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를 배운다. 일주일에 두 번 탁구 교실에서 레슨을 받고 회원들과 함께 연습 탁구를 하는 과정이다. 원래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잘하지도 못한다. 학창 시절 체육 시간이 들어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배가 아프곤 했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운동하고는 별로 친하게 지내지 않는 나이지만, 어디 가나 운동이 필수인 세상인지라 나도 어쩔 수 없이 동네 피트니스센터에라도 가야 할 것 같아서 영혼 없이 등록했다.
보통 일주일에 1~2회 정도 간다. 비가 와서 못해, 저녁 약속 있어서 못해, 감기 기운이 있어서 못해, 운동 못 가는 이유를 만들어내려고 매일 머리를 굴리는 내가 한심하기도 하다.
그러던 내가 유방암 수술을 받고 난 후 “운동 안 하면 재발돼요. 생명이 달린 문제라고요.” 하는 협박에 가까운 의사의 말을 듣고서야 운동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덜 지겨운 것, 덜 힘든 것, 그런 운동을 찾는 게 나에겐 무엇보다 중요했다. 모든 운동이 힘들고, 꾸준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애써 외면하면서 말이다.
어쨌든 이것저것 고민하다 선택한 운동이 탁구였다. 이유는, 우선 탁구공의 크기였다. 달걀 크기보다 작은 탁구공이 일단 만만하게 보였다. 손안에 쏙 들어와 잡히는 탁구 라켓의 무게도 운동을 시작하는 마음을 가볍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게임은커녕 회원들과 랠리 형태로 공을 주고받는 것도 것도 불가능했다. 그냥 달랑 20분 레슨을 받고는 집으로 왔다. 옆에서 게임을 하는 회원들을 보니, 우와! 무슨 예술이 따로 없었다. 탁구공을 가지고 리듬체조를 하듯 멋지게 위에서부터 날리는 서비스 볼 -일명 스카이 서브라고 한다나?-하며 ‘딱’ 소리 터뜨리며 만들어내는 드라이브, 스매시 등은 보는 내내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탁구대에 빠르게 내리 꽂히고 다시 튀어 오르는 하얗고 작은 공을 좇아가느라 내 눈은 바빴다.
멋지게 득점을 하면 내 편 상대편 상관없이 ‘나이스!’라고 소리치며 근사한 퍼포먼스를 서로 축하해 주었다.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게임이 한 세트 끝날 때 즈음이면 나도 언제 저런 실력이 되나 하는 부러움 가득한 바람 같은 게 생겨났다.
첫 시간, 라켓을 잡는 자세 등 가벼운 주의사항을 들은 후 곧바로 공을 받아넘기는 '포핸드' 동작을 배웠다.
탁구 선생님이 주는 공을 받아서 넘기는 게 다였다. 내 앞에 날아온 탁구공을 맞아서 상대편 코트로 넘기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공을 받아서 다시 보내기 위해 내 몸은 왼쪽으로 갔다, 오른쪽으로 갔다, 앞으로 갔다 하며 허우적댔다. 선생님이 보내주는 공은 내 자리에 일정한 속도로 정확하게 왔다. 공을 안전하게 일정한 자리에 보내준다는 게 너무도 어려운 일이라는 걸 처음엔 몰랐다. 더군다나 천천히 날아왔는데도 내 팔은 먼저 앞서 내밀어졌다.
몇 회차 공을 내주던 선생님은 잠시 멈추더니 내 옆으로 와서 라켓을 쥔 오른팔의 진행 방향과 각도 등 기초적인 '포핸드'의 자세에 대하여 반복하여 구체적으로 시범을 보여 주었다. 나는 정말 열심히 따라 했다.
“아니, 그게 아니고요. 이렇게 팔을 뻗으세요. 다리에 힘을 주세요. 그렇게 흔들흔들하면 자세가 무너져요.”
우와, 라켓을 던져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라켓을 쥔 손은 땀에 젖었고 온몸에서 열이 올라왔다. 팔을 뻗으랴 공을 맞히랴 정신이 없었다.
그 다음번 레슨도 예외는 아니었다.
“왼쪽 어깨도 움직여야 해요. 같이 움직이면서 힘을 모아 줘야 공에 힘이 실리지요. 무조건 그냥 치지 말고 리듬을 타세요. 단지 공을 치는 게 아니라 가볍게 잡아 보내준다는 느낌으로 하세요.”
선생님의 수업은 계속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선생님의 말뜻을 많은 부분 잘 이해를 못 한다는 것이었다. 공은 치는 게 아니라니, 날아오는 공을 안 치면 뭐 하러 탁구를 한단 말인가?
