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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로 Oct 14. 2023

내 맘에 쏙 드는 발효빵을 만들기까지

엄마의 마음으로 빵의 발효를 지켜본다

내가 빵을 처음 구워 본 것은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갔을 때쯤이니까, 12년이 됐다. 지금 집에 있는 핸드 반죽기는 그때 산 것이다. 처음 오븐이라는 것을 얻게 되고, 빵과 쿠기를 굽겠다고 시도했다. 밀가루, 아몬드 가루, 이스트, 베이킹파우더, 버터 같은 재료는 물론이고, 저울, 계량기, 거품기, 반죽기를 샀다. 빵을 구웠을 때, 퍼지는 풍미가 좋았다. 이래서 빵을 굽는구나. 아이를 위해 버터 가득한 쿠키를 만들었고, 단체 사람들과 나누어 먹을 빵을 만들었는데, 그때 취향은 지금이랑 좀 달랐다. 초콜릿이 가득한 빵을 주로 만든 것 같다. 빵을 만들던 취미는 그때 1년 반짝하고 끝이었다.


그리고, 다시 빵을 만든 것이 1년 전, 이던가? 사무실 사람들과 아침 간식을 나누어 먹다가 문득 내가 직접 빵을 구워 보면 어떨까 했다. 마침 시중에 나온 제빵기가 좋다는 말에 십만 원 주고 제빵기를 사서 매일 구웠다. 그렇게 몇 개월 매일 제빵기 식빵을 구워 나르다가 그만두었다. 일이 많은데 빵까지 구워가며 사는 것이 뭐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처음부터 그 무모한 도전을 주변에서도 미안해하고 있던 터라, 내가 빵 굽기를 그만두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어쩌면 기성빵이 더 맛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또 얼마간이 지나고, 나는 다시 빵을 구워보겠다고 생각했다. 냉장고에 오래도록 그냥 묵혀 있는 밀가루가 아까웠던 것이 첫 번째 이유다. 나는 어렵게 만들기보다는 대강 만들고 싶었다. 밀가루 컵하나만큼에, 물은 그 80프로 정도만 담고 이스트도 작은 스푼으로 두어 번 , 소금도 그 정도 넣어 섞어 적당히 발효시켜 구우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는 계량도 제대로 하지 않고 손으로 느껴지는 반죽 정도를 가늠하여 밀가루를 뭉치고, 빵이 적당히 부풀어 올랐을 때 에어프라이기에 구웠다. 온도는 200도로 20여분 구웠는데, 굽고 나니 빵 윗부분만 검게 그을렸다. 속은 떡인지 빵인지 모를 질감으로 대참사. 대 실패.

 

실패한 통밀가루 빵. 한조각 먹고 굿바이

이번 빵이 실패한 것은 계량을 제대로 하지 않고 손으로 느껴지는 대로 멋대로 했기 때문이었다. 이 점을 개선하면 좀 나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다시 가장 손쉬운 통밀빵 레시피를 찾았다. 레시피를 찾다 보니, 예전에 치아바타를 만들어 성공한 어느 날이 떠올라, 치아바타 만드는 법을 찾았다. 밀가루와 물의 비율, 이스트 양의 적당한 정도를 찾아다녔는데, 인터넷 포스팅마다 조금씩 내용이 달랐다. 심지어, 미리 밀가루를 발효했다 반죽하는 기법이 있다니, 어떤 방법을 따라 야할지 결정할 수 없었다. 여러 방법 중 가장 적당한 레시피 하나를 골라서 다시 빵 만들기에 도전했다. 반죽 정도, 굽기 정도는 적당했는데, 빵 속살이 쫄깃하지가 않고 포슬포슬 부드러운 식감이다. 쫄깃한, 치아바타가 더 그리워진다.


처음부터 다시 제대로 도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제대로 방을 구우려면 아무래도 강력분이 필요하다. 즉시 강력분을 주문했다. 집에 있는 통밀가루를 써보려고 했지만, 아직 빵의 기본도 모르는 내가 고수의 비법을 무시하고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내기는 어렵다. 강력분을 받자마자 치아바타의 쫄깃한 맛의 비법인 비가 발효법을 사용해 보기로 했다. 처음 찾은 레시피는 밀가루 100, 물 120, 이스트 2로 비가를 만드는 것이었다. 밀가루보다 물의 비율을 더 많이 배합하고 이스트를 소량 넣어 24시간 발효했다. 기포가 올라왔다. 발효한 밀가루 반죽 위에 다시 밀가루와 물, 이스트를 더 넣고 30분씩 두 차례 발효하고 에어프라이기에 구웠다.


