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짜장면 시켜 먹자.”
“그래라.”
감기 기운이 있어서 계속 침대에 누워있었던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대꾸했다.
학기 중에 통학하기 멀어서 힘들다고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 대학생 아들은 거의 하루 3끼를 배달 음식으로 연명하고 있다. 경제적인 부분도 그렇고 엄마인 내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달고 짠 집 밖의 음식을 아들이 계속 먹고 있는 게 걱정이 되긴 하지만 별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게 사실이다.
방학이라 집에 온 아들은 며칠 동안은 엄마가 해주는 집밥이 역시 맛있다는 둥 어쩌고 하더니 며칠 지나자 입에 익숙한 단짠 단짠한 배달 음식을 찾기 시작하였다. 어제는 치즈 떡볶이, 오늘은 짬뽕,..
솔직히 개인적으로 나는 요리를 즐겨하지도 않고 그러다 보니 잘하지도 못한다. 다만 가족들에게 건강한 음식을 먹이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잘못하는 요리 솜씨지만 인터넷을 뒤지며 레시피가 나와 있는 스마트폰을 옆에 끼고 요리를 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그럭저럭 구색과 맛을 갖춘 요리도 만들어내곤 한다.
아들은 일어나 창밖을 보더니
“엄마 밤새 눈이 왔나 봐, 눈이 가득 쌓였네, 앗싸, 오늘 고등학교 친구들 만나서 술 한잔하고 놀아야겠다.”
하며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정말 창밖으로 보이는 아파트 주차장에 눈이 하얗게 쌓여있었다.
눈 내리는 거랑 쌓인 눈을 보며 좋아하던 게 언제쯤이었을까? 첫눈 오는 날은 누군가를 만나야 할 것 같고 그게 이성 친구면 마치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가슴 설레던 오래 전의 기억들.
하하, 그러나 지금은 특히 퇴근길이나 밤에 내리는 눈을 보면 당장 다음 날 아침이 걱정된다. 남편의 장거리 출근길 운전이 걱정되고 무릎관절이 아픈 친정어머니 넘어져서 다칠까 봐 걱정돼서 전화부터 하게 된다.
아들은 눈을 보며 저리도 좋아한다. 젊구나.. 그 젊음이 부럽다. 넘어져도 금방 뼈도 붙고 살도 붙을 나이다. 눈 때문에 없던 이벤트도 만들고 그들의 젊음은 눈처럼 환하다. 대학생이 된 아들은 매일매일이 즐겁다. 그동안 책과 씨름하느라 참아왔던 모든 것을 하려는 듯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싸돌아다닌다.
고3 때까지 남들 하는 만큼의 사교육 시키고 재수까지 시켰다. 재수생을 대상으로 하는 수도권의 대형학원들은 무슨 수강료가 그리 비싼지 부모가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사교육비를 지출하느라 우리 집 살림살이는 늘 빠듯했다.
그런 공으로 아들은 원하던 대학에 어렵지 않게 들어갔고 저는 저대로 다른 친구들처럼 천문학적인 개인 과외비 안 들이고 대학 들어갔다고 가성비 좋은 아들이라고 효도했다고 큰소리로 치곤 한다.
방학 때도 아르바이트하지 말고 그 시간에 공부나 열심히 하라며 미리부터 아이에게 넉넉한 용돈을 내미는 남편, 내 손주, 손녀 기특하다고 볼 때마다 용돈 주시는 시부모님, 친정 부모님.
내 자식이라는 걸 떠나서 봐도 딱히 부족함 없이 자란 아들이다. 어려움 없이 자란 아들. 풍족하기까진 않지만 곤궁해 본 적이 없는 아들. 최신 핸드폰을 사달라고 주저 없이 요구하는 아들.
가끔 아,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는 요즘 세대를 모른다는 구닥다리 꼰대라는 소리나 들을 것 같아, 용기가 없어, 사실 눈감아 버리곤 한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 춥고 눈이 많이 내리고 있었다. 내리는 눈이 곧 얼어서 길이 미끄럽다고 계속 방송에서 주의하라는 안내가 나오고 있었다.
“엄마는 뭐 먹을래요? 난 짜장면, 엄마는?”
“응, 엄마는 밀가루 먹으면 속이 더부룩해서 안 먹으려고.”
“아 그래요? 그럼 짜장면 하나만 배달시킬게요.”
“뭐? 짜장면 딸랑 하나를 이 날씨에 배달시킨다고? 아서라. 그럼 엄마 것도 하나 더 시켜라.”
“엄마 드시게요?”
“아니, 근데 몇천 원밖에 안 하는 짜장면 하나 배달하려고 누군가가 이 날씨에 우리 집까지 오게 하는 건 좀 그렇잖아?. ”
“헐, 엄마, 웬 오지랖? 배달 기사 배달비 받고 오는 거야. 짜장면 하나라도 내가 주문해 주는 게 그들 돈 벌게 해주는 거거든? 엄마는 안 먹을 거면서 주문하면 낭비잖아요? 엄마는 너무 감상적인 게 문제야.”
