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김살

아직 피지 않은 꽃이니까

by 더 메모리 THE MemorY


“나 원래대로 펼쳐 놔요. 감독님이 구겨놨으니까 다시 깨끗하게 펼쳐놔요. 활짝. 펴놔요 원래대로. 나 밝았던 내가 그리워요. 그러니까 나 원래대로 펴놔요. 펴 놔요.”
- 나의 아저씨 中


인간은 인간을 구겨놓는다. 제멋대로 자신의 틀에 또 다른 한 인간을 구겨 넣는다.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되도록 구기고 또 구긴다. 이쯤 되면 궁금해지는 것이 하나 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 구김살 없이 태어날까 아니면 태어났을 때도 이미 구겨진 인간이 있을까. 어쩌면 모든 인간은 본래 태어나면서 이미 구겨진 상태일지도 모른다. 그것도 모르고 다른 인간의 손에 더 구겨지고 찢기고 밟히는 거다. 이렇게 생각하면 좀 나아지려나. 저들이 나를 구긴 게 아니라 내가 원래 구겨졌다고 생각하면 좀 덜 억울하려나.


당신이 나를 구겨놨으니까 다시 펼쳐놓아라. 듣기 좋은 말이면서도 거북한 말이다. 마치 누군가가 나를 마음대로 구겨놓을 수 있다는 말이니까. 내가 나를 내어주었다는 말이니까. 나를 구겨놓은 누군가에게 다시 나를 펼쳐놓아라 말하는 건 아무래도 내 삶의 주도권을 누군가에게 주는 것 같으니까. 누군가에게 의지하며 사는 건 참 편하다. 일이 잘 안 되면 탓할 수도 있고 실수에 대한 책임을 안 가져도 되니까. 근데 이렇게 누군가에게 의지하며 살다 보면, 내 삶의 주도권을 누군가에게 맡기다 보면, 내가 나를 잊어버린다.


원래대로 펴놔요. 원래 내가 펴져있는 사람이긴 했을까. 밝았던 내가 있기는 했을까. 다른 사람에게 울고 불고 나를 다시 펴놓으라고 떼를 써봐도 다시 펴질 수 있기는 한 걸까. 수많은 의문이 나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이 세상에 ‘원래’라는 건 존재하긴 한 걸까. 나는 ‘원래’ 이랬어, 그 사람은 ‘원래’ 이랬어가 논리적으로 가능한 말인가. 모든 것에는 시작이 존재했을 텐데 그럼 그 시작은 도대체 언제이고 무엇인 걸까. 모든 것의 처음으로 돌아가면 내가 뭔가 달랐을까.


밝았던 내가 그리워요. 뭐든지 예전의 내가 그리운 법이다. 아무리 억울하고 원통하고 비참했던 나였을지라도 예전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더 나아 보이는 법이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내가 아니라서 다행인 걸까 불행인 걸까. 계속해서 변하는 지금의 내가 볼 때에는 가만히 멈춰있는 그때의 내가 그리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과거의 나를 미화한다. 억울했던 나를 구김 없었던 나로. 원통했던 나를 밝았던 나로. 비참했던 나를 순수했던 나로 미화한다. 그래서 그립다. 그대로 시간 속에 영원히 멈춰있는 그때의 내가 그립다.


어쩌면 우리는 구겨지는 종이가 아니라 아직 피지 않은 꽃일 수도 있다. 구겨진 건 아직 새싹인 우리를 구겨진 얼굴로 보는 사람들일 거다. 꺾인 건 내가 아니라 나를 비틀려고 했던 그들의 손일 거다. 그러니 우리는 아직 구겨지지 않았다. 활짝 다시 펴놓을 필요도 없고 펼쳐놓을 필요도 없다. 아직 피지 않은 꽃일 뿐이니까 시간이 흐르면 활짝 필 거니까. 우리를 구겨놓으려고 했던 그들에게 다시 펼쳐놓으라고 소리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우리에게 환히 웃고 있는 햇빛으로 그리고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꽃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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