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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중철학자 유성범 May 14. 2024

1장. 맨발로 걷는 남자

길가의 거지 / 맨발로 걷는 남자

길가의 거지


툭. 나는 늘 앉던 자리에 노트북을 놓았다. 힘이 조금 들어갔는지 옆의 여자가 신경질적인 눈빛을 던져왔다. 나는 괜시리 안경을 매만지며, 쓴맛이 얼음물에 희석된 아메리카노를 종이빨대로 쭈욱 들이킨다. 안 그래도 잘 작동하지 않는 뇌가 더 차가워진다.  


이어폰을 꼽고 영상에 나오는 친절한 목소리를 따라 공책에 무언갈 휘갈긴다. 툭, 샤프심이 부러졌다. 시간을 보자. 20분이나 지났네. 잠시 스페이스바를 누르고 머리를 긁적인다. 


시간이 흘러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눈이 침침하고 온 몸이 뻐근하다. 노트북을 닫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정도면 열심히 공부했다. 비록 순 공부 시간은 1시간 밖에 안되는 것 같지만 말이다. 


지하철로 걸어가는 동안, 길가 벤치에 앉아 졸고 있는 '거지'가 보였다. 아직 오후 5시 밖에 안됐는데, 어떻게 저 사람도 매번 저 자리에서 같은 자세로 잠을 잘까? 저렇게 자면 목 안아프나?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나는 매일 스타벅스로 출근해 자격증 공부를 하는동안, 2층 통유리창 바깥으로 거지의 행동을 관찰했다. 벤치에 죽은듯이 앉아있다가도, 서성이며 비둘기에게 빵 부스러기를 나눠주곤 한다. 나는 그와 행인들을 번갈아본다. 길거리에 나앉는 자존감도 없을까? 됐다, 내 팔자나 걱정하고 공부나 하자.


그날도 집에 가는 길이었다. 행색이 남루한 거지는 오늘도 나무 그늘 벤치에 대충 앉아서, 그에게 다가오는 비둘기에게 빵 봉지에서 부스러기들 털어냈다. 비둘기 먹이 주는건 이제 불법이 될 예정이다. 곁에 있던 경찰도 그를 무심히 지나간다. 하지만 그를 지나치지 않은 사람이 있었으니…


“형제님! 혹시 배고프진 않으세요?”

 한 여자가 대뜸 그에게 나타나 묻는것이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특유의 맑은 눈으로 거지 앞에 서서 그의 답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당찬 여자다. 그 둘의 대화를 엿듣고 싶어졌다.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꺼내 보는척 했다.


거지는 덥수룩한 앞머리 사이로 그녀를 보고는, 서서히 입을 열었다.

“저는 당신 같은 누이를 둔 적이 없는데요.” 

“예수님은 형제님을 사랑하세요. 자, 이거 받으세요.” 그녀는 작은 빵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건 선결문제의 오류예요. 먼저 예수님의 존재부터 증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녀는 떨떠름한 웃음을 지으며 빵을 그의 앞에 두곤 도망치듯이 사라졌다.


나는 눈썹을 치켜 올리며 그를 의외의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는 빵을 뜯더니, 또 비둘기들에게 던져주었다. 사극톤을 쓰는 거지라. 발걸음을 지하철로 옮기며 생각한다. ‘그런데 선결문제의 오류가 뭐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맨발로 걷는 남자


그날따라 공부가 너무 하기 싫었다.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라느니, 한강에서 끊임없이 낚여도 기억 못하는 붕어처럼, 대한민국 경제가 죽었다 깨어난 뒤라야 나는 이 책을 다 이해하지 않을까. 안경을 벗고 침침한 눈을 비비다가 창밖의 거지와 마주쳤다. 거지는 어딘가에서 나타나 또 벤치에 앉는다. 사극톤만큼 어울리는 거적때기가 바닥에 질질 끌린다. 나는 잠시 먹다 남은 카스텔라를 번갈아 본다. 저 사람은 카스텔라 안 먹은지 얼마나 되었으려나. 


