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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늘 Dec 08. 2023

"난 살림이 취미야"

 천주교 사회사목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주로 결혼 이주민 여성들과 언니 동생 비슷한 관계를 맺어서 그들이 한국에서 적응하는 데 필요한 도움을 주는 게 활동의 주 내용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고양 파주시에만도 이주민 여성은 7,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인적 물적 자원들이 국경을 넘나들고 합쳐지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다문화의 흐름은 우리나라에도 예외는 아닌 게 확실한 것 같다. 낮은 출생률에 대한 인구문제 해결방안으로 이민 문제를 재고하자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나오는 현실이고 보면 한 지역의 이주민 7,000여 명은 어쩌면 당연한 숫자인지도 모른다. 통계로는 이주민의 수가 한국 총인구의 2% 정도를 차지한다고 한다.


어쨌든 이런저런 절차를 거치고 난 후 나는 필리핀이 고향인 한 여성과 인연을 맺었다. 언니와 동생으로. 멘토와 멘티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나고 수시로 문자나 통화를 하며 지내는 관계다. 이주민 여성들이 한국에 살면서 겪는 어려움은 주로 가정에서 가족 구성원들과의 관계나 직장에서의 적응 문제가 가장 크지만 우리가 개입하거나 관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하여 주로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일들, 예를 들면 은행 업무, 병원 가는 것, 자녀가 있는 경우 일반적인 육아나 교육 관련 정보 제공 등이 활동의 주요 항목이다.     


그들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보다 언어였다. 한국어가 서툰 그들 대부분은 갈등이 생겼을 때 자신의 감정과 의견 표현이 거의 불가능하였고 특히 자녀가 있는 경우 자녀들과 의사소통이 안 됨으로써 관계가 악화되기 일쑤였다. 언어가 통해도 자녀교육은 힘든데 의사소통에 가장 중요한 언어가 안 통하니 자녀교육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관계조차 엉망인 경우가 많아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상황이 너무 많았다. 사실 처음에 나는 직장을 그만두면 봉사활동 한 두 가지는 해야지 하는 막연한 생각만으로 시작한 일이라 별다른 준비 없이 맞닥뜨린 셈이었다.


첫 만남이 기억난다. 나랑 인연을 맺은 나의 멘티는 상당히 밝고 명랑해 보였다. 필리핀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 오기 전에 유튜브로 6개월 정도 한국어를 공부해서 상당 부분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이었기에 나는 무척 놀랐다. 이주민 여성들에 대해 가지고 있던 내 일말의 편견 같은 것을 보기 좋게 그녀는 날려주었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헬 조선’이라고 하며 이 나라를 떠나고 싶어 하는데 그녀는 한국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이 강했고 결국 한국 남자와 결혼하여 국경을 넘어 이 땅에까지 온 셈이었다. 우리나라 밖에서는 우리나라를 가고 싶고 살고 싶은 나라라고 동경까지 하는구나 하는 너무도 뜻밖의 시선을 만나게 된 것이다.


한국에 온 지는 6개월 정도 되는데 직장에서 일하고 집에서 살림 살고 홀시어머니 모시고... 그녀의 일상이 녹록지는 않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첫 만남인지라 우선 그동안 한국에서 살아보니 고국 필리핀과 어떤 점이 많이 다른지, 그런 것들로 힘들지는 않은지 물어보았다. 서툴지만 온전히 한국어로 자기의 생각을 전달하는 그녀의 모습은 귀엽기도 하고 대견하고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한국이랑 필리핀이 제일 다르게 느껴지는 게 뭐야?”

“음, 우리나라 필리핀에서는 집에서 우리 엄마가 제일 힘이 세요.”

“이곳 한국에서도 가정에서 엄마는 힘이 세. 아이들도 엄마 말을 더 잘 듣지. 아빠랑은 의논 같은 거 잘 안 해. 주로 엄마랑 이야기하지.”

“음.. 그런 게 아니고요. respect?  존.. 중 존중받는 거? 그런 거요.”

“존중? respect?”

“네. 우리 집에서는 식구들이 모두 서로 존중하긴 하지만 엄마에게 가장 크게 존중을 줘요.”

‘존중’이란 우리말의 쓰임이 자연스럽지 않았지만 나에게 그녀의 의사는 충분히 전달되었다. 내가 그녀의 설명을 더 기다리는 눈치를 보이자 그녀는 계속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면 깨끗한 집, 따뜻한 식사, 향기로운 빨래 그런 것들이 좋아요. 그 거 다 엄마가 다 만들어줘요. 아빠는 그런 것들을 위해 돈을 벌어오는 것이고요. 그래서 우리 집에선 엄마가 최고예요. 최고로 존중받아요."

    

뭐지? 이 논리는? 나는 순간 혼란스러웠다.

멘티가 자기 나라 필리핀과 한국이 다르다고 느꼈다면 분명히 다르긴 다른 건데..

확실히 뭐가 다른 거지?  

   


가장이 벌어오는 돈은 가족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의식주를 해결해 준다. 가장, 돈을 벌어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역할을 하는 사람. 요즘은 남자든 여자든 돈을 벌어오는 일에서의 역할 구분은 거의 사라졌지만 전통적으로 그 가장은 남자라는 생각이 뿌리 깊게 남아있는 것도 사실일 테고. 남자든 여자든 집에서 돈을 벌어오는 사람이 사실 제일 중요하고 돈을 벌어오지 않으면 덜 중요한 가족 구성원이 된다는 논리? 그게 그녀가 느낀 한국이란 말이구나. 나는 혼란을 나름 정리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집에서 하는 일도 없으면서, 놀면서 이런 것도 못 하니?”

