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잼을 먹지 않는 이유
그리운 나의 7살 친구.....
오빠가 있었던 내게 어린 시절의 친구들은 대부분 남자아이들이었다.
그러던 내게도
처음으로 '여자 친구'가 생겼었다.
땅콩잼을 보면 그 아이가 생각이 난다.
그리고 난 그 아이가 너무 그립다.
무용을 처음 시작했던 7살.
아직 초등학교 입학 전이었고 집에서 걸어서 3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무용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아이를 만났다.
너무 오래전이라 친구의 모습은 희미하지만
꽤나 경쾌한 성격이었던 것만은 확실히 기억이 난다.
우리는 제법 친한 친구였다.
한 번은 무용학원 수업 후 그 친구 집으로 갔다.
그때 처음으로 식빵에 땅콩잼을 발라서 처음 먹어보았다.
1989년. 그 시절에 땅콩잼이 있는 집이라니.
그날 먹었던 땅콩잼 빵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아직도 그때의 그 고소함이 코 끝에 남았다.
처음으로 먹어본 음식에 배탈이 제대로 났던 난 그 후 일주일을 무용학원에 못 갔고
그리고 우린 다시 만나지 못했다.
몸이 회복되고 다시 돌아갔던 무용학원에 그 친구는 더 이상 없었다.
선생님들은 그 아이가 하늘나라에 갔다고 했다.
분명 그 전 주 까지 함께 땅콩잼을 먹고 깔깔거렸던 친구인데.
아직도 그 친구 집에 있던 작은 갈색 식탁과 땅콩잼을 꺼내던 작고 하얀 냉장고가 기억이 나고
정말 맛있는 거라며 소중하게 나누어주던 그 친구가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 하늘나라에 갔다니.
그 당시엔 그게 어떤 의미인지도 몰랐던 것 같다.
그저 다시 그 친구를 만날 수 없다는 슬픔이 잠시 밀려왔다 떠났다.
어떻게 그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곧 난 왜 그 아이가 더 이상 올 수 없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생일이었다.
우리가 땅콩잼을 바른 식빵을 먹었던 그다음 날,
그 아이는 생일이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 일하러 나가신 부모님을 대신해 오빠와 그 아이는 생일파티를 했다고 한다.
오빠와 라면을 먹고 초를 켜 두었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고 한다.
초가 그대로 녹아 집에 불이 옮겨 붙었고
비몽사몽간에 오빠는 불이 난 집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그 친구는 그대로....... 잠들어버렸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날, 비가 왔다.
진짜인지 알기 위해 기억을 더듬어 그 친구 집으로 향했다.
다세대 작은 아파트였던 그 친구의 집은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았다.
문 앞에는 노란 테이프로 출입이 금지되어있었고
초록색 방수 천이 둘러져있었으며
문 주위로 검게 그은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날 이후,
난 다시는 그 동네에 가지 않았다.
우리가 함께 땅콩잼을 발라먹었던 그 집에서 그 아이를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 아이를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나는 그 아이의 이야기를 이 추억을 한 번도 입 밖으로 내어놓지 않았다.
그리고 난 다시는 땅콩잼을 먹지 않았다.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이었는데도 이 아이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았던 이유는 뭘까
이후 우리 집은 여러 번 이사를 가게 되었고 난 집과 교회를 오가며 버스를 한번 갈아타야만 했다.
아마 대학생이 된 후였을 것이다.
그저 조금 더 앉아있고 싶고 쉬고 싶어서 탔던 10번 버스.
종종 탔던 버스이고 늘 다니던 길이었는데 그날의 공기는 뭔가 다르게 느껴졌다.
그날도 늘 그랬듯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며 앉아있는데
어라.
버스가 그 동네를 지나고 있었다.
그 골목을 난 기억하고 있었다.
고가 다리 밑으로 빼곡히 들어섰던 다세대 아파트......
아.......
코끝이 찡해지며 가슴이 아려왔다.
그 아이의 오빠는 왜 그 아이를 데리고 나오지 못했던 걸까.
왜 내 친구만 하늘나라로 떠나게 되었던 걸까.
어릴 땐 몰랐던 '죽음'의 무게가 밀려왔다.
왜 그 아이는 그렇게 짧은 생을 살아야만 했을까.
지금도 살아있었다면 아직도 나와 연락을 하고 있었을까.
많은 생각이 밀려들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저 그 아이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다.
내가 널 기억하고 있었다고 말해주고
너와 함께 먹었던 땅콩잼을 바른 식빵이 내 인생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아직 땅콩잼을 다시 먹어볼 용기가 나지는 않지만, 언젠간 다시 먹을 수 있는 날이 오겠지......라고
먹먹해지는 마음을 다시 한번 달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