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에서 보내는 암시
“자신이 죽고 난 뒤에 묘비명에 적혔으면 하는 문구를 생각해보자.”
이제 10년도 더 지나 정확히 언제였는지도 희뿌연 기억이지만, 고등학교 시절 묘비명을 짓는 시간이 있었다. 문학 시간이었나, 연극 동아리 활동 시간이었나. 아마 연극 동아리 시간이었을 거다. 당시 강사 선생님은 열의가 대단했고, 사춘기 소녀들의 감수성을 자극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한 번은 자신의 장례식장에서 듣고 싶은 말 세 가지를 생각해보라고 했다. 한 명씩 돌아가며 발표를 하는데, 다들 자기 순서가 되면 백이면 백 울컥해 울음을 터뜨렸다. 새파랗게 어린 우리에게 죽음이 얼마나 와닿았던 건지 모르겠지만, 본인의 장례식장에서 남은 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유령에 과몰입했던 것 같다. 비슷한 상태였을까. 묘비명을 지을 때도 난 사뭇 진지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데! 이거야말로 진정한 고요 속의 외침 아니던가. 좁아터진 비석 속 단 하나의 문구로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납득시켜야 한다니. 기왕이면 날 아는 사람은 자연히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날 모르는 사람은 '저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골똘히 생각해보게 하는 기깔난 문구를 뽑고 싶었다.
‘난 어떤 사람이지?’ 창 밖을 보며 한참 동안 자신을 분해했다. 끝없이 쪼개지는 생각의 틈에서 이걸로 해야겠다 싶은 한 마디가 둥실 떠올랐다. '계절 같은 사람.' 그래, 난 계절 같은 사람이 되자. 사계절 중 특정 시기가 아닌 계절 그 자체. 매일 같아 보이는 가지 끝에 어느새 새순을 돋우는. 끝나지 않을 듯한 더위와 녹음을 몰고 왔다가, 한 순간 서늘한 바람으로 눈을 붉게 적시는. 그리고는 곧 온 세상을 새하얀 황량함으로 물들이는. 계절은 항상 묵묵하고 조용히 움직이면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니까. 매해 누가 뭐라든 때가 되면 찾아오는 우직함과 성실함이 있으니까. 내가 가장 닮고 싶은 모습이었기에, 그런 삶을 산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랐다.
이렇게나 구구절절 설명을 해야 하는 걸 보면 사실 꽤나 망한 문구 같지만, 지금까지도 마음이 어려울 때면 미래의 묘비명을 꺼내 보곤 한다. 난 현재 한 시절을 지나 새로운 계절을 향해 움직이는 중이라고. 그 안에서 꿋꿋하게 주어진 역할을 해내는 사람이라고. 그렇게 되뇌다 보면 막막함은 어느덧 묵묵함으로 바뀌어 눅눅한 시간을 버티게 한다. 그렇게 산 인생에서 어떤 승리를 거머쥘지는 모르겠지만. 존버는 승리한다잖아. 훗날 세상에서 사라진 날 기억하러 온 사람들이 "맞아, 얜 그런 애였지." 해준다면 "거봐, 내가 그런 사람이었대두." 하고 저세상에서 약간의 승리감에 취해볼 수 있지 않을까? 거기에 장례식장에서 듣고 싶던 말까지 덧붙여주면 더욱이 좋고.
"널 알게 돼서 다행이야."
"사랑해."
"잊지 못할 것 같아."