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31 광치기 해변
제주에서 2022년 마지막 일출을 봤다. 남들에게 제주는 이국적인 관광지이자 휴식처이지만 내게는 ‘하나뿐인 딸’이라는 말을 달고 사는 어머니와 이젠 내가 기대기보다 내게 기댈 날이 많이 남은 아버지가 사는 곳이다.
청소년기에는 하나뿐인 딸로 사는 삶이 쉬웠다. 아니, 안락했다.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두 분은 내가 원하는 환경을 만들어줬다. 무언가를 치열하게 고민할 필요도, 갈구할 필요도 없었다. 공부만 하면 됐다. 다행히도 난 공부가 싫지 않았고, 뛰어나진 않아도 게을리하진 않았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내게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혼란스러웠다. 하나뿐인 딸인 내가 택해야 할 답안지는 보이는데 그 답안지가 내키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답안지가 있어도 망설여졌다. 부모님의 말씀이 맞는 게 아닐까, 진짜 내가 원하는 게 맞을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시간이었다.
그때부터 제주가 불편했다. 나이 들어가는 부모님을 볼 때면 하나뿐인 딸 역할에 충실하고 싶었다. 나의 시간은 접어두고 ‘부모님이 좋다니 좋은 거다’라고 스스로 합리화하며. 그렇게 딸 역할만 하다 서울로 돌아오면 왠지 모를 답답함이 마음을 짓눌렀다.
‘나’를 고민할수록 나는 하나뿐인 딸에서 멀어졌다. 멀어진 거리만큼이나 제주에서 할 이야기도 없어졌다. 그렇게 꽤 오랫동안 내 안에서 부모를, 어쩌면 두 분에게도 딸인 나를 지우는 시간들을 보냈던 거 같다.
상실의 시간 끝에 얻은 게 무엇이냐고, 그래서 이제 나답게 살고 있냐고 묻는다면, 사실 잘 모르겠다. 하나뿐인 딸과 나는 대립할 수밖에 없는 건지, 둘 사이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을지 여전히 난해하다. 서로에게 실망하고 서로를 잃을 날들이 더 많이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하나 깨달은 건 하나뿐인 딸보다 ‘나’로 사는 건 어렵고, 외롭지만, 그만큼 가치 있고, 보람된 일이라는 거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오랜만에 제주가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