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도하 Feb 16. 2022

귤 같은 인생

악마에게 건네받은 달콤한 말

빨간 피부에 검은 뿔, 아찔하게 빛나는 노란 눈의 악마. 못된(?) 얼굴로 천재 같은 센스를 뽐내는 유튜버 알간지를 아시나요? 모른다고요? 간지 언니(나보다 똑똑하고 멋지면 다 언니니까. 이하 언니라고 부르겠다.)의 멋짐을 모르는 당신이 불쌍해요.


조금 구질구질하지만 난 언니가 유명해지기 한참 전부터 알맹쓰였다.(알맹쓰는 언니의 구독자 애칭이다.) 영어 표현을 알려주는 기본 콘텐츠도 좋아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올라오기 시작한 라이브 편집본을 보고 언니에게 홀딱 반해버리고 말았다. 홀리몰리. 이래서 파우스트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나. 유창한 영어 실력도 멋졌지만, 언니의 멋짐은 가치관이 드러나는 발언을 할 때 폭발했다. 듣는 이에게 선한 영향을 주는 인플루언서 그 자체였고, 그런 언니의 '인생이 귤 같은 이유​'라는 영상을 본 건 3년 전이었다.


3년 전의 난 우울 속에서 거의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매일 새벽 퇴근 후 불 꺼진 방에 가방을 내려놓는 그 순간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사회에서 내내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소리는 낼 수 없었다. 가족들이 알면 속은 더 시끄러워질 테니까. 날이 밝으면 다시 평소와 같은 척 지옥에서 눈을 떴다. 대체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 이 불행에 끝이 있기는 한 건지 어느 것 하나 알 수가 없었고, 매일 구체적으로 세상에서 사라질 방안을 모색했다. 하지만 아프지 않으면서도 남한테 폐 끼치는 일 없이 뿅! 하고 세상에서 사라질 수 있는 방법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지옥은 자의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지옥이었다. 그 사실을 인정한다고 변하는 것도 없었다. 이미 벌어진 현실을 바꿀 힘이 내겐 없었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뿐이었다. 쓰디쓴 현실을 등에 인 채,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지난한 버티기 한 판이 시작된 거다.


사라지는 대신 살아내기 위한 버티기였으므로, 묘비명보다는 생에 가까운 말을 곁에 두고 싶었다. 그때 언니가 영상에 남긴 싱싱한 귤이 굴러들어 왔다. '귤 같은 인생'은 언니가 귤을 먹다 적은 일기랬다. 신 귤을 주무르면 에틸렌이라는 성숙 호르몬이 나와 귤의 당도가 높아지는데, 그 모습이 마치 힘든 일을 겪고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느꼈다고 했다. 참 귤 같은 인생이라고. 영상을 다 보고 난 뒤에 비어있던 메신저 상태 메시지에 귤 이모티콘을 심었다. 아니, 사실 마음에 심었던 것 같다. '난 귤이야. 동글동글 귤. 난 지금 달달해지고 있는 거야.' 그러자 괜히 내 처지가 별 게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심지어 잔뜩 성이 난 인생이 조금은 귀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 후로 단 한 번도 상태 메시지를 바꾸지 않았다. 거지 같은 상황들이 생길 때마다 X 같다는 말 대신 "귤 같네."라고 읊조리며 생글거렸다. 그렇게 해가 세 번 바뀔 동안 마음속에 귤을 키웠다. 그리고 얼마 전 같은 팀 선배가 말했다.


"도하가 이제 좀 밝아진 것 같다."


버티기가 끝난 걸까. 사실 잘 모르겠다. 여전히 3년 전을 떠올리면 멈칫 숨을 고르게 되는 순간이 있고, 그때마다 쌉싸래한 맛이 나니까. 그렇지만 설령 조금 더 버텨야 한다고 하더라도, 그 끝이 머지않았다는 느낌이 든다. 요즘 마음에 심었던 귤이 자라 귤나무가 된 상상을 하기 때문이다. 현실의 쓴맛에 몸서리치는 누군가에게 지금 겪고 있는 괴로움은 딱 견딜 수 있는 만큼만 찾아올 거라고. 그러고 나면 당신의 인생은 한결 더 달콤해질 거라고. 그러니 세상이 멋대로 인생을 주물러도 사라지지 말라고. 넌지시 귤을 굴리며 얘기해줄 만큼 여유가 생겼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계절 같은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