“남자가 밖에서 돈 벌어오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은데 쉬게 놔둬라”


예전 어른들한테서 많이 듣던 말이다. 멘티의 한국 시어머니도 비슷한 말을 일상적으로 내뱉고 있었고 그녀는 단순히 한국과 필리핀이라는 두 나라의 문화나 가치관의 차이라는 차원을 넘어서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시어머니와 같이 살면서 갈등이 많았다. 한국 음식에 익숙지 않음에도 애써 음식을 만들고 집안 청소하고 시간 내서 아르바이트도 하는 자신의 노력은 전혀 존중받지 못함에서 오는 그녀의 속앓이가 충분히 느껴져 나 역시 마음이 답답해졌다.     


생계를 위하여 돈을 벌어오는 일은 엄중하고 고귀하다. 그러나 벌어온 그 돈으로 보금자리를 가꾸고 음식을 만들고 생명을 키우는 일 역시 중요하지 않은가. 그 두 가지가 전혀 따로 있지 않은데, 하는 생각이 내 속에 강하게 똬리를 틀고 있었다.


결혼한 여성의 모습을 우리는 다시 워킹 맘과 전업주부로 나눈다. 워킹 맘은 자신의 커리어와 육아, 두 개의 끈을 양손에 쥐고 달리느라 늘 힘이 들고 전업주부는 가시적인 보상도 없는 집안일과 극한의 육아에 매달려 자신이 찌들어가고 소진되어 간다고 느끼며 힘들어한다. 돈을 벌어오는 일은 의미 있고 더 힘든 일이라 값을 더 쳐주고 그렇지 않은 일은 무의미하고 덜 힘든 일이라 값을 제대로 쳐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 무엇보다 남들이 그렇게 바라보리라는 생각에 결혼 전 남달랐던 자존감은 차츰 꺾이고 자신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다. 나만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 직업을 가지고 밖에서 일하면 성장이고 집에서 아이 키우고 집안 일하면 퇴보하는 건가?


오랜만에 박완서 작가의 책들을 꺼내어 다시 읽었다. 늦은 나이에 등단한 그녀는 아이 다섯을 낳아 기르며 살았던 보통 주부의 삶을 후일 자신의 가장 빛나는 문학적 자산으로 품게 되었다고 했다. 보통 주부로 살아가면서, 살림을 하면서 느끼고 생각하기에 게으르지 않았던 그녀의 매 순간은 주옥같은 그녀의 작품으로 탄생하였던 것이다.       


어디에서고 서류작성 시 직업 기재란에 '주부'라고 당당하게 망설임 없이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가족을 위하여 집을 환하게 청소하고 옷을 향기 나게 빨아 널며 따뜻한 매끼의 식사를 준비하는 일이 왜 밖에서 돈 버는 일보다 못한 건지 모르겠다.


워킹 맘이었던 나는 정말 자주 반찬가게를 들락거렸고 아이들에게 천천히 편안하게 따뜻하게 말을 걸었던 기억이 많지 않다. 그렇게 일하면서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이었을, 더하기 빼기 하면 남는 게 있기는 했을까, 하는 생각이 지금도 자주 들곤 한다.


언제가 전업주부인 친구 집에 갔을 때 먹었던 나물 반찬과 연근 우엉조림의 맛이 오래도록 생각났다. 다듬고 씻고 삶고 양념으로 무쳐야 한 접시가 나오는 나물 반찬은 정말 시간과 손이 많이 간다. 그래서 더 맛있었나 보다. 밖에서 사 먹는 밥에 지겨워진 식구들에게 집에서 만든 엄마의 반찬은 그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넌 어쩜 이렇게 음식을 잘하니? 집 안은 왜 이렇게 깔끔해? 온 사방에서 향기가 나네.”

“음, 난 살림이 취미야. 재미있어.”     

음악, 그림, 악기, 등산, 골프처럼 살림이 취미라고 싱글거리며 말하던 친구가 생각난다. 살림이 취미인 그녀의 집은 살림 전문가의 손길이 곳곳에 닿아서 반짝이고 있었다.  

   

워킹 맘이든 전업주부든 자신이 선택한, 아니 선택이 아니라 주어진 일지라도 지금 그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그만이지 않을까? 무슨 일을 하든 매 순간 온전히 느끼고 생각하며 깨어있다면 모두 그 나름 너무 중요한 일이고 직업이다.

     

나의 멘티는 다문화지원센터에서 진행하는 한국어 수업 3개월 과정에 등록을 했다.

“한국어가 유창해지면 너는 정말 좋겠다. 3개 국어를 할 수 있게 되는구나. 영어, 한국어, 필리핀어까지.”

“엄청난데. 부럽다. 좀 있으면 운전면허도 따 보자.”

     

한국어 자격증 취득하기

좋은 직업 가지기

시어머니와 사이좋게 지내기

운전면허 따기

하와이 여행 가기

필리핀 가족들 초대하기

.......


그녀의 버킷리스트다.     

고향을 떠나 그것도 국경을 넘어 낯선 땅에서 새로운 꿈을 꾸고 있는 씩씩한 그녀가 눈물 나게 아름답다.  그녀를 만나는 날이면 오히려 내가 그녀에게서 기운을 얻어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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