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마음만으로도 피로를 느끼지 않게 만든다. 인간의 신체는 알다가도 모를 터. 새벽같이 일어나 기차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했다. 혼자서 밟고 있는 공항 라운지가 낯설다. 마음만큼이나 케리어가 가볍다.
수속을 마치고 곧바로 비행기는 높게 날았다. 기다리는 시간이 이토록 빠르게 지나갈 수 있다니. 난기류를 만나지 않길 바라며 몸을 실었다. 마음은 높게 떴다.
풍부한 상상력과 내적 호들갑이 더해지면 극적 긴장감을 만들기도 한다. 나는 얼마 전 비행기 추락 사고에 대한 뉴스를 봤다. 불타는 숲과 자욱한 연기와 잔해들.. 의지와 상관없이 생동감을 얻는 상상력은 때때로 사람을 쉽게 지치게 만든다. 비상시 행동 요령이 쓰인 가이드북을 펼쳐 놓고선 현대 문물이 얼마나 뛰어난 지에 대한 생각을 상상과 상상에 덧칠한다. 비상시 행동 요령에 관한 안내를 돕는 승무원의 손짓과 눈빛을 보니 이내 안심이 다가온다. 담백한 친절함이 마음에 스며든다.
흔들다리에서의 공포와 설렘은 한 끝 차이로 줄타기를 하듯이. 언제 졸았냐는 듯 착륙에 대한 안내를 받자 긴장은 설렘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땅은 바뀌어도 커피 맛은 익숙하게, 스타벅스에서의 고소한 한 잔은 다른 언어로 녹여낸친절한 목녹임이 된다.
4박 5일간 여행의 시작.
늘 만나던 동네에서 벗어나 낯선 땅에서 친구를 만났다. 그렇게 시작된 4박 5일의 여행은 분명 짧았다. 하지만 여행에서 얻은 기억의 농도는 5일의 시간보다 훨씬 깊고 진했다.
여행 첫날에는 여행 도중 3천 엔이 들어있는 교통 카드를 잃어버렸다. 지금껏 지갑이나 핸드폰을 잃어버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도 하고, 잃어버린다는 행위에 대한 강박 아닌 강박이 있었던지라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이 매우 컸다. 세상에. 여행 첫날부터 교통카드를 잃어버리다니. 금액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스스로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탓. 최선을 다해 교통 카드를 찾아보고 기억의 자취를 천천히 따라가도 보았지만 역시나 카드는 없었다. 여러 번 가방과 주머니를 탈탈 털어보고 나서야 현실을 수긍했다. 친구는 끝까지 침착하게 도와주었고, 나의 혼란에 차분함과 기다림을 흘려주었다. 첫날이니액땜을 했다고 웃으며 넘어갔지만 마음 한 켠에는 어색함이 지워지지 않았다. 자만했고 오만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사실, 사람이 살면서 귀중품을 잃어버리는 건 흔한 일이지 않는가. 하지만 그때의 나는 몰랐다.
실수는 기어코 이튿날, 나를 또 찾아왔다. 이번엔 승차권을 잃어버린 것. 전철을 나오기 위해선 승차권을 다시 반납했어야 했는데 반납할 승차권이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혹시 몰라 개찰구로 다시 가보았다. 역시 없다. 그래도 이번에는 1300원 꼴이다. 괜찮아, 재발급하면 되는 거지. 재발급을 하려던 찰나에 친구는 아냐, 그래도 역무원께 한 번 여쭤보자며 파파고를 꺼내어든다. 아노, 스미마셍.. 번역된 언어를 확인한 역무원은 무심하고 명확하게 목적지로 향하는 표를 건네주셨다. 나는 그제야 깨닫는다. 실수에서 중요한 것은 치환할 수 있는 액수가 아닌 치환할 수 없는 최선의 크기인 것을.
다가온 여행의 마지막 날. 세상에! 결국에 일을 저질렀다. 이번에는 탑승에 가장 중요한 항공권을 잃어버린 것이다. 분명 여권에 끼워서 트레이에 넣었건만. 트레이에서 나온 바구니에는 덩그러니 여권만 있다. 탑승까지의 시간이 30분 정도 남은 상황. 손바닥이 축축하다. 그러나 보안 검색대는 내 머릿속과 같이 너무나 혼잡한 상태였고 원활한 소통이 가능한 승무원이 계시는 쪽으로 가자는 생각이 들자, 몸이 재빠르게 탑승하는 곳으로 움직였다. 자초지종 상황을 설명하자 승무원은 능숙하게 해결 방안을 제시해 주셨다.
과신. 이 여행에서 배운 것 중 하나는 과신이 이렇게나 철저히 무너진다는 것.
그리고 친절의 기초에는 너그러움이 있다는 것이다.
여행의 실수에서 나는 끝까지 스스로에게 친절하지 못했다. 그러나 친구, 역무원, 승무원은 끝까지 친절하게 다가와 주셨다. 친절이란 건 나 또는 상대를 향한 너그러움을 바탕으로 두어야 실천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지속력 높은 단단한 친절은, 나에 대한 너그러움을 기반으로 자라난다는 것.
얼마 전 동생이 일하던 편의점에 갔었을 때 동생은 건조한 목소리로 일정하게 손님을 대했다. 그 모습에 대해 나는 조금 더 친절하는 게 어떻냐고 말했다. 동생은 말했다. 모두에게 그렇게 대하면, 너무 힘들다고. 동생은 2년 넘게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단골손님과 점장님의 칭찬을 꾸준히 받아온 엘리트 알바생이었다. 그는 모두에게 친절하지만 자신에게도 친절했다. 그 친절은 곧 자신과 상대에게 더 친절해질 수 있는 방법이었다.
나는 꾸준히, 상대방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허무를 안고 있다. 그런데 '좋은 사람'은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가? '좋은 사람'에 대한 기준은 개인이 가진 경험 속에서 종합적으로 만들어진다. 그 경험은 바로 주변으로부터 오는 것. 그래서 '좋은 사람'으로 향하는 안내선은, 내가 느낀 친절에 최선을 다해 감사를 표현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최선을 다해 감사를 표할 수 있을 때, 그대들처럼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