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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도하 Feb 16. 2022

계절 같은 사람

무덤에서 보내는 암시

“자신이 죽고 난 뒤에 묘비명에 적혔으면 하는 문구를 생각해보자.”


이제 10년도 더 지나 정확히 언제였는지도 희뿌연 기억이지만, 고등학교 시절 묘비명을 짓는 시간이 있었다. 문학 시간이었나, 연극 동아리 활동 시간이었나. 아마 연극 동아리 시간이었을 거다. 당시 강사 선생님은 열의가 대단했고, 사춘기 소녀들의 감수성을 자극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한 번은 자신의 장례식장에서 듣고 싶은 말 세 가지를 생각해보라고 했다. 한 명씩 돌아가며 발표를 하는데, 다들 자기 순서가 되면 백이면 백 울컥해 울음을 터뜨렸다. 새파랗게 어린 우리에게 죽음이 얼마나 와닿았던 건지 모르겠지만, 본인의 장례식장에서 남은 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유령에 과몰입했던 것 같다. 비슷한 상태였을까. 묘비명을 지을 때도 난 사뭇 진지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데! 이거야말로 진정한 고요 속의 외침 아니던가. 좁아터진 비석 속 단 하나의 문구로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납득시켜야 한다니. 기왕이면 날 아는 사람은 자연히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날 모르는 사람은 '저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골똘히 생각해보게 하는 기깔난 문구를 뽑고 싶었다.


‘난 어떤 사람이지?’ 창 밖을 보며 한참 동안 자신을 분해했다. 끝없이 쪼개지는 생각의 틈에서 이걸로 해야겠다 싶은 한 마디가 둥실 떠올랐다. '계절 같은 사람.' 그래, 난 계절 같은 사람이 되자. 사계절 중 특정 시기가 아닌 계절 그 자체. 매일 같아 보이는 가지 끝에 어느새 새순을 돋우는. 끝나지 않을 듯한 더위와 녹음을 몰고 왔다가, 한 순간 서늘한 바람으로 눈을 붉게 적시는. 그리고는 곧 온 세상을 새하얀 황량함으로 물들이는. 계절은 항상 묵묵하고 조용히 움직이면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니까. 매해 누가 뭐라든 때가 되면 찾아오는 우직함과 성실함이 있으니까. 내가 가장 닮고 싶은 모습이었기에, 그런 삶을 산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랐다.


이렇게나 구구절절 설명을 해야 하는  보면 사실 꽤나 망한 문구 같지만, 지금까지도 마음이 어려울 때면 미래의 묘비명을 꺼내 보곤 한다.  현재  시절을 지나 새로운 계절을 향해 움직이는 중이라고.  안에서 꿋꿋하게 주어진 역할을 해내는 사람이라고. 그렇게 되뇌다 보면 막막함은 어느덧 묵묵함으로 바뀌어 눅눅한 시간을 버티게 한다. 그렇게  인생에서 어떤 승리를 거머쥘지는 모르겠지만. 존버는 승리한다잖아. 훗날 세상에서 사라진  기억하러  사람들이 "맞아,  그런 애였지." 해준다면 "거봐, 내가 그런 사람이었대두." 하고 저세상에서 약간의 승리감에 취해볼  있지 않을까? 거기에 장례식장에서 듣고 싶던 말까지 덧붙여주면 더욱이 좋고.


"널 알게 돼서 다행이야."

"사랑해."

"잊지 못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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