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역에서의 밀회

by 노아
“노아, 우리 자유의 몸이 되면 여행하는 거다? 꼭!”


뿌연 푸른 안개에 저물어만 가는 듯한 아침 햇살을 맞을 때마다, 그 빛에 반사되는 그날의 음성. 우리의 약속. 불현듯 떠오를 때마다, 아직도 어두운 아침의 터널 속에서 배회하며 이 터널의 끝을 아늑히 바라본다. 그리고 조용히 말해보곤 한다.


'언제, 우린 자유의 몸이 될까?'


그러니까.. 그를 알게 된 건..


한창 AI 붐이 이제 막 대한민국에서 꿈틀 대기 시작한 무렵, AI 대학원에 입학했던 나. 당시 29살이었던 나는 아버지의 퇴직과 오랜 기간 백수라는 상황이었기에 어떻게든 취업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생각에 발버둥 치고 있었다. 그런 때에, 그 대학원에서 같은 학과 동기로써 그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대학원을 통해 같은 회사에 입사 동기로써 생애 첫 사회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게, 그와 나의 첫 만남이자 첫 시작이었다.


그는 나와 정반대였다. 그 어느하나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 구석이 1도 없었다. 그와 나의, 주변 사람들도 생각도 모두 정반대. 마치 다른 별 사람 같았달까? 그러다 보니, 매 순간 그를 대하는 건 충돌이요, 나에게는 도전이었다. 외계인을 마주한 기분과도 같았달까?


“노아, 저 오늘 밥 굶을래요~”


뭐라고? 밥을 굶어?? 나 지금 뭐 잘못 들은 거지?? 내 사전에 밥을 굶은 일이란 없는데?


“노아, 저는 밥보다 빵을 많이 먹는 편이에요~”


빵을?? 밥이 아니라?? 마리 앙투아네트가 좋아하겠다~ 그런데, 잠깐! 근데 빵만 먹는데도 그렇게 살이 없다고??


너는 대체, 어느 별에서 왔니?


그러는 너는 어느 별 사람인데?


그러나, 우리가 친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역시.. 연애였다.


서로의 삽질과 차마 말할 수 없는 부끄러운 흑역사까지 전부 털어놓으면서, 삼성동에 있는 코엑스 내부를 크게 한 바퀴씩 매일 같이 돌았었다.


"그래서, 또 차였어? 아아 그만~~ 나 그만 들을래~ 나까지 부끄러워져~ "


"아니! 들어야해! 그러니까~~"




"휴.."


"그냥, 비행기 타고 빨리 만나러 가~~ 지금 여기서 뭐하는 겨~~"


그러면서, 서로에 대한 얘기도 자연스레 하게 되었고.

그렇게 1년하고도 몇 개월.. 매일매일, 코엑스 내부 한 바퀴를 우린 함께 거닐었었다.


그런 우리였으나, 갑작스러운 나의 퇴사.. 그리고 이후 이어진 단절.

그로부터 약 2년이 넘은 후, 지금 그와 다시 연락이 닿아, 그의 무대인 사당역에서 만남을 앞두고 있었다. 만나기 전, 내 심정은 흡사 소개팅 나가는 느낌이 들었더랬다... (뭐야?? 이 감정???) 설렘 반, 부담 반이었다(느낌이 이상한데??). 이 뭔 개똥 같은 감정일까? 싶었다. 이런 감정을 느껴도 되... 나 싶어서? 그것도 동성한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당역 어느 출구에서, 약간은 한기 머금은 바람을 몇 번이나 맞았을까.. 멀리서, 아우라를 풍기며 긴 머리를 매 순간 손질하면서 다가오는 그가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한걸음..


한걸음..


2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그 공백을 넘어 우리의 마지막 헤어짐을 맞이하기 직전, 그 시공간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가 내 앞에 섰을 때, 마치 어제 같이 출퇴근했던 것처럼 오랜 공백이 실감 나지 않았다.


“가자~”


“뭐야? 전혀 변한게 없네?”


우린 거리를 같이 거닐며 이런저런 근황을 주고받다가 닭갈비 집에서 닭갈비를 먹으며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한이 나를 보며 말했다.


“너 나가고, 이 XX 상무, 얼마나 추했는지 아냐?? 마지막에는 돈이 없으셨는지, 회식 때마다 돌아가면서 한 턱 쏘라고 하더라고~ 그리고 막판에는 최 XX 팀장하고 대판 싸우고, 최 XX 팀장 나가고.. 너 진짜 잘 나간 거야..”

“그리고 최 XX 팀장한테 api 호출 오류 나는 부분에 대해 말했더니, 짜증 내면서 대충 설명하고 피하기만 하고~”


“아니, 진짜?”


그리고는 그가 말없이 잔을 보다가 나지막하게 나에게 말했다.


“그때 네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고생했을지.. 내가 다 미안하더라..”


