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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란티노《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 나타난 대중철학

by 대중철학자

쿠엔틴 타란티노는 단순히 폭력적이고 쿨한 장면을 나열하는 감독이 아니다. 그의 영화는 철저하게 구조화된 '사유의 편집'이다. 자극과 복수, 쾌락과 불편함이 동시에 공존하는 폭력은 모든 인물에게 골고루 주어지고, 그 모든 폭력은 우연이 아니라 의도된 설계물이다. 이는 감독의 감각이 아닌, 철학적 창작 태도에서 비롯된다. 바로 '편집학(Editology)'이다.


김정운 교수의 편집학은 창작이 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새로운 연결에서 발생한다고 말한다. 타란티노는 수천 편의 영화를 이미지로 기억하고, 그것을 장면마다 꺼내 배치하며 전혀 새로운 감정과 메시지를 창조한다. 영화 속 장면 하나하나가 하나의 '생각 카드'처럼 존재하며,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사유의 흐름을 형성하는 것이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은 이러한 편집학의 창작이 어떻게 철학으로 확장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영화다. 이 영화는 겉보기에는 "히틀러를 죽이는 복수극"이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폭력을 어떻게 소비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담고 있다. 타란티노는 이 영화에서 "복수는 과연 정당한가?"라는 물음을 던지며, "정의라는 이름으로도 폭력은 동일하게 타락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은근하게 삽입한다.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초반, 한스 란다 대령이 프랑스 농가에서 유대인을 색출해내는 장면이다. 그는 정중하고 논리적으로 대화하지만, 손가락 하나로 사람의 죽음을 지시한다. 이후 바스터즈가 독일군 포로에게 지도를 펼쳐놓고 "누가 누군지 손가락으로 가리키라"고 강요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두 장면 모두 손가락 하나로 생사가 갈린다. 권력자는 정중한 말로 폭력을 지시하고, 복수자는 직설적으로 폭력을 예고한다. 방식은 다르지만, 결과는 같다.

20250422_193203.jpg 란다의 정중한 협박에 못이겨 농가의 주인이 유대인이 숨어있는 위치를 손으로 가리키는 장면.


20250422_192826.jpg 독일군 포로가 아군의 위치를 바스터즈에게 알려주는 장면


철저히 계산된 '거울 구조'를 통해 타란티노는 복수에 대한 약간의 쾌감을 선사하는 동시에, 폭력 행위를 가해자와 복수자의 입장에서 동일하게 배치한다.


"정의와 복수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폭력의 방식은 똑같다."


이러한 대칭 구조는 관객에게 불편함을 유도한다. 관객은 복수에 쾌감을 느끼면서도 나치가 저지른 폭력과 정말 다를까? 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게 된다. 타란티노는 인간의 윤리와 쾌락 사이의 회색지대에 서서 노골적으로 영화에 불편함을 녹여낸다. 이 영화는 단지 정의를 실현하는 복수극이 아니라, 관객이 '정의'와 '폭력' 사이에서 어느 지점에 서 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철학적 장치다.


폭력을 정당화하려는 인간의 본능, 쾌락을 소비하는 우리의 심리. 그는 편집을 토대로 철학적 메세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B급 영화의 탈을 쓴 A급 철학자"

그의 영화는 단순한 작품이 아닌 대중철학이 된다.


다음에 시간이 되면 이를 가능케 만든 타란티노의 편집학적 소양에 대해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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