이번엔 제법 치아바타스러웠는데, 문제는 굽는 온도가 너무 높고 한쪽면만 오래 익혀서 바삭한 정도의 두꼐가 너무 두껍고 질겼다. 치아바타라기보다는 바게트에 가까웠다. 다른 레시피들을 찾다 보니, 내가 찾은 레시피의 비가는 비가 반죽 비율이 아니었다. 원래 비가란 물이 밀가루의 60% 정도라고 했다. 내가 한 방법보다 물의 양이 50%나 적다. 나는 다시 제대로 된 방법으로 치아바타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밀가루 100, 물 60, 이스트 2. 이렇게 다시 만들어 24시간 발효한 빵은 어떤 모양과 맛일까. 다음번엔 180도에서 앞면 10분, 뒷면 10분씩 나누어 구워서 전체적으로 겉면이 모두 바삭하되 너무 딱딱하지 않은 정도로 구워질 것이다.


다시 도전, 이번엔 밀가루 100에 물 60, 이스트 2를 넣고 뭉쳤다. 물이  60%만 들어간 밀가루 반죽이  과연 발효가 잘 될까 걱정스러웠다. 스티로폼 통 안에 비가를 넣어 두고, 한 시간에 한 번씩 관찰했다. 시간이 지나니 뭉쳐 있던 반죽에 기포가 생기면서 발효가 되고 있었다. 걱정은 덜어 두고, 발효가 잘 되길 바라며 일상생활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24시간 뒤 발효가 잘 된 비가로 빵을 만들어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


출근을 해야 할 시간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비가를 냉장고에 넣어 보관했다.  발효한 밀가루라도 냉장고에 보관하면 발효를 잠시 멈추게 할 수 있다. 실온에서  너무 오래되어 과발효가 되면 맛이 엇어져서다. 비가를 냉장고에 잘 넣어두고 출근했다.  퇴근할 시간이 되니 잊고 있던 냉장고 속 비가가 떠올랐다. 죽지 않고 잘 살았나 궁금하다. 마치 집에서 혼자 엄마를 기다리는 아들 생각하는 것 같다. 서둘러 퇴근하며 비가가 잘 살아있기만을 바랬다.


집에 오자마자 냉장고를 열었다.  비가는 걱정 없이 쌔근쌔근 잘 자고 있는 아이처럼 얌전히 잘 살아 있었다. 나는 곧바로 그 위에 밀가루 150, 물 130, 이스트 2, 소금 3을 넣고 섞었다. 그리고 핸드 자동 반죽기로 10분간 돌렸다. 매끈하게 뭉친 반죽을 용기에 넣어 잘 뭉쳐 두고, 발효를 시작했다. 처음 1시간 발효 후 폴딩한 후 30분 동안 발효, 폴딩, 30분 발효를 반복했다. 그리고 180도에서 앞 10분, 뒤집어 10분을 구웠다. 부엌 가득 빵 굽는 향후 산뜻하다. 빵 굽는 풍미는 뭐라고 설명해야 가장 적당할지 모르겠다. 고소하다고 하는 것도 맞지 않고, 달콤한 것도 아니다. 신선한 무언가가 향긋하게 퍼져 오른다. 잘 익은 위스키 한 모금을 마시면 그 풍미가 몸 가득 퍼져 나간다. 그때의 풍부한 달콤함, 향긋함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할까?


결국에 내 맘에 쏙 들게 완성했다. 치아바타 모양은 아니지만 말이다.  에어프라이어에서 꺼내자마자 반으로 자르니, 껍질에서 바삭하고 소리가 난다.  그 안으로 기포가 송송송 보이는 빵의 속살. 너무나 예쁘게 구워진 빵을 보며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처음으로 뒤집기에 성공한 아들을 보았을 때의 기분이랄까.  혼자 좋아서 폴짝폴짝 박수를 치고 행복한 미소가 절로 나온다.


비록 치아바타 모양은 아니지만, 내 맘에 쏙 드는 빵의 레시피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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