지의 숨겨진, 존재감 없는 수고로움에 대하여 열변 아닌 열변을 토했다.
내친김에 나는 내가 하는 집안일이 잡다하고 별거 없는 허드렛일이 아니리 식구들의 생존에 필수적인 너무도 중요한 일이라고 한껏 생색을 냈다.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난다.
현대 경제학의 고전으로 꼽히는 ‘국부론’의 저자인 애덤 스미스는 평생 독신남으로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는 어머니가 차려준 저녁을 먹고 책상에 앉아 글을 썼다.
‘국부론’이라는 엄청난 성과물이 나오기까지 엄마가 매일 그에게 차려준 밥은 그 성과물과 전혀 무관한 것일까? 그가 저술작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루 세끼 밥을 차려주고 깨끗한 옷을 만들어주고 잠자리를 보살펴 주었던 어머니의 아들을 위한 보살핌의 손길에 저자는 주목한다.
푸줏간 주인, 양조장 주인이 밖에서 고스란히 돈을 벌어들이는 일에 시간을 바칠 사이 그들의 어머니, 아내, 누이는 표가 나지 않는 집안일 등 온갖 허드렛일을 했다. 그들이 바친 시간의 이야기가 빠져있다는 것,
경제학 이론이 말하는 모든 경제적 결과물에는 누군가가 감당하는 일관되고 지속적인 가사노동, 보이지 않은 돌봄의 수고로움이 비용으로 계산되지 않는다는 주장에 공감했다.
저자는 페미니즘 시각에서 글을 썼지만 굳이 그런 시각이 아니라도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수고, 티 나지 않는 노고가 우리의 일상에서 진지하게 고려되지 않고 주목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가끔 가벼운 분노가 인다.
그렇게 소외되는 것들...
나의 어린 시절, 세탁기가 없었던 때 엄마는 여섯 식구의 옷을 매일 손빨래했다. 그것도 버튼만 누르면 냉온수가 쏟아지고 기계가 다 알아서 해주는 지금에야 상상도 못 할, 오로지 찬물에 맨손으로 비누칠을 해가며 빨았을 그 수많은 옷가지들을 생각한다.
우리 4 남매와 아버지는 늘 깨끗이 빨아서 단정히 개켜진 옷을 아무 생각 없이 꺼내 입었다. 심지어 아직 안 빨았느냐고 엄마를 타박하곤 했었던 기억.
한창 클 때의 4남매의 왕성한 식성은 오죽했을까?
부엌에서 고구마 줄기 한 무더기를 손질하던(일일이 껍질을 벗기던) 엄마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 많은 것을 다듬고 삶고 양념해서 식탁에 올리던 모습도.
그 당시는 맛있다고 허겁지겁 젓가락질을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 한 접시가 나오기까지의 엄마의 수고와 노동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문제는 그 모든 걸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는 여전히 당연시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식구들이 맛있게 먹으니까, 식구들이 깨끗한 옷을 입고 나가고, 쾌적한 공간에서 숨 쉬고 잠을 자는 게 그냥 좋아서 밥을 짓고 나물을 다듬고 옷을 빨고 청소를 하는 사람도 물론 많다.
내 가족의 행복이 나의 존재 이유니까, 내 새끼고 내 남편인데 무슨 대가를 바라고 알아주기를 바라냐고, 알아주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고, 그저 사랑하는 사람, 내 가족이 먹고 입는 데 불편함이 없으면 그거면 됐다고, 난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그런 건 모성이라고, 당연한 거라고 우리는(많은 경우 여성들) 그렇게 사회화되어 온 건 아닐까?
사랑하는 가족에게 맛난 음식을 제공함으로써 얻는 행복감과 만족감이 크다고 누군가의 수고가, 노동이 빌트인 가구처럼 늘 변함없이 당연한 거는 아니다.
해서, 적지 않은 가정주부들이 집안일을 하고서도 허탈감과 소진감, 무의미감을 느끼는 건 아닐까?
내 일이 아무것도 아닌 집안 허드렛일이라는 생각은 우리의 영혼을 마모시킨다.
왜 유명 세프들이 만든 음식만 빛나고 그들의 요리 과정만 조명받는가?
왜 그 음식에만 비싼 값을 쳐주는가?
매일 먹고 자고 씻고 입는 일들, 계속되는 일상의 매 순간을 다듬고 돌보는 그 엄중한 일에도 비싼 값을 쳐주자 싶다.
냉이 한 번 다듬고 난 후
내 다시는 냉잇국 먹자고 안 할게,라고 말하는 남편은 슬픈 영화 보고 울먹이는 초등학생처럼 무구하다. 사랑스럽다.
내일 아침엔 그가 손질해 놓은 냉이로 맛있게 국을 끓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