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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중철학자 유성범 May 22. 2024

1장 맨발로 걷는 남자 (3)

신발이 벗겨져 버렸다 / 매일 단단하게 걸어가보기

신발이 벗겨져 버렸다


“저, 이제 가봐야 해요.” 나는 그의 앞에 멈춰서서 꾸벅 인사하고, 바로 지하철역으로 달려갔다. 원래 타려던 역에서 한 정거장 더 걸어서 도착한 곳이다. 저 거지가 대단한 영화 평론가인건 알겠지만, 사정이 딱하다고 다 도울순 없는 노릇이다. 선의는 여기까지다.


“가야하는가” 맨발의 거지는 마치 놀이터에서 놀던 어린아이와 헤어지듯 나를 바라봤다. 

“네 아저씨. 그럼 몸 조심하세요” 


나는 천천히 달음질치며 역 계단을 내려갔다. 탁탁탁, 지하로 내려갈수록 느껴지는 서늘한 공기가 현실로 돌아왔음을 일깨워줬다. 띡. 기후동행카드를 급하게 찍고 5호선 동대문 방향으로 내려간다. 지하철은 이미 도착해 있었고, 나는 열차 안으로 황급히 들어왔다. 문이 닫혔다. 거지와의 산책, 집으로의 발걸음. 모든것이 삽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기분이 멍해졌다.


이잉- 열차는 터널을 전진했고, 역과 역사이로 점차 멀어졌다.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멀뚱히 보는 사람들, 벽에 다리를 꼬고 기댄 직장인부터 등산복과 정장을 절묘하게 입은 할아버지까지, 주변의 모든것이 일상으로의 복귀를 알렸다. 창가의 빛과 어둠이 교차로 지나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습관적으로 인스타그램을 켜고 사람들의 피드를 눌렀다. 피드에는 새로 산 신발을 자랑하는 친구의 스토리가 올라왔다.


‘내일은 다른 카페에 가야지’


하지만 내일은 주말이었다. 비록 백수이지만 주말만 되면 나는 쉰다. 다만 쉬면서도 죄책감을 안 느낄수 있는 유일한 공간은 서점이기 때문에, 날이 밝자 엄마가 차려준 아침을 대강 먹고 서점으로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책으로 빼곡히 둘러쌓인 이곳에 들어와 갓 인쇄된 종이냄새만 맡다보면 벌써 유식해진 기분이든다. 그리고 자격증 코너를 돌면서 세상은 넓고 자격증은 많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 책이나 집어들고 창가에 앉아 대충 펼쳐든다.


결국 쉬워보이는 자기계발서를 읽다가 하루가 지났다. 잠깐 기지개를 피러 밖에 나가본다. 이제 뭐하지. 하루를 열심히 보낸 것 같지만 딱히 생각에 남는 것은 없었다. 


나는 내 두발을 바라봤다. 매장에서 반값으로 세일할 때 건진 흰색 운동화. 얼룩덜룩 때가 묻어 볼품없다. 시계를 본다. 오후 4시, 평소보다 1시간 일찍 나왔다. 시간이 있으니 일단 걸어볼까.


걷다보니 서점에서 꽤나 멀리 떨어졌다. 오늘따라 왠지 더 걷고 싶었다. 더 걷고 싶은 마음은 걸어서 집까지 가야겠다는 결심으로 바뀌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걷다보니 취준에 대한 조급함도 한풀 꺾이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날 도울 수 있는 길은 산책뿐일세’


그래. 산책이 조금 도움되는구나. 나는 아저씨의 말을 떠올렸다. 


서점을 나와 대로변을 걸어본다. 익숙한 거리, 이 먼길을 걸어서 집으로 가보기엔 처음이다. 새로운 기분으로 걷다보니 금새 절반을 지나왔다. 질러가다 보니 난생 처음 본 골목거리에 도착했다. 


‘버스만 타고 다니느라 몰랐는데, 가까운 거리였네…’


서점에서 집까지는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였다. 취준도 같을까. 무엇하나 내 것으로 만든 것 없지만, 준비 해보니 얼마나 걸리는지 만큼은 가늠해 볼 수 있다. 실제로 해보기 전에는 얼마나 걸리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다 헌신짝 될 수 있어.’ 


순간, 나는 발을 헛디뎠고, 하필이면 내리막이었다. 팔이 반사적으로 올라갔지만 땅이 나를 치는 속도가 더 빨랐다. 철퍼덕. 머리를 감싸안은체 길을 데굴데굴 굴렀다. 이렇게 죽는구나. 옷은 찢어지고 손바닥은 까졌다. 얼마나 굴렀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바닥에 누운체 하늘을 보고있었다. 두손을 들어보니 검게 더러워진 상처 사이로 새빨간 핏방울들이 새어나왔다. 에이씨. 하나도 제대로 되는게 없다. 고통이 지나갈때까지 기다렸다가, 몸을 천천히 일으켜본다. 양말사이로 느껴지는 아스팔트의 감촉.


이런, 신발이없다. 


생각을 되돌려보니 풀려버린 신발끈을 밟고 미끄러졌었다. 어디있지. 절뚝이는 다리로 주변을 돌아봐도 신발이 없다. 세상이 날 억까하는게 틀림없다. 종아리가 욱신거려왔다. 아마 구르면서 연석에 부딪혀 신발이 벗겨진 것 같다. 근처 수풀을 뒤져보아도 신발이 나오지 않았다. 아직 몸이 너무 아팠다. 먼저 병원부터 가야겠다.


