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05 덕유산
날이 차다.
“추워서 산 못 타겠네?” 친구들이 묻는다.
“추워졌으니 타야지” 난 반대로 대답한다.
겨울은 내가 손꼽아 기다린 계절이다. 설산은 봄·여름·가을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을 자아낸다. 세상에 모든 눈을 모아 한데 빚어놓은 것 마냥 땅도, 나무도, 바위도 온통 눈으로 뒤덮인다.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소리도 실컷 들을 수 있다. 눈을 보고, 눈 속을 걷고, 찬바람을 맞으며, 시각으로, 청각으로, 촉각으로 겨울을 체감할 수 있다.
산에서의 겨울은 길다. 고도에 따라 달라 일반화하기 어렵지만 해발 1947m의 한라산은 11월부터 상고대를 볼 수 있다. 산을 오르며 늦가을에서 한겨울로 시간 여행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셈이다.
올해는 지난해에 이어 덕유산에서 상고대를 봤다. 작년에는 구천동탐방지원센터, 올해는 안성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했다. 구천동에서 올라가면 계곡을 따라 완만한 길을 걷다 주봉우리인 향적봉에 가까워지면서 가파르고 좁은 길이 이어진다. 양 옆으로 순백의 나무들이 빼곡하고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이 수북하다. 작년 산행에서는 전날 쌓인 눈에 더해 오르는 내내 함박눈이 내려줘 ‘겨울 왕국’에 온 것만 같았다.
안성탐방지원센터에서 시작하면 동업령까지 힘들지만 이후 중봉부터 향적봉까지 완만한 능선길이다. 올해는 눈은 오지 않았으나 날이 맑아 눈 덮인 봉우리와 능선을 실컷 봤다. 우측으로는 겹겹의 능선이, 좌측으로는 넓은 평야가 펼쳐졌다. 매섭게 몰아치는 칼바람 탓에 양 볼에 아린 와중에도 보고도 믿기지 않는 ‘비현실적인 절경’에 자꾸만 발길이 붙잡혔다.
산을 타며 ‘세상의 극히 일부만 보고 살았구나’라고 느낄 때가 있다. 설산에 오면 특히 그렇다. 서울은 눈이 많이 와도 며칠 후면 눈의 흔적을 찾기 힘들다. ‘한국은 눈이 참 안 온다’ 생각했는데 산에 오면 ‘이렇게 눈이 많이 왔었나’ 싶다.
제설 작업으로 깨끗해진 도로는 걷기 편하지만, 어쩐지 난 눈이 쌓이고 쌓여 어디가 길인지 분간이 안 가는 울퉁불퉁한 산길이 더 마음에 든다. 눈이 오면 오는 대로, 바람에 날리면 날리는 대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는 건 ‘설산’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