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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느린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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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길온 Gilon Dec 10. 2022

No pain, No gain.

2022.12.1

큰 훈련이 끝나고 오랜만에 휴가를 다녀왔다. 휴가 중에 정신적 고향과도 같은 꿈교를 방문했다. 꿈교는 지금껏 살아온 내 인생의 1/3 정도 되는 7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낸 곳이자 지금의 김길온이 있기까지 많은 영향들을 받은 기억에 남는 장소다. 항상 존경하고 내가 균형 잡힌 시야를 가지게 도와주시는 선생님과 맛있는 저녁식사를 했다. 오랜 제자가 군대 휴가 중에 오랜만에 온다고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사다 놓으셨다. 사실 고기보다 선생님의 된장찌개가 메인 요리이다. 한번 맛본 사람은 반박할 여지도 없는 진리에 가까운 된찌이다.


군대 보낸 아들이 집에 휴가 오기를 기다리는 부모님처럼 선생님과 남편분은 환한 미소로 나를 맞이 해주셨다.

살갗이 따가울 정도로 강한 햇빛, 숨 막히듯 높은 온도와 습도, 그리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황량한 사막 같은 내 인생 가운데 이 선생님은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오아시스와도 같은 존재다. 진작에 자책하고 포기할 순간에는 다정한 엄마의 모습으로 곁에서 용기와 자신감을 불러일으켜주신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한창 해외대학 입시 준비로 인해 분주하던 때에 끼니도 거르며 제자들의 에세이 코칭을 해주시는 선생님의 옆모습을 본 적이 있다. 고3 때 내가 본 선생님은 자신의 건강상태에는 어리석을 정도로 무지했지만 제자들의 일에는 최선을 다하는 일반 담임 선생님 그 이상을 넘어서 마치 멘토와도 같은 분 이셨다.


가끔씩 보면 무리하시는 선생님이 걱정되기도 했고, 이렇게 일을 많이 시키는 학교를 원망하기도 했고, 그리고 보답할 수 없을 만큼 큰 도움을 받으면서 딱히 도와드리는 게 없는 내 모습을 보면서 한심하기도 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감사의 표현을 하는 것뿐. 받은 것이 너무 많기에 돌려주고 싶은 마음도 그만큼 커지게 된 것 같다. 다른 친구들이 선생님한테 받은 도움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명품백부터 승용차 그리고 보석 등 다양한 걸 사주기로 장난반 진담 반으로 약속했다.


뭔가 친구들의 대단한 약속을 들으면서 나는 불편했다. 내가 하는 감사의 표시와 진심이 장난으로 바뀔 것 같은 느낌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집을 사주겠다고 애들 앞에서 큰소리를 쳐버렸다. 나도 모르게 이성적 사고를 거치지 않고 입에서 바로 나왔다. 3초 뒤 현실로 돌아와서 내가 왜 그런 발언을 했는지 이해가 안됐다. 집이라는 게 단순히 장난감 사듯이 사는 것도 아니고 괜찮은 집을 전세가 아닌 매매로 하려면 굉장히 많은 돈, 즉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처음에는 한 30프로 후회했다. 뱉은 말도 못 지키는 말만 번지르한 제자가 되기는 죽어도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생님은 내가 뱉은 말을 지킬 수밖에 없게 만나는 모든 사람들한테 나의 약속을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다니셨다. 지금도 가끔씩 그러시는 것 같다. 근데 요즘에는 집 사주겠다는 내 발언이 무거운 짐이 아닌 새로운 큰 목표로 다가오는 것 같다. 오히려 꺼지지 않는 동기부여의 불꽃이 된 느낌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나는 뱉은 말의 무게를 예전부터 가볍게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어떤 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는지 아니면 선천적으로 싫어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인생에서 싫어하는 사람들의 유형중 대표적인 특징이 바로 자신이 뱉은 말을 지키지 못하고, 행동과 실천보다는 겉모습과 치장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책임의 범위와 무게가 더 확장되고 무거워지는 일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성인으로서 법의 규제를 받는 공식적인 나이는 20세부터이다. 하지만, 20세가 넘었다고 다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순식간에 변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렇다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연적으로 시간이 해결해주는 과제가 아닌 개인의 노력과 경험으로 쌓인 데이터를 통해 직접 풀어야 되는 과제라고 말할 수 있다. 대학교 과제에서 팀플 과제를 하면 항상 무임승차하는 빌런들이 존재한다. 빌런이 좋은 팀원을 만나서 과제점수를 같은 평가항목 안에서 받을 수는 있겠지만, 그 발표과제에 대한 지식을 타인한테 설명할 정도의 능력이 되지는 않는다. 이유는 스스로 공부를 안 했기 때문이다.


No pain, No gain. 고통 없이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 가끔씩 모든 사람이 고통 없이 자신이 원하는 목표들을 이룰 수 있는 세상이 있다면 어떨까 하는 망상을 하곤 했다. 과연 고통 없이 얻는 보상은 달콤할까.

초등학생 때 공을 똑바로 차지도 못했던 내가 몇 년간의 수많은 경기와 노력을 통해 이제는 풋살이 익숙해지고 재밌는 스포츠 중 하나로 다가오는 것처럼, 온전한 기쁨은 보상을 얻을 때의 그 짜릿한 기분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어려운 과정을 견디고 견디면서 보상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그 과정에서의 재미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오히려 미래의 재미가 더 커지고 더 그릇이 넓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도 다시 깨달으면서 일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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