산책이 날 돕기는 개뿔, 넘어져서 거지 같은 신세가 되었다. 나는 피가 흐르는 손바닥을 주먹쥐어 감춘 체 평상시처럼 길을 걸었다. 아픈것 보다 부끄러웠다. 행인들의 시선이 혹여나 발로 갈까 노심초사하며 걷는다. 주변에 둘러봐도 신발을 파는 곳은 보이지 않았다. 


‘신발이냐 병원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나는 지도상 가까이 있는 두 곳을 두고 고민했다.

‘택시를 탈까? 돈이 아까운데…’


길을 걷다보니 사람들이 안쓰러운 눈빛을 보내왔다. 나는 걷다가 결국 버스정류장에 털썩 앉았다. 멍하니 도로를 쳐다봤다. 또 아저씨의 말을 떠올리고 말았다. 


‘신발을 위해 걸을텐가, 삶을 위해 걸을텐가’


신발보다 귀해 보이는 삶을 위해 살고 싶다.


매일 단단하게 걸어가보기


“에잉! 쯧쯧. 자네도 영 정상은 아니구려.” 거지가 마치 비웃듯 말했다.


“그래도 병원 갈 돈은 있었습니다만.”


흰 거즈를 얼굴과 손등에 덕지덕지 붙인 나에게 거지가 한 말이다. 카페 공부를 마치고 집가는 길에 그가 멀리서 손을 흔들더니(어이!) 쫓아오셨다.


“아저씨도 고집 그만 피우시고 병원에 가보세요. 병원을 갈수 있는게 얼마나 큰 축복인데요.”

“자네는 병원에 갈 수 있는게 축복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런, 또 질문 공격 시작이다.


그는 이어 말했다.

“병원이 있기전에 병원에 안가는게 낫다고 생각해본적은 없는가?

“그러면 너무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하죠.”

“자네 인도에서 겐지스 강물을 먹었는데도 아무런 문제 없던 기안84를 본적 있지?”

“어떻게 아저씨가 기안84를…?”

“그 사람은 인도 사람도 혀를 내두를 비위와 면역력을 갖췄지. 우하하하! 그런 사람만 한국에 가득차면 우리나라의 병원 서비스는 지금 만큼 좋지는 않았을거야.”

“재밌는 말씀이시네요.”


“우리나라는 성질이 급한 나라야. 성질이 급해서 3천원만 있으면 예약도 없이 진료를 한 시간안에 받을 수 있지. 성질이 급하니까 버스 문도 재빨리 닫아버리고, 그래서 문에 손가락이 끼어 병원에 가는 것이 아닌가. 전쟁 이후의 성장통은 삶보다 속도를 추구하게 만들었다네. 속도보단 방향이라는 격언을 자네도 들어본적이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한국은 급하게 성장하는 속도를 제어하지 못한 나머지, 서로에게 속도를 강요하고,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은 뒷목 잡고 픽픽 쓰러지는 것이지. 이미 DNA에 속도가 각인되어 모든 것이 빠른 나라가 된 것이 아닌가. 속도만큼 편리해진 나라가 된 것이 아닌가.”


“이유가 있기야 하겠죠. 하지만 편리하면 좋은 것 아닌가요?”

“예끼 이사람아. 편리한것이 진정 행복한 것인가? 우리가 걷는 이유도, 속도 조절을 통해 그 편리함을 의도적으로 버리는 연습을 하고 있는 거란 말일세. 편리함을 위해 본디 느려도 행복한 삶을 놓치고 있지는 않느냐는 뜻이라네.”

“그럼 산책하면 제 취업도 해결되나요?”

“지금의 의료 서비스는 지난 1977년 의료보험 도입 이후로 민간 병원들이 경쟁을 시작하면서 잉태되었다네. 그러면 이러한 경쟁이 나쁘다고 할 수 있는가?”

“갑자기 왜…?”

“자네가 먼저 뜬금없지 않았나? 일단 내 말을 들어보시게. 경쟁을 나쁘게만은 보지 않은 사람이 있어.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는 이윤만 추구하는 인간이 오히려 경쟁 시스템이 국가의 부를 증진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네. 물론 그 양반도 부르주아들이 영국을 부를 이룰 수 있었던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고안해 낸 말이긴 하지만…한국은 정책에 의해 의료가 좌우지 되고 있어 이와는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네. 어려운 말 해서 미안하군. 취업을 앞둔 자네에게 질문을 쉽게 바꿔보지. 병원이 사람을 고치려고 있는 곳인가, 돈을 벌고자 있는 곳인가?”

“둘 다인 것 같은데요?”

“맞아. 한쪽만 진정한 정답은 아닐세. 취업도 마찬가지로 숭고한 정신으로만 무언갈 하겠다는 생각은 요즘 시대엔 섹시하지 못하다네. 그럼에도, 돈만을 벌겠다고 취업을 하겠다는 것도 그다지 좋은 생각은 아니야.”

“그러면 어떻게 해야하는데요?”

“먼저 숲을 보는 연습을 해보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일해야하는 이유까지 정리하며 말일세.”


나는 어느새 거지와 또 지하철 한 정거장을 걸었다. 손등에 붙인 흰 거즈를 바라봤다. 굳은살 박힌 아저씨의 맨발로부터 오는 쪽팔림이 많이 줄어들었다. 다시 나의 손을 번갈아 본다. 따스한 석양을 머금은 그의 거친 발은 수많은 생채기 속 단단함을 가지고 있었다. 고작 매일 걸었을 뿐일텐데 말이다. 그에 비해 나의 손은 부드럽기 그지없다. 나는 언제쯤 단단해질수 있을까. 상처가 아물면, 아령을 조금 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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