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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중철학자 유성범 May 15. 2024

1장 맨발로 걷는 남자 (2)

신발을 선물하다 / 신발은 걷기에 방해될 뿐

신발을 선물하다


“그래, 어제 질문은 생각해봤고?”


거지는 나를 불러세웠다. 늦깎이 오후, 석양이 빌딩숲 너머 고즈넉한 따스함으로 살갖에 닿는다. 봄 바람이에 나무가 그을린 냄새가 섞여 코를 간질이고 있다. 보도블럭을 터벅터벅 걸어다니는 그 많은 사람 가운데, 벤치에 앉은 저 거지가 날 불러세우는 바람에 주변의 공기가 송두리째 바뀌었다.  모든게 적막해진 것 같다. 그는 내가 그냥 지나치지 않을 것을 알아챈 것 같다.


“신발 가져왔어요. 저기 헌옷수거함에 있던 겁니다.”


나는 거지에게 걸어가, 어제 빵을 주었던 것처럼, 신발을 건네주었다. 그에게 은은한 미소가 번졌다. 


“나는 신발이 필요없다네” 

정신나간 영감이 또 이상한 소리를 하려고 한다.

“하지만 맨발로 다니면 다쳐요. 자, 얼추 맞을겁니다.”


툭. 나는 무심한 듯 그의 발 앞에 신발을 가지런히 놓았다. 나는 이어서 말했다.

“어르신의 말씀은 이해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신발을 신는 시대에서 살아가고 있잖아요?”

“좋은 질문이라네.”

그는 신발을 어기적 어기적 발에 끼우며 말했다. 은색 운동화가 그의 스타일과 전혀 맞지 않아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연출됐다. 


“그러면, 오늘은 내가 신발을 신었으니, 내일은 자네가 신발을 벗어줄수 있겠나?”

“예?”

“내가 자네의 말뜻대로 ‘신발을 신는 사회의 맥락’을 따랐으니, 내일은 ‘나의 맥락’을 따라줄 수 있냐고 묻는걸세.”

“안 할거예요”

“나는 하고 있잖나.”

“아저씨는 거지잖아요”

“자네는 그런 거지랑 대화하고 있잖은가.”

“그게 어땠다는 거죠?”

“이미 자네는 나와 접점을 만들어 자네의 맥락을 확장한게 아닌가?”

“웃기시네. 이제 이걸로 끝이에요.”


나는 고개를 숙이고 뒤돌아 섰다.


“콜록, 콜록!”

거지는 갑작스레 기침을 해댔다. 짧은 찰나이지만 폐가 쪼그라지는 쇳소리가 섞였다.


“얼마 남지 않았어. 가자고.”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은색 신발을 신고 터덜터덜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잠시, 그는 또다시 기침을 했다. 팔꿈치 안쪽을 입에 갖다대고, 마치 문명인 처럼 기침을 하는게 아닌가. 어. 쓰러진다.


“어어!”

나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를 사이로 지나가는 사람들 뿐이었다. 아무도 그에게 관심이 없었다. 신발들이 또각또각 울렸다. 수많은 신발들이 그를 지나쳐갔다. 타타탁, 어느새 나는 그를 부축해 일으켰다. 몸을 돌려 얼굴을 살펴보았다. 눈을 게슴츠레 뜬 그의 입가에는 가래침과 피가 섞여 묻어있었다. 


“물, 물…” 


나는 그를 벤치까지 부축하고, 근처에 있던 편의점에 달려가 물 한통을 아무거나 집고는, 그에게 달려갔다. 


“허억, 허억…”

“여기 물이요”


나는 황급한 손으로 물을 따서 그의 입술에 갖다 주었다. 그는 받는둥 마는둥 물통을 잡더니, 입가를 축이고, 나무에 등을 댄 체로 숨을 골랐다.


“산책해야해…”

“안돼요. 아저씨, 혹시…폐렴이세요?”

“…폐암”

그는 말을 끝맺기 무섭게 몸을 일으켰다. 어느정도 초점을 맞춘 눈빛이다. 그는 입가에 있는 물을 대충 닦더니, 나를 보고 말했다.

“자네, 나와 좀 걸읍시다.”

“싫어요! 아저씬 병원가셔야해요.”

“난 걸을거야.”

그는 발을 내딛었다. 신발 밑창이 바닥에 쓸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그는 심호흡을 하더니, 앞을 향해 걸었다.


그를 병원에 데려다줘야 해. 


“아저씨, 병원에 같이 가요. 제가 부축해 드릴게요.”

그는 나의 손을 정중히 사양하며 말했다.

“놔두시게. 이미 불치야. 지금 날 도울수 있는 길은 산책이라네.”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의 보폭에 맞춰 걸었다. 그는 불편한 걸음걸이로 바닥을 질질 끌며 걸을 뿐이다.