구구, 구구. 

비둘기에게 주던 빵이 다 떨어졌다. 그저께 자신이 누이라고 주장하는 여자에게 받은 빵이다. 그는 빵 봉지를 털어서 남은 부스러기마저도 비둘기에게 흩뿌렸다. 비둘기들은 그에게 조금 더 구걸하는 눈빛을 보낸다. 그는 봉지를 주머니에 구겨 넣고, 비둘기를 향해 항복하듯 두손을 올려 빈 손을 보여준다.


“자, 여기요.”

나는 낮은 목소리로 그에게 새로 포장된 카스텔라를 건넸다. 그의 눈이 나와 마주쳤다.

떡진 머리 사이로 탈모가 진행된 이마, 두꺼비 처럼 튀어나온 눈, 돼지코에 두툼한 입술, 언뜻 보이는 눈썹은 기러기 날개처럼 펼쳐져, 단 한번도 손질해본 적이 없는 게 분명하다. 뙤약볕에 검게 그을린 구릿빛 피부, 나는 <기생충>에 나오는 이선균처럼 코를 막지 않으려고 애썼다.


‘소크라테스…?’ 뇌리에 한 이름이 본능처럼 스쳐지나갔다.

“이건 비둘기 주지 마시고요” 그는 나와 빵을 번갈아 보더니, 거무튀튀한 손으로 빵을 건네받았다. 

“고맙다네” 

나는 지금 내가 일면식도 모르는 거지에게 빵을 건네주고 대화했다는 사실에 묘한 소름이 끼쳤다. 내가 뭔짓을 한거지. 꾸벅 인사를 드리고 발걸음을 재촉하려던 찰나, 그가 내게 물었다.


“자네, 혹시 신발을 벗어줄 생각은 없나?”

“예?” 잘못들은 건가. 

“죄송하지만 신발은 벗어줄 수 없습니다” 


그는 무척 담담하게 내게 말했다.

“거지에게 카스텔라는 주면서, 길거리에서 신발을 벗는 행동은 하지 못하겠는가?”

나는 빵을 준 내 자신을 후회했다. 더 이상 말을 섞으면 나도 이 사람처럼 돌아버릴 것이다.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해보자.


“더 이상 해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자네는 아직도 타인의 시선에서 타당해보이는 행동만 하려고 하는군.”


나는 갑자기 열이 얼굴로 뻗쳐오는 것을 느꼈다. 그의 발을 봤다. 맨발이었다. 아, 신발이 없구나. 나는 당장이라도 거지에게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살면서 남들에게 소리질러 본적이 없어 현실로 옮기지 못했다.


“내 발을 보시게” 그는 그의 무려 발바닥을 나를 향해 들었다. 카스텔라의 답례로 나를 향해 먼지가 까맣게 눌러붙은 발바닥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당장이라도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나도 뭐라고 말해야했다.

“죄송한데요, 그건 제게 실례입니다. 발이 딱한 건 알겠지만 신발까지는 못드리겠네요.”

“불쾌하게 느꼈다면 미안하다네. 하지만 나는 신발이 필요한게 아니야. 자네가 신을 벗을 준비가 되었는가 묻는거란 말일세.”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맨발로 터벅터벅, 어딘가를 향해 걸어갔다. 나는 그제서야 그가 줄곧 맨발로 걸어다녔다는 것을 깨달았다. 본능적으로 그를 멈춰세웠다. 그가 카스텔라를 챙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안하지만 이건 이미 거지 손이 뭍어서 먹기 싫다. 그리고 내 수준엔 비싼거란 말이다. 

“저기요!”

그는 아랑곳 하지 않고 길을 걸었다. 빵을 건네주려는 나에게 그는 눈을 마주치지 않고 앞을 보며 말했다.

“신발을 벗어주겠나?”

“이 카스텔라는 가지고 가시라구요”

“…알았다네.”


그는 카스텔라를 받고 유유히 사라졌다. 나는 사람들이 오고가는 길 어귀에 서서 그가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봐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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