우린 술잔을 기.. 울이지는 않고, 콜라 한잔 기울이면서 못다 한 얘기들을 다 할 수 있었다. 그때, 그가 느꼈던 감정들과 비하인드 스토리. 그리고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들.. 전부 쏟아냈었다. 그동안, 닭갈비집에서, 낙성대역, 카페까지 수많은 공간들을 거쳤음에도 우린 그때 그 시절에 머물러 함께 하고 있었다. 지금 우리가 함께하는 이 순간, 수많은 시공간이 심하게 휘어져, 사건의 지평선에 이끌려 들어가는 듯했다.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문득 이런 느낌이 들었다.


우린 이제 예전처럼 같은 곳에서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갈 수 있는
동료가 될 수 없구나..

너와 내가 떨어진 사이에, 서서히 조금씩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었고. 공백의 시간 동안 그 간극이 많이 벌어져 버려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멀리 와버린 것이다. 각자의 살아가는 방식도, 만나는 사람들도 가치관도 전부.. 달랐다.


“노아, 내가 그 회사에서 퇴사하기 전에 우리 팀장님이셨던 CHAN 박사님 말이야. 그분께서 개발 관련해서 나에게 여쭈어보시더라고.. 그래서 내가 코드 짜서 대처했었는데..”


이 얘기를 들으면서, 새삼 우리가 그때와 비교해서 많이 성장했구나.. 를 느낄 수 있었다. 청출어람이라 했던가.. 입사 당시만 해도, CHAN 박사님으로부터 많이 혼났었던 거 같은데..

“한. 네 실력이라면, 보다 더 좋은 회사에 갈 수 있지 않아? 아무래도, 규모가 어느 정도 있는 회사에서 더 좋은 인프라를 접할 수 있고, 안목도 넓힐 수 있고 말이야.”


“대기업에서 만든 솔루션을 유지 보수하거나 관리하는 것보다, 자체 솔루션을 직접 설계하고 구축하는 게 난 더 좋아.”


우린, 낙성대 공원을 거쳐 정처 없이 걸었다.


한이 나에게 말했다.


“너 기억나? BIN 차장님 퇴사하신다는 소식 들었을 때, 우리 둘이 멘붕 와서 노량진에서 낙성대까지 걸었던 거?”


“그때 진짜 세상 무너지는 줄 알았는데.. 그때 한강 보며, 많은 얘기를 했었지..”


회사의 부조리. 그리고 그런 회사로부터 견뎌야 했던 모욕감과 굴욕. 참아내야 했던 분노와 설움. 그 힘든 시간 내내 우린 함께 서로를 각자의 방식대로 위로하며, 견뎌왔었다. 그러한 우리의 이야기들 중 하나였던, BIN 차장님의 퇴사. 그때 우린, 한강 야경을 같이 보며, 맹세했었다.

“노아, 우리 자유의 몸이 되면 여행하는 거다? 꼭!”


2020년, 20대의 끝자락인 29살. 사회의 때가 묻지 않았던, 아직 순수함이 남아있었던 시절. 우린 서로에게 맹세했었다. 당시 재직하고 있던 회사를 둘 다 퇴사해서 자유의 몸에 되면, 여행 가기로. 그러나, 내가 먼저 퇴사하게 되면서 미뤄졌고. 서로 바빠서 우리의 약속은 더 미뤄지게 되었으니.. '

지켜주고 싶었으나, 지킬 수 없었고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던, 동료의 고통. 한때 경쟁심과 열등감으로 얼룩졌던 시절. 그리고 비로소 받아들이며 서로를 존중하고 존경하게 된 때. 그 모든 순간들이 밀려오면서 이 밤이 너무 짧음을 느꼈다.


“아, 그때 우리 같이 먹었던 족발집, 없어졌네?”


한때 영원한 줄 알았던 우리의 흔적 하나하나씩 전등 꺼지듯이 사라지고 있음을 느껴간다. 그 모습을 보면서 조금이라도 느리게.. 천천히.. 안 꺼지고 하나라도 남아있기를.. 바라지만,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님을 느끼게 되는 순간임을..


한이 나를 보며 말했다.


“넌, 내 형제나 다름없어.. 알지?”


그래, 친구여.. 무슨 할말이 더 필요할까. 내가 많이 미숙했고, 창피했던 미생이었던 시절. 서로 미생이었기에 계산적인 마음 없이 오로지 순수한 마음으로 서로를 진심으로 대했던 사이였음을, 너와 내가 아는데. 30을 넘어가면서 순수한 마음으로 사람을 만나기가 불가능에 가까움을 느끼는 요즘, 이런 우정이 얼마나 소중하게 느껴지는지..


나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빨리 일정이나 잡어~”


“그래. 꼭 가는 거다~”


“그래, 꼭.. 반드시.. 우리 모두 자유의 몸이 되었을 때..”

언젠가는 갈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라며.. 우린 계속 걸었다.

지금 이순간 사당역에서.. 우리의 밤은 짧았고, 너와 나의 발걸음은 한없이 길었다..


그리고 또 다른 이별이 찾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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