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직된 인간

그렇게 인생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by 더 메모리 THE MemorY


“경직된 인간들은 불쌍해. 살아온 날들을 말해주잖아. 상처받은 아이들은 너무 일찍 커버려. 그게 보여. 그래서 불쌍해”
- 나의 아저씨 中


살다 보면 여기저기에서 치이고 깨지고 다쳐서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을 때가 있다. 순수하고 밝기만 했던 아이가 어느새 인생이라는 시련을 만나 구겨지고 경직되어 버린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유도 영문도 모른 채 차가운 세상을 그대로 맞이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경직되어 버린다. 몸과 마음이 굳어버린다. 그리고 서서히 ‘나’를 잊어버린다.


왜 그렇게 아팠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나는 나를 잊어버린 거다. 구김 없이 밝고 명랑한 나를 예전의 찬란한 나를 잊어버려서 그래서 그렇게 아팠나 보다. 몸이 겪는 성장통이 아니라 마음이 겪는 성장통이라고 불리는 ‘마음의 상처’는 잊어버린 나를 찾는 여정인 걸까. 그래서 이렇게 오래 남는가 보다. 여정의 여독을 풀려면 오랜 시간 휴식을 취해야 할 테니.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기 시작했다. 드라마를 즐겨보지 않는 터라 이제야 보게 되었지만 참 많이 위로받는 드라마다. 드라마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는데 썩 나쁘지는 않다. 나도 내 삶을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면 좀 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약간의 안심이 된다. 내 삶도 드라마처럼 희로애락이 다 담겨있겠지 그리고 해피앤딩이던 새드앤딩이던 언젠가는 결말을 맺겠지 싶다.


왜 ‘나의 아저씨’에서는 상처받은 ‘아이들’이라고 표현했을까. 상처받는 어른들도 있지 않을까. 왜 굳이 상처받은 아이들에 대해서 언급했을까. 나 혼자 곱씹어보았다. 그리고 상처받은 아이들은 너무 일찍 커버린다는 게 문득 서글퍼졌다. 사실 우리 모두 은연중에 알고 있다. 상처받은 아이들의 ‘의젓’하고 ‘성숙’한 모습들이 실은 이 아이들이 받은 상처 위에 싹을 틔었다는 걸. 그래서 불쌍하다. 얼마 살지 않은 아이들의 지난날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그들의 모습이 불쌍하다.


어쩌면 나는 상처받은 ‘아이들’의 모습에서 나를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씩씩한 척 대담한 척 괜찮은 척 살아가는 나이지만 사실 안은 곪을 대로 곪았다는 걸 그래서 그 경직된 인간이라는 게 나를 말하고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런데 내가 상처받았다는 걸 보이는 게 더 아프다. 불쌍하게 보는 게 더 창피하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상처를 가리기 급급하니까 나도 그런 거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아무 상처 없이 살면 얼마나 좋을까. 상처를 받아도 금방 털어버리고 일어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현실은 얄궂게도 상처를 털어버리는 대신 나를 털어내 버린다. 상처받지 않은 나를 기억에서 지우고 살아간다. 인생이 그래서 참 얄궂다.


아이들은 참 연약하다. 사람들의 발길에 치여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낙엽처럼 세상의 공격과 비난에 금세 우수수 나무에서 떨어진다. 산들바람에도 떨어져 버리는 낙엽이 참 불쌍하다. 이리도 연약하니 별거 아닌 말에도 마음 깊이 상처를 받는 거겠지. 그래서 더 이해할 수가 없다. 상처를 준 사람은 없는데 상처를 받은 사람만 넘쳐나는 이 세상을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상처를 준 어른들은 상처를 준 적이 없다고 하는데 상처를 받은 아이들은 상처를 받았다고 말하니.

마치 산들바람에 떨어져 버린 낙엽에게 낙엽의 연약함을 탓하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나무에 좀 더 더 오래 매달려있지 않는 네 잘못이라고 말한다. 바람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다. 그저 지나가는 바람이었을 뿐이니까.


상처받은 아이들은 너무 일찍 커버린다.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나뭇잎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알록달록 색을 입어가는데 일찌감치 떨어져 버린 낙엽들은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하는 듯 제멋대로 색을 바꿔버린다. 그것도 알록달록 예쁜 색이 아닌 거무튀튀 어두운 색으로. 우울하기 짝이 없다. 시간이 흐르고 우울하기만 한 낙엽들은 청소부의 빗자루질에 이리저리 휘날리다 바스스 부서진다. 그리고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먼지가 되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눈이 와서 차갑고 두꺼운 눈이불을 채 덮어주기도 전에 이미 가루가 되어버린다. 그렇게 상처 가득한 낙엽은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진다.


그래도 난 그들이 살았으면 좋겠다. 제멋대로 시간을 뛰어넘고 색깔을 바꾸어버려도 낙엽이 살았으면 좋겠다. 이미 상처를 받아 훌쩍 커버렸지만 그래도 살아냈으면 좋겠다. 먼지가 되고 가루가 되어버려도 살아서 이 세상을 좀 더 돌아봤으면 좋겠다. 나를 나무에서 떨어뜨린 바람에 실려 여기저기 세상 곳곳을 누비며 살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많이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인생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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