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15 설악산 공룡능선(소공원-공룡능선-천불동 계곡)
적어도 산에서는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다. 산을 준비하고 산을 타는 과정은 즐거움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등산은 취미니까. 잘할 필요도, 타인에게 인정받을 필요도 없으니까.
하지만 산이 좋아질수록 쉽지 않다. 5km를 타면 다음은 10km를, 20km를 타보고 싶다. 해발 200m를 오르면 다음은 500m, 1500m를 올라보고 싶다. 내 욕심에 더 길고 더 험준한 코스를 택하고 나면 그제야 걱정이 밀려온다. 공룡능선도 마찬가지였다. 내 체력이 버텨줄까, 남한테 폐 끼치지 않을까, 다치지 않을까. 걱정을 한 아름 안고 새벽 2시, 결국 난 설악산 소공원에 도착했다.
비선대까지 약 50분 걷고 나니 본격적으로 가파른 오르막길이었다. 마등령 삼거리까지 3.4km 구간은 평지가 거의 없었다. 해가 떠 있지 않아서, 이 길이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마등령 삼거리를 지나 공룡능선에 진입하니 오히려 편했다. 소문대로 내리막길과 오르막길의 도돌이표이긴 했지만, 뾰족뾰족한 봉우리와 능선을 빼곡히 매운 단풍나무에 넋을 놓고 걷다 보면 봉우리들을 지나있었다. 로프 구간은 자칫 바위만 계속 돼 지루할 수 있는 길에 변주를 줘 재밌었다. 약 20km, 15시간을 걸어 다시 어두워진 소공원에 도착했을 땐, 비록 발바닥이 타오르는 것 같았지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우영우가 처음 스스로 회전문을 통과하고 외쳤던 ‘이 감정은 뿌듯함입니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산은 타봐야 안다. ‘나는 겁이 많으니까, 근력이 부족하니까, 야간 산행에 약하니까’라고 스스로 단정 짓고, 늘어날 걱정을 불편해하며, 아무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이 코스가 정말 불가능할지 아니면 탈 만할지 알 수 없다. 흙길과 암릉을 모두 걸어봐야 어느 길이 편한지 알 수 있고, 거리를 늘리고 고도를 높여봐야 한계를 인지할 수 있다. 나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다양한 산을 접할수록 산에 대한 나의 취향도 뚜렷해진다.
‘나를 알고 싶다’고 하면서도 정작 현실에서는 익숙한 환경을 찾고, 익숙한 경험만 반복하려 했다. 익숙한 틀 안에서 맴도는 나를 나의 전부라 여겼다. 하지만 산에서처럼 내가 모르는 나는 여전히 많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나를 알아가려면 직접 부딪쳐야 한다. 그것이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경험일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