나는 계속 날아오는 공을 맞히려고 온 힘을 쏟았고 그때마다 헛 팔 짓에 어깨가 아프고 땀은 비 오듯이 흘렀다. 무엇보다 내 라켓에 맞은 공이 일정한 방향과 각도 없이 제멋대로 날아가는 게 내 눈에도 보였다.
내 마음대로 안 되는 내 몸을 매 번 느끼며 한 달 레슨이 끝나고 다시 등록할 시간이 되자 나는 탁구를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고민을 엄청나게 했다. 그런데 솔직히 좀 창피했다. 식구들에게도 제대로 맘먹고 운동 시작한다고 큰소리치고 응원까지 받았는데 한 달 하고 그만둔다면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회원님은 욕심이 너무 많으세요. 공에 대한 욕심이요.” 선생님이 말했다.
욕심이 많은 것은 좋은 거 아닌가? 나는 괜히 올라오는 반발심을 느끼며 선생님을 바라봤다.
“탁구는 팔이나 손목만을 움직여서 공을 맞히는 운동이 아니에요. 몸, 엉덩이, 코어를 쓰셔야 해요. 다리에 딱 힘을 주고 가슴과 몸통 전체를 이용하여 공을 품는다는 느낌으로 공을 다루셔야 해요. 공과 싸우려고 하지 마세요.”
어쩜 저렇게 말을 할 수 있지?
내가 탁구공 저 조그만 녀석과 싸우고 있다는 말인가, 지금?
“몸 전체 중심의 힘을 써서 안정적인 자세로 공을 맞이하면 팔과 손목은 저절로 따라가게 돼 있어요. 단단한 코어가 뒷받침되고 팔의 안정적인 각도가 갖추어지면 공은 저절로 넘어갑니다.”
“그리고 우습게 들리시겠지만 탁구는 선비정신으로 해야 해요. 가운데 네트를 중심으로 공평하게 주고받기, 거기엔 매너가 필요하지요. 상대를 이겨 먹으려고 공을 날카롭게, 거칠게 주기만 하면 즐거운 주고받음이 안 돼요.”
“정말 아니다 싶게 보내어온 공도 차분히 받아주고 안정적으로 다시 되돌려 주는 것, 그래서 초보자의 공을 안정적으로 받아주는 일은 나의 실력을 향상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지요. 실제로 게임을 할 때는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본 매너를 지키며 하는 게 중요해요. 이게 참 어려운 거지요?”
우와! 무슨 탁구 레슨이 아니고 인문학 강의다.
코어의 힘, 기본의 힘, 올바른 방향성, 매너 있게 주고받기...
나는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계속 고개를 주억거릴 뿐이었다. 몸은 전혀 따라가지 못하는데도 머리로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듯했다.
‘나는 확실히 제대로 된 레슨을 받고 있구나.’
오랫동안 탁구와 함께해 온, 프로 선수 출신인 내 탁구 선생님의 한 마디 한마디는 버릴 것 없이 그대로 내 마음에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나의 일터였던 학교가 생각난다. 학창 시절 공부를 즐기는 아이들은 많지 않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재능이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에 상당 부분 동의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고 적성도 없는 일에 매달려 산다. 슬프지만 그게 현실이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라’, ‘적성에 맞는 일을 해라’, '창의성 교육을 해라'... 많은 주문들이 사실은 실체가 없다. 무책임하다. 아이들은 계속 방황한다.
다만, 확실한 한 가지는 있다. 미래에 무엇을 희망하든, 현재 무엇을 하고 있든, 기본에 충실하라, 코어의 힘을 기르라는 말은 그들에게도, 나의 탁구 배우기에서도 여전히 옳다.
단시간에 무언가를 얻으려고 했던 나의 조급한 욕심, 다리와 몸통, 엉덩이의 수고 없이 날아오는 공을 잡으려고 쉽게 휘둘렀던 얄팍한 내 팔과 손목을 바라본다.
실력이 잘 안 느는 것 같아 속상해하면
“회원님, 운동은 꼭 하셔야 하잖아요, 건강을 위해서, 뭘 그렇게 조급해하세요? 그냥 꾸준하게 기본을 지키려고 애쓰면서 계속하면 돼요.”라는 말이 돌아온다.
위로가 된다. 무엇보다 안심이 된다. 계속해야 할 군더더기 없는 이유가 생겼다.
“선생님, 저 포기하지 마세요. 열심히 할게요.”
꾸벅 인사하고 탁구 교실 문을 나서는 데, 중학교 때 선생님에게 한 소리 듣고 교무실을 나서는 학생이 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