“신발, 불편하시면 벗어도 돼요”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렇군.” 


그는 선채로 신발을 한쪽씩 벗었다. 그리고 그 은색 신발을 다시 길가의 헌옷 수거함옆에 가지런히 되돌려놓았다. 그는 맨발을 바닥에 디뎠다. 그리고 발바닥으로 몇차례 바닥을 비비더니, 갑자기 큰소리로 웃었다.


“우하하하하!”


그의 흰 수염이 태양에 붉게 물들었다. 바람에 실려온 풀내음이 유난히 짙다. 그는 분명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자네, 나와 좀 걸어주겠나?” 내 안에서는 ‘이 거지에 대해 더 알고 싶다’라는 호기심과 ‘이 거지와는 더는 엮이고 싶지 않다’는 짜증섞인 감정이 엇갈리기 시작했다.



신발은 걷기에 방해될 뿐


뒤뚱뒤뚱, 그는 좌우로 리듬을 타듯 가벼운 걸음걸이로 길을 걸어갔다. 그의 발이 길가의 먼지를 휩쓴다. 바닥을 향한 눈은 상념에 잠긴듯 하다. 나는 이 누더기를 뒤집어쓴 맨발의 거지를 따라 걷고있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들에게 나와 그는 투명인간으로 싸잡아졌다. 여긴 어디인가. 나는 누구.


청년: 맨발로 걸어다니면 안 아파요?

거지: 인류는 원래 맨발로 걸어왔어.

“지나가다가 유리 박히면 어떡해요”

“내일은 자네의 차례야”

“내일 제가 안온다면요?”

그는 답하지 않았다. 우리는 공사판을 지나고, 빌딩들이 우뚝 솟아있는 대로변으로 걸었다.

“신발은 걷기에 방해될 뿐이야”

“저번부터 맥락이라느니, 사회적 시선이라느니라는 말은 어떤 뜻에서 말하신거죠?”

그는 시선을 여전히 아래로 향한채, 말을 이어갔다.

“안 알려줘.”

“…지금 저랑 병원가고 싶으세요?”

“자네는 신발을 왜 신는가?” 아랑곳 하지 않고 그는 내게 물어왔다.

“발을 보호하기 위해서죠?”

“발을 보호하기 위해서 뿐인가?”

“아니죠. 아저씨가 말하신 사회적 시선과 맥락이 중요하니까요.”

“아저씨라고 할텐가?”

“네”

“좋아. 말귀를 잘 알아듣는군”

“네?”

“자네, <쇼생크 탈출>을 본적이 있나?”

“그럼요. 제 인생영화중 하나예요.”

“후반부에 주인공이 교도소장의 구두를 아무도 모르게 신고 걸어가는 장면이 나오지? 그는 죄수의 신을 교도소장의 신발장에 넣었지. 그래서 그는 사회 바깥에서 멀쩡한 구두를 신을 수 있었어. 이처럼 신발은 발을 ‘보호’할 뿐만아닌, ‘지위’를 보호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영화 좀 보셨네요”

“지구상에 있는 신발을 신지 못하는, 혹은 신발을 신지 않는 민족들을 떠올려 보시게. 누가 떠오르는가?”

“음…아프리카 사람? 인디언들?”

“맞아. <쇼생크 탈출>의 앤드류는 교도소 죄수의 신발을 바꿈으로서 사회에서의 신분을 보장받을수 있었다네. 하지만 그 민족들은 어떤가, 사회에서 지위를 인정받고 있는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지위가 필요한가?”

“필요한 사람도 있겠지요.” 

“그럴수도 있겠지. 자네는 ‘지위’를 원하는가, ‘보호’를 원하는가?”

“예?”

“자네는 ‘신발’을 위해 살고 있지는 않는가 말일세.”

“이해가 안됩니다.”

“신발이 있어야만 안전이 보장되는 것은 맞다네. 하지만 어느새, 사람들은 신발을 통해야만 자신을 사회의 시선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버렸어. 신발 한 짝을 위해 사는 삶이 되고 있단 말일세.” 

“자본주의의 폐해를 말하는 건가요?”

“사람의 시선을 이겨낸다면, 신발은 걷기에 방해될 수도 있음을 알게된다네.”

“걷기에 방해…?”

“실제로 걷는것과, 신발의 유무는 별개아닌가? 그래서 난 신발을 벗었어.”

“하지만 현실은 거지잖아요.” 나는 그의 무례함을 흉내냈다.

“신발을 위해 살다가 헌신짝이 되는 수가 있다네.” 그는 주먹을 꽉 쥐고 눈을 사납게 내게 떠 보였다. 그의 툭 튀어나온 눈동자가 마치 볼이 빵빵하게 화난 개구리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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