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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도하 Feb 20. 2022

젖은 낙엽은 쓸어지지 않아

녹록지 않을 인생에 대한 당부

"수현아, 조용히 살거라. 아무래도 그게 좋지 않겠니. (중략)
 수현이 그걸 잊었다고 여겨질 때마다 할머니가 열심히 상기시켜주었다."

이주란 - 『위해』 중에서


<소설보다 가을 2021>의 마지막 단편으로 실린 이주란 작가의 『위해』. 작중 수현은 조용히 없는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당히 불행해지는 순간에는 상관이 없었지만, 너무 행복해지면 만끽할 새가 없이 이내 사라져 버리는 것을 삶에서 체득했기 때문이다. 억울하지만 조금이나마 행복을 붙들고 싶은 기분이 들면, 할머니의 한 마디가 수현의 귓가에 스치며 제동을 건다. “조용히 살거라.”


책을 읽는 동안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는 수현을 보며 느낀 건 묘한 기시감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수현과 결은 분명 다르지만 나에게도 그런 문장이 있기 때문이다. 주로 분노나 억울함, 허망함 같은 감정의 화산이 부글거릴 때, 톡- 하고 마음을 건드리며 제동을 거는 문장이. 혹여나 잊었을까 끝없이 생채기를 내는 인생에게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며 귓가에 울리는 은사님의 말씀이.


지 선생님은 집 근처 작은 입시 학원의 언어 선생님이었다. 날카로운 인상과 달리 세상 유잼 인간이었던 선생님은 나를 포함해 많은 학생들의 최애 강사였다. 반대로 못지않게 아이들을 진심으로 애정 하는 게 느껴지는 분이기도 했다. 그런 선생님의 유달리 아끼는 애제자가 된다는 건 제법 기분이 좋은 일이었다. 유독 선생님을 따르는 게 티가 나기도 했겠지만, 이상하게 우리는 닮은 점이 많았다. 성격도 그랬지만 외모도 닮았었다. 다른 선생님들이 먼저 말을 꺼낼 정도였으니까 기분 탓은 아니었을 거다. 게다가 선생님의 개명 전 이름이 내 이름과 같아서, 여전히 명절이면 친척들 중에는 내 이름으로 선생님을 부르는 분들도 있다고 했다. 정말 뭔가 인연이 있는 것 같다던 선생님은 어느 순간부터 나를 딸이라고 불렀다.


계속 닮고 싶었기 때문인지, 내 입시 목표는 자연스레 선생님의 모교가 됐다. 선생님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하던 대로만 하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시원하게 미끄러졌다. 수능을 망쳤다. 평소 써보려 생각했던 곳들은 쓸 수가 없었다. 공부만 할 수 있게 지원을 다 해줬는데 서울에 있는 대학을 못 갈 수도 있다는 소식에 집안 분위기는 말 그대로 초상집이었다. 재수는 절대 없다며 부모님이 한숨을 쉴 때마다, 딱 그만큼씩 숨이 턱턱 막혀왔다. 이러다가는 곧 숨이 막혀서 죽겠구나 싶던 날 구제한 건 지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수능 성적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대수롭지 않게 “아직 수시가 있잖아.”라고 말하며 논술 준비를 하자고 했다. 비용은 받지 않을 테니 딱 세 번만 수업을 들으라고. 그 말 어디에서도 한숨이나 포기가 느껴지지 않아 군말 없이 출석 도장을 찍었다. 그렇게 난 논술 전형으로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갔다.


그 뒤로 1년에 한 번씩은 꼭 선생님을 뵈러 갔다. 선생님의 모교도, 사범대도 아닌 학교를 가게 되어 더 이상 선생님과 닮은 모습이 아니었지만, 선생님은 항상 오랜만에 집에 온 딸을 본 것처럼 반겨줬다. 그리고 드디어 사회인이 되어 찾아갔을 때, 평소와는 조금 다른 눈빛으로 지금까지 수없이 내 마음을 다잡아준 그 주문을 거셨다.


“도하야, 젖은 낙엽 같이 살아야 한다. 아무리 쓸어도 쉽게 쓸리지 않는.”


아, 그래. 선생님은 아셨던 거다. 비록 내 딸이 나와 같은 길을 걷지는 않지만, 사회에서 겪는 억울함이나 부당함, 서러움 같은 것들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걸. 결국 그녀와 또다시 겹쳐지는 순간들이 오고야 말았을 때, 쉽게 감정에 휩쓸려 무너지거나 도망치길 원치 않으신 거다. 수능을 망쳤던 그 시절 선생님이 끝까지 나를 놓지 않았던 것처럼, 어떤 상황에도 끈질기게 이겨내는 어른이 되길 바라신 거다. 그 바람이 강력했는지 지금까지도 무례한 클라이언트나 납득하기 힘든 상황으로 인해 감정이 날 집어삼키려고 할 때면, 선생님의 주문이 브레이크를 건다. 그리고 곧 제동이 걸린 감정의 틈새에 원동력이 자리 잡는다. ‘백날 그렇게 쓸어봐라, 내가 쓸리나.’ 그렇게 조용히 속으로 읊조리며 다시 한번 감정을 눌러내고 현실을 악착 같이 버텨낼 힘을 얻는 것이다.


최근 팀 내 아끼는 후배에게 처음으로 이 주문을 공유해줬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후배가 회사에서 쉽게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선생님이 나를 염려하셨던 것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애정이 더 와닿기 때문인지, 올해는 유독 더 선생님이 보고 싶다. 선생님의 생신이 있는 여름이 오면, 오래간만에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겠다. 선생님의 그 말 한마디 덕분에 7년간 버틸 수 있었다고. 여전히 난 당신을 닮아 잘 살아가고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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