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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나마밍 Dec 23. 2022

아이넷 엄마는 초능력자?!

연년생 사 남매 육아 터널을 지나고 있는 나에게 던져진 많은 질문들

아이 넷을 키우며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질문들 몇 가지를 함께 나누어 보려 한다.



- 아이가 넷이면 엄마가 음식을 잘하시겠어요.

 난 타고난 똥손이다. 결혼 11년 차, 아이가 넷. 이 정도 되면 무언가 뚝딱뚝딱 만들어낼 만도 한데 식사 준비는 늘 고통스럽다. 나 스스로도 밥을 챙겨 먹는 것에 별로 애쓰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집은 아이가 많은 집이긴 하지만 모든 식사 시간과 메뉴는 남편에게 맞추게 되어있다. 


- 여섯 식구 살림을 어떻게 다 하세요? 손이 빠르신가 봐요.

 이 또한 음식과 비슷하다. 손이 빠른 건 오히려 남편이다. 그래서 우리 집은 음식은 나, 청소는 남편이 주가 되어하는 것으로 은근히 분리가 되어있다. 특히 아이들과 긴 외출을 하고 돌아오면 남편이 거실을 반짝반짝 청소해 둔다. 본인 스스로 더러운 것을 참지 못하는 결벽증이 있기에 고만고만한 아이 넷을 키우면서도 그나마 집이 깨끗한 상태로 유지가 되는 듯하다.

 설거지 - 음식을 하며 바로바로 정리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쌓아두고 한 번에 치우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후자이다. 바로바로 정리하지 못한다. 음식 하는데 에너지를 너무 많이 쏟기 때문에 바로바로 치우기까지 할 수가 없다. 대신 상을 차리고 난 그 상에 앉지 않는다. 음식을 하며 이미 냄새를 맡는 것으로 속이 더부룩해졌기에 상을 차려놓은 후 바로 설거지를 시작한다. 

(음식을 하면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빵이나 과자, 견과류, 과일, 샐러드 등을 준비해 두고 가족들 음식을 차리며 그렇게 저녁을 먹는다. 누군가 차려주는 밥 상 아니면 난 저녁상에 앉지 않는다. 토할 것 같음.....)


- 아이를 쉽게 낳는다? 임신이 체질이다?

 아이 넷 다, 피 토하는 입덧을 한 사람으로서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나 자신을 부정당하는 느낌이 강렬하게 밀려온다. 입덧이 갈수록 나아진 것도 아니고 갈수록 심해져서 결국 물, 임신 영양제까지 다 입덧으로 토해내는 바람에 임신 6개월 차까지는 비실비실 대다가 7개월 차에 접어들 때 즈음, 몇 가지 선호하는 음식들을 하루 한 끼 정도만 먹으며 임신기간을 버텨내었다.

 출산도 내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점차적으로 시간이 줄어들긴 했으나, 첫째 23시간(아이가 뒤집어져있어서 OB닥터가 손을 집어넣어 아이 몸을 돌려서 출산), 둘째 20시간, 셋째 18시간, 넷째 16시간.

무통도 잘 듣지 않아 하늘이 노래지며 몸이 오징어가 되는 경험을 때마다 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이렇게 힘든데도 아이 넷을 어떻게 낳았냐 묻는다.

그러게.

그저...... 출산 후 6개월이 지나면 그냥 그렇게 신생아가 그리워지더라.

일명 신생아 중독.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

아니다. 이건 전혀 아니다. 미국생활 11년 차.

남편의 직장으로 인해 2년에 한 번씩은 타 주로 이사를 다녔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다는 생각은 당연히 내 계획에 포함되어있지 않았다. 네 번의 출산 중, 친정 엄마는 두 번 다녀가셨고, 둘째 때는 조금 일찍 오셔서 산후조리를 다 해주셨지만 넷째 때는 아이를 낳고 삼일 만에 운전을 해야 했다. (엄마는 삼칠일 이후에 오셨음)

지역을 옮길 때마다 등록한 교회에서 많은 도움을 받게 되긴 했으나, 아이들은 온전히 내 손으로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나의 휴식을 위해서나 다른 일들 때문에도 아이들을 맡겨본 적이 없다. 

만 18개월이 되어 일주일에 두 번씩 큰 아이가 미국 프리스쿨에 다닐 수 있게 되었을 때, 규칙적으로 일주일에 이틀, 하루 4시간 프리스쿨에 맡긴 것 이외에, 다른 지인들의 손을 탄 적은 한 번도 없다.

도와주는 이 없이도 어떻게 아이 넷을 키우냐고 물었던 많은 이들의 질문에 한결같은 대답을 했던 것 같다.

"혼자 하다 보면 다 할 수 있게 돼요."

그래서 사실, 아이를 낳고 친정부모나 여자 형제들에게 아이를 맡기고, 어린이집에 아이를 온종일 보내고 그래도 힘들다고 하는 엄마들을 난 사실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렇게 곁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많은데 뭐가 힘든 걸까.

하루 단 몇 시간의 자유를 위해 새벽 2시나 3시에 일어나 새벽루틴을 하기 시작한 것도 아마 낮시간에 아이들을 누군가에게 맡기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기에 선택한 최후의 방법이었던 듯하다.

아마도 그래서 나는 일반 이민자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그런 육아를 해왔던 것 같다.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하게 독립적으로 아이들을 키우는 군인 아내들은 내 상황을 듣고 공감해주고 함께 웃어주고, 너도 그래? 나도 그랬어라고 가벼이 넘겨주지만

일반 이민자들 속에서 나는 별종이었고 유난스러우며 독한 엄마였다.


여기까지 연년생 사 남매 엄마가 임신, 출산, 육아를 거치며 가장 많이 들었던 몇 가지 질문들을 추려 답해보았다..

모든 부모님들께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말을 전하며,

오늘은 여기에서 마무리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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