“이렇게 눈 오는데 오토바이로 오다가 미끄러질 수도 있고, 생각해 봐라. 그 배달 기사도 다 네 나이 또래 젊은이일 텐데. 하나 시키는 건 좀 그렇지 않니?”
“엄마, 그 사람은 돈이 필요해서 배달 기사로 일하는 거고 난 짜장면이 먹고 싶어서 배달시키는 거야. 각자 자기 필요에 의해서 적정한 가격에 거래를 하는 것일 뿐이야. 그 관계에 쓸데없는 감정이 개입되는 건 정말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난 순간 할 말을 못 찾았다. 갑자기 아들과 나 사이에 커다란 강, 건널 수 없는 깊고 넓은 강이 있는 것 같았다. 그 이후의 어떠한 내 이야기도 그에게는 하나마나한 잔소리일 뿐이었다. 할 말을 다 한 아들은 이어폰을 끼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짜장면 배달 온 청년은 아들 나이 또래로 보였다. 나는 돈을 건네며 날 추운데 너무 고맙다는 말을 했다. 그가 돌아가고 난 뒤 아이는 짜장면을 먹으며
“내가 능력이 뛰어나서, 내가 열심히 해서 대학을 간 거잖아. 쟤는 열심히 안 했잖아. 그래서 저렇게 사는 거야. 쟤네는 할 말 없는 거야.”
했다.
“저렇게 사는 게 어때서? 엄마에게 용돈 받으며 사는 너보다 훨씬 낫구먼.”
“네가 다른 거 신경 안 쓰고 공부에 집중할 때 저 사람은 아르바이트를 해 학비를 벌어야 해서 공부할 시간이 없었을 거야. 그건 공정하지 않은 거잖아.”
하고 나는 또 영양가 없는 잔소리를 했다.
‘공정하다는 착각’ 참 제목이 깔끔하다. 제목만 봐도 내용이 짐작되었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이다.
능력주의적 성공관, 조건의 불평등, 시장 주도적 세계관, 부의 양극화, 고학력의 세습화.
저자가 계속해서 물고 늘어지는 화두들이다.
정의롭지 않은 사회에 대하여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 그들을 보면서, 그들의 생각을 만나며, 그래도 세상은 발전하고 있는 거야, 이대로 흘러가게 내버려 두지는 않을 거야,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걱정하고 있으니 곧 세상이 나아지겠지.. 하며 나는 책을 덮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 계속 서성대는 불편함이 있었다.
그런 기울어진 세상에서 나 역시 내 자식을 어떡하든 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위로 끌어올리기 위해 애를 쓰며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 그것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따뜻한 거실에 앉아 맛나게 짜장면을 먹고 있는 아들을 바라보며 내 울타리는 따뜻하구나, 내 것은 저렇게 안전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다.
순간 그런 내가 경멸스러웠지만 나는 이내,
아니야,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위선의 가면을 쓰고 살 수밖에 없어. 나도 어쩔 수 없는 거야.. 하며 마음속으로는 또 열심히 나를 변호했다.
그런 내가 아이에게 공정에 대하여 설교하고 있었다.
나는 위선이지만 그래도 내 아이만은 정의롭기를 바라는 이 마음은 무엇일까?
나는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안전한 곳에서 따뜻한 밥을 먹는 내 아이가 적어도 생각만으로라도 불편해하는 시늉을 했으면 좋겠다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
우리가 만들고 우리가 물려주려는 세상이지 않은가?
능력주의적 성공관이 판치는 사회에서 제대로 숨을 쉴 수 있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
나부터도 내 자식이 이 거대한 레이스에서 뒤떨어질까 봐 아득바득 동동거리지 않았던가?
결과가 성공이 아니라면 말할 자격조차 없는 사회.
초인적인 노력으로 성취한 극소수 사람들의 이야기로 수많은 개인들을 주눅 들게 하는 사회,
‘하면 된다’의 신화가 아직도 건재한 사회.
해도 안 되는데..라고 눈물 삼키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사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무 힘도 없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자신의 성취가 자신의 노력 외에 부모의 지속적인 관심과 경제적 지원이라는 조건에 의해 결과된 것임을,
그리하여 그 조건이 없어서 성취하지 못한 타인이 분명히 있음을,
그래서 너는 그들에게 빚이 있는 것임을,
우리 아이가 이해할 수 있다면...
꼰대라고 해도 좋다. 잔소리라고 해도 좋다. 그래도 사랑하는 내 아이니까 용기를 내어보자. 용기 내어 아들과 오늘 저녁 다시 마주 앉아보자. 집이 가난하여 서울로 대학 진학을 못한 지방에 사는 내 사촌 이야기부터 시작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