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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의 쓸모

by 강하늘

손톱을 자주 깎는 편이다. 오래되어 무디어지지 않은 날렵하고 잘 드는 손톱깎이를 한 손에 쥐고 동그스름한 엄지손톱의 가장자리를 끝에서부터 야무지게 돌려가며 깎아가기 시작한다. 불그스름하게 핏기가 도는 살갗과 붙어있는 부분을 지나 옅은 상아빛깔로 시작되는 부분을 적당한 너비를 유지해 가며 깎는다.

똑, 또각, 똑, 또각 경쾌한 소리를 떨어지는 잘린 손톱 조각들. 양손 손가락 10개에서 깎여져 나온 손톱 조각, 이제 곧 버려질 부스러기 같은 것들. 그럼에도 며칠만 지나면 올라오는 잡초처럼 무심히 쓱하고 자라 올라오는 손톱.


나는 거의 강박적으로 1주일이 멀다 하고 손톱을 깎는다. 1미리도 올라오는 걸 용납 못 한다는 듯이 열심히 깎아댄다. 내 힘으로 안 되는 일 투성이인 현실에서 오직 손톱만이 내 통제안에 있는 것 같다.

핸드백이나 호주머니에도 작은 손톱깎이를 넣어 가지고 다니곤 한다. 아무 때고 손톱을 바라보다 지난번 보다 조금이라도 더 자랐거나 자른 모양과 길이가 맘에 들지 않으면 손톱깎이를 꺼내어 손질하곤 한다. 이런 나를 보고 남편은 애정 결핍이라는 둥, 편집증이라는 둥, 놀려대곤 하지만.


어느 날 습관처럼 TV앞에 앉아서 드라마를 보면서 무심히 손톱을 깎고 있었다.

아야! 사달이 났다. 예견된 일인지도 모른다. 너무 바짝 잘라버린 집게손가락 손톱. 손톱 아래 살갗이 깎여 나갔다. 작은 상처인데 피도 계속 났다. 잘려 나간 손톱을 도로 붙일 수도 없었다.

손톱이 자라나는 동안 남아있는 손톱이 거의 없어서인지 손톱 안쪽 살갗과 겉의 손톱의 강제적으로 벌려지면서 쓰라림은 생각보다 컸다.

아니 사실 칼로 베이거나 못에 찔려서 당당하게 나는 상처도 아닌데, 별것도 아닌 손톱 주제에 주인에게 이리도 스트레스를 주다니 하는 생각. 손톱에 대한 은근한 무시가 손톱의 말도 안 되는 반란을 초래한 것처럼 느껴져서 황당했다. 옷 입고 지퍼를 올리거나 단추를 잠글 때도 신경 쓰이게 욱신거리고 세수할 때도 걸리고 요리할 때도 영 거슬리는 게 아니었다.

통증과 거슬림이 사라질 정도로 손톱이 자라는 시간이 의외로 길게 느껴졌다.

10일 가까이 정도를 꾹 참은 후에야 잘려 나간 손톱으로 인한 통증은 완전히 사라지고 살며시 희끄무레한 상아 빛 손톱이 부드럽게 올라와 엄지손톱 가장자리에 울타리를 치듯 자리했다. 반갑기 그지없었다, 마침내 내손톱은 안전해졌다.


그동안 너무 무심하게 함부로 대했던 내 손톱. 숨도 못 쉬게 싹수가 나올 만하며 잘라버리던 주인의 성마른 성정. 그 아래서 내 손톱은 얼마나 시달리고 있는 걸까?

참치 통조림 하나를 따는 일에도, 열심히 분리수거를 한답시고 페트병에 붙은 라벨지를 뜯어내는 손에도, 박스에 붙어있는 스카치테이프를 벗겨내는 일에도, 식탁에 눌어붙어있는 정체불명의 이물질을 파악하고 제거하는 일에도 내 손가락, 특히 손톱은 핵심 도구다. 그런데 빡빡 깎아내린 삭발처럼 여분 거의 없이 바싹 손톱이 잘려 나간 뭉툭한 내 손가락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무심코 깎아 내 버렸던 손톱. 너무도 하찮은 존재였지만 어느 날 그 존재감을 당당히 과시하며 내 앞에 슬며시 고개를 내밀고 있는 거다.

머리, 팔, 다리, 심장, 몸속의 온갖 장기에 우리는 고민 없이 중요하다, 는 형용사를 가져다 붙인다. 그러나 우리는 여간해서는 손톱이 중요하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손톱만큼, 손톱의 때만큼 이라고 하며 작디작은 것, 우습고 하찮은 것을 비유할 때 가져다 쓸까?


범죄 스릴러를 즐겨본다. 아무리 해도 살인의 증거를 찾지 못해 미궁에 빠질 것 같은 사건이었는데 절명의 순간, 가해자의 얼굴을 스친 피해자의 손톱 끝에 미세하게 남았던 혈흔이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되는 경우는 종종 있다. 문득 손톱의 쓸모라는 말을 떠올렸다.

옆에 있는 아들에게 물었다.

“ 손톱의 쓸모가 뭐지?

“ 무슨 쓸모가 있겠어? 수염처럼 매일 깎거나 잘라줘야 하는 귀찮은 면이 더 많지.

굳이 찾으라면 뭐, 등 가려울 때 시원하게 긁어주는 거? 귀 후비는 거?”

“ 아, 뭐야, 더럽게.. ”

손톱의 쓸모가 그런 것인가?

내 손톱을 바라본다. 갑자기 손톱이 안쓰러워진다. 그리고 미안해진다.


그러나 뒤이어 올라오는 생각들.

내가 살아있는 한 매일 소리 없이 자라 올라온다,

손톱은 정말 무던하다. 이렇게 워딩을 하고 보니 손톱이 가진 성정은 정말 멋지구나 싶다. 주인이 아무리 행패를 부리고 앙탈을 부려도 제 할 일 한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호흡으로 정해 진 양만큼 길이만큼 천천히 머리를 밀어 올린다.

내 몸의 다른 장기나 기관처럼 고장이 나서 생명에 위협을 가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내 몸의 건강 지표로 징후를 알려주는 역할까지 한다. 다른 장기는 고장이 나면 고치거나 대체하기가 쉽지 않다. 심지어 새로 생기지도 않아 생명에 위협을 가하지만 손톱은 밑동을 잘라낸 부추처럼 씩씩하게 잘도 자라 올라온다. 이처럼 고맙고 무던하고 충성스러운 게 내 몸에 있구나. 위협도 가하지 않을 뿐 아니라 까칠하거나 무심하지도 않다.


아, 나는 그 무던함이, 그 소리 없음이, 그 위협적이지 않음이 그리웠나 보다.

너무 많은 말, 너무 화사한 위로들에 가끔 현기증을 느낀다. 그 많은 말과 위로 속에서 나는 여전히 쓸쓸하다.

손톱처럼 작고 보잘것없는, 그러나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는 누군가가, 무엇인가가 그립다.


설거지를 마치고 손가락 하나하나 그리고 손톱 하나하나에 정성 들여 로션을 바른다.

손톱이 늘 내 곁에 있어서, 그